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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메론 Jan 26. 2022

6. 퇴근 후 공유오피스로 출근합니다.

- 짠순이의 月 15만 원짜리 작업 공간 -



 최근 나는 퇴근할 때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지 않는다. 도보로는 5분 즈음, 버스로는 한 정거장 더 가는 곳. 나는 공유오피스로 다시 출근한다.




 재작년 여름, 나는 원룸에 벙커침대를 들여놓았다. 2. 30대에 벙커침대를 오르내린다는 것은. 방안에 차고 넘치는 짐이 많아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산 넘어 산이라고 또 문제가 발생했다. 산더미 같은 옷을 쟁여놓을 공간은 확보됐는데, 벙커침대 밑에 책상을 들여놓으니 좀처럼 일하기가 쉽지 않다는 거였다. 스탠드도 사다놨고 노트북 받침대도 사다놨지만, 어두컴컴한 벙커침대 밑에서 일하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웠다. 또 허리와 목을 굽혀 일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고.

 사실은 변명이고 핑계다. 벙커침대 밑에서 일하려면 얼마든지 일할 수 있다. 실제로도 1년 6개월 즈음은 이렇게 일했고. 책상 앞에 의자를 놓을 공간도 없어서, 침대에 엎드려서 일하던 고시텔 시절을 생각하면 복에 겨운 소리지만.

 하지만 그 눈물 겨운 시절을 나는 잊어버렸나보다. 머리도 좀 컸고 코딱지만한 페이보다는 좀 더 벌고 있으니까 쾌적한 곳에서 일하고 싶었던 거다.

 그래서 이곳저곳을 뒤져보고, 문의 전화를 하고, 답사까지 다녀본 결과. 집 근처에 있는 공유오피스를 계약하게 됐다.




 공유오피스 계약 이전에 내 주일터는 사무실, 집, 카페였다. 각자 장단점이 있었다. 촬영구성안을 쓰다가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으면 동료작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이 사무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5초(벙커침대에서 내려오는 시간)만에 출근할 수 있는 곳이 집. 쾌적한 에어컨, 내돈내산 맛있는 음료가 함께하는 곳이 카페. 하지만 사무실은 집과 물리적으로 거리가 있었고, 집에만 들어서면 자꾸 눕고싶어지는 병에 걸리기 일쑤였다. 카페에서 일하면 나날이 불어나는 살이 덤이었다. 이러니 공유오피스를 계약할 수 밖에.

 

 제일 처음 답사를 갔던 공유오피스는 새로 지어진지 얼마 안된 곳이었고, SNS 감성을 자극하는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1인실 가격이 무려 40만 원대. 그리고 자리가 없었고. 두 번째로 갔던 공유오피스는 인테리어나 가격도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집이랑 거리가 좀 있는 게 최대 단점이었다.

 마지막으로 간 공유오피스는 시설이 오래되긴 했지만 딱히 나쁜 점은 없었다. 1인실 가격이 30만 원이라는 점도 매력적이었고. 하지만 여기도 당장 자리가 없었다. 그러자 홀에 있는 자리를 반 가격인 자유석으로 쓰고, 1인실에 대기를 걸어놓으면 1순위로 불러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계약서를 썼다.





 내가 계약한 공유오피스는 로비 자리엔 나름 얼음 정수기도 있고, 통창이 뻥 뚫려있다. 가끔 창가 자리를 찜해놓고 정신없이 일을 하다 고개를 들어보면, 하늘은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을 들키곤 한다. 새까맣게 물든 통창 너머로 퇴근길 차량의 불빛들, 차츰차츰 꺼져가는 가게 간판들을 보면 이상하게 차분해진다.

 태생이 워커홀릭인 나는 재택근무를 하는 날도, 홍보영상 구성안을 작성해야 하는 때도, 공유오피스로 향했다. 집에 있으면 눕게 되고, 일은 점점 쌓일테니까. 그리고 확실한 건, 지금의 공유오피스에 익숙해져야 능률이 오른다는 것. 그래서인지 매일매일 출석도장을 찍었더니 집에서 자료를 읽을 때보다 속도는 약간이나마 빨라졌다.


 예전에 나는 집과 공간에 관련된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일하는 공간과 생활하는 공간을 분리해야 능률도 오르고 삶의 질이 오른다고들 했다. 하지만 그때 당시의 나는 생활하는 공간도 모자라고 부족할 지경이었다. ‘일단 자그마하더라도 내 공간만 있으면, 그곳에서 일도 하고 생활도 하고. 할 게 차고 넘칠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지만, 차마 그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나는 그만한 공간에 합당하는 돈도 벌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때보다 나는 머리가 좀 컸고, 돈도 쪼금 더 벌게 됐다. 아직은 공유오피스에 도착하면 남은 자리를 찾으러 다니곤 있지만.


내가 일하는 환경을 좀 더 쾌적하게 만들어주는 것. 바깥에서 정신없이 걷고 뜀박질 하고 온 내게 안락하고 따뜻한 생활공간을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내가 퇴근 후 공유오피스로 다시 출근해 부지런히 일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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