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부지 부부의 제2 인생 도전기
명예퇴직을 신청하고 약 2달간의 공백이 있었는데 정말 우리의 삶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집사람이 몸에 이상이 있어 큰 수술을 받아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데 아들은 원하는 직장에 취직이 되었다며 병원으로 찾아와 엄마에게 큰 힘을 보태준다.
나는 솔직히 아이들의 교육과 생활에 깊이 관여하지 못했다. 직장에서는 항상 일에 치이고 어머님도 챙겨야 했고 또 나를 위한 공부도 해야 했다. 아이들과 학업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도 잘 안 해 보았다. 엄마가 알아서 하고 나는 가끔 인근의 대학 도서관에 공부하러 갈 때 같이 가서 공부하다 돌아오다 가끔 식당에 들렀다는 가는 것이 전부였다.
지금 생각해 봐도 아이들을 많이 간섭하지 않았던 것이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내 방식대로 아들을 간섭했더라면 어떠했을까 싶기도 하다.
내가 야간 대학을 다니고 골프를 치며 나름 나를 위해 공부할 때 아들이 과외를 받는 줄 몰랐다. 집사람이 생활비가 빠듯해 아들 과외비가 없어 이웃집 아이를 봐주고 그때 월 40만 원을 받아 과외비로 주었다고 하여 마음이 무척 아팠다. 나는 한번 골프 치러 나가면 20 ~ 30만 원 이상이 드는데 생각하며 이후 아주 골프를 끊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되도록이면 간섭을 하지 않으려 했다. 내가 간섭을 하지 않으려 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내 간섭을 거부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내가 열변을 토하며 이야기하면 내가 열 내면 뭔가 달라져야 하는데 그냥 내가 내풀에 꺾인다. 그러다 내버려 두면 아이들의 방식도 나쁘지 않다.
병원에서 퇴원을 하고 시간이 되면 차를 몰고 전국을 돌아다녀 본다. 딸과 아들은 학교를 다녀 다닐 때도 그렇게 많은 애를 먹이지 않았는데 딸은 학업과 취직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였지만 그래도 부모에게 애를 먹이지는 않았었던 것 같다.
집 사람이 큰 병치레를 겪고 나니 앞으로의 삶은 건강을 최우선으로 또 인생을 즐겨가며 살아가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또한 서로 너무 의지하는 마음을 덜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란 언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는데 미리 떨어져 살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마음을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2년 동안의 계약직 업무 수행은 정말 수월하였다. 하기야 연봉은 현직에 있을 때보다 1/6 수준이었으나 세금이나 건강보험료 등 떼어가는 것을 감안하면 그래도 적지 않은 돈이기는 했었다.
현직에 있을 때는 일도 일지만 돈 때문에 연, 월차를 쓸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의무적으로 써야 되는 연, 월차휴가를 내어 외국으로 여행을 다녀보다 느낀 것은 영어를 좀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여러 곳의 영어동아리에 참여하여 영어도 배우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도 갖게 되었다.
계약직으로 2년을 근무하다 느낀 것은 현직에 있을 때도 이렇게 수월하게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었지만 그놈의 돈 때문에 잘리지 않으려고 그렇게 힘들게 근무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