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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메론 Sep 29. 2021

5. 저는 메인작가 될 깜냥이 안되거든요.

- 365일 명절 같은 기분 -



 사람은 타고난 것들이 있다.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책 읽는 걸 좋아했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A4용지를 반 접어서 시를 쓰고 팬픽을 휘갈겨 쓰곤 했다. 많은 이들이 나의 미래를 점치길 ‘작가 선생님’이 될 것이라고 했고, 그 예상이 적중해 나는 직함이 작가인 직업을 갖게 됐다.

 하지만 내가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게 타고났다고 했지, 잘 쓴다고는 안 했다. 엄마친구아들이랑 딸 사이에서는, 우리 반에서는, 우리 학년에서나 좀 쓰는 거였지. 세상엔 글빨, 문장력, 구성으로 날고 기는 사람들이 천지였다.

 그리고 대학에 가기 위해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할 무렵, 나는 많은 작가들 사이에서 글로는 그럭저럭 벌어먹고 살 수는 있지만, 내 재능은 평범에 가깝다는 걸 깨달았다.

 그 즈음부터 나를 슬슬 긁어오던 질문을 하던 이가 있었는데, 바로 친척오빠 박이었다.




 박에게 나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책 읽는 것도 좋아하는, 기특하고 장한 동생이었다. 그는 내가 방송작가가 됐다는 소식을 건너듣고는, 수시로 연락을 해왔다. 어떤 일을 하느냐, 밥은 잘 챙겨주냐, 일이 힘들진 않냐 등 질문도 가지각색이었다. 나는 해야할 일도 많고 힘들었지만 성실하게 답변을 해줬다. 친척동생을 생각해주는 마음이 고마워서였다.

 “무려 다섯 명의 언니들을 서포트해야 한다. 언니들이 하는 코너가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A언니는 건강 관련 코너, B언니는 트렌드 관련 코너, C언니는 음식 관련 코너... 그러면 나는 다이어트 할 어머님도 찾아야 하고, 어머님을 모시고 가서 메이크업 할 샵도 찾아야 하고, 고추 수확 가능한 농가도 찾아야 한다. 찾는 게 끝이 아니라 촬영 내용을 설명하고, 촬영하자고 설득해야 한다.”

 “요 작은 제작사에서 내 밥을 챙겨주진 않는다. 정해진 점심시간도 없고, 밥값도 제공되지 않는다. 섭외를 하다가, 프리뷰를 하다가 때를 놓치면 굶는다. 가끔 샌드위치를 배달시켜서 책상 앞에서 먹으며 일을 하기도 한다.”

 말도 안되는 근무요건을 이야기 할 때마다,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부모님의 넉넉한 지원 아래 대학까지 나왔지만 고작 77만 원을 받는다는 것, 직함은 작가인데 글을 쓰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 내 처지를 친척에게 이야기하려니 한없이 초라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박은 신났는지 이것저것 더 물어왔다.


그 중 참을 수 없는 질문이, “우리 OO이는 언제 메인작가 되냐”는 거였다.


 그때 나는 고작 일한지 세 달 된 막내작가였다. 아직 앞으로 갈 길은 구만리고, 오늘 할 일도 막막해죽겠는데 저런 질문을 던지는 의도가 궁금했다. 박으로 치자면, “오빠는 언제 승진해서 과장되고 부장되는 거야?”라는 질문과 같은 맥락이니까. 아무리 서로의 직업 세계를 모른다고 해도, 선을 넘는 질문이었다. 나는 “메인작가가 되는 게 쉬운 게 아니다. 10년은 일해야 할걸...?”이라고 대충 얼버무렸다. 하지만 박의 세상 속에서 나는 이미 대작가 즈음 되는 모양이었다. 박과 전화를 끊으며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할까말까 하다가 참았다. ‘어디 가서 친척동생이 엄청 글 잘 쓰는 방송작가야! 라고 자랑하지 말라’고 할걸 그랬다.




 그 사이 세월이 흐르면서 메인작가 되기는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무릇 메인작가란 팀원 전체를 이끄는 카리스마가 있거나, 기가 막힌 기획력과 구성이 있거나 했다. 나는 입봉은 했지만 그냥 평범한 서브작가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점차 연차가 쌓일 수록 박은 자주 연락을 해왔다. 대화의 포문을 여는 첫 질문은 주로 “이제 메인작가 된 거야?”였다. 마치 일곱 살 아이에게 어떤 이야길 하던 왜? 왜? 왜? 공격을 받는 느낌이었다. 내가 메인작가가 된다한들 우리 엄마도 아빠도 아닌 박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을텐데, 그게 왜 그렇게 신경쓰이고 궁금할까.

 또 대본은 안 써?, 너는 친한 연예인 없어?, 다른 메인작가들은 월 천만 원 씩 번다던데? 같은 질문이 주류를 이뤘다. 박과 통화를 하고나면 밤샘을 한 것처럼 피곤했고, 명절 날 친척들에게 들들 볶인 취준생처럼 멘탈이 너덜너덜해지곤 했다. 나는 조금씩 머리가 크면서 박의 전화를 피했고, 이제는 종종 받지 않기도 한다.


 아마 내가 알고있는 박은 내 자존감을 깎아낼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박의 질문이 그렇게 불편하고 머리 끝까지 짜증났던 이유는, 나는 그 질문 속 잘난 메인작가가 아니기 때문이겠지. 만약 지금즈음 월 천만 원도 벌고, 어린 나이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는 메인작가가 됐다면 박은 또 뭘 물어봤을까?

 올해도 박은 내게 “이제 메인작가 된 거야?”라는 질문을 던질 것이다. 이제 나도 모르는 척 하고, 도를 넘어선 불친절을 부려봐야겠다.

 “오빠도 이제 부장 된 거야? 이제 결혼도 하는 거야?”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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