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30 ~ 4. 2.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 눈이 떠진다. 이번에는 서울을 벗어나 멀리 나가고 싶다. 그냥 하루 만에 돌아올 때는 정말 아무 준비 없이 출발한다. 기껏해야 양치질할 수 있는 것 정도? 하지만 이틀이 지날 것 같으면 속옷 한벌은 챙기고 내 노트북 가방과 대금 가방도 챙긴다.
내가 노트북 가방과 대금 가방을 챙기니 집 사람도 옷 가방을 챙긴다. 이러면 아들이나 딸이 부르지 않으면 며칠이고 여행해도 큰 문제는 없다. 음식은 사서 먹으면 되고 잠은 차에서 차박하면 된다. 그러고 몸을 씻어야 할 필요가 생기면 모텔을 찾아가거나 그렇지 않으면 형님 집이나 동생 집, 조카 집 등 그때그때 만만한 집을 찾아가면 되니 큰 걱정은 안 한다. 최악의 경우 집으로 돌아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오늘은 의무적으로 할 일이 하나 있다. 그것은 영화 관람이다. 집사람의 외사촌이 제작자라는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라는 영화를 진주의 혁신도시에서 관람하고 돼지 섞어 국밥으로 점심을 먹고 사천시에 있는 장인, 장모의 산소를 찾아간다.
소주와 간단한 제수를 장만하여 술 한잔을 부어드리고 옛날을 생각해 본다. 장인께서는 60을 겨우 넘기시고 약 30년도 훨씬 전 우리 아들이 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돌아가셨고 장모님은 20년 전쯤에 아들이 대학을 다닐 때 돌아가셨다.
내가 아버지께서 너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아버님이란 호칭을 불러 보지 못했는데 장인이 계셔서 아버님이라고 불렀었는데 불과 몇 년이 되지 않아 돌아가셨었다. 장모님께서 돌아가실 때가 딱 이 지음이었다. 장례를 모시려 내려올 때 진양호 주변의 벚꽃이 정말 흐드러지게 펴서 장모님 가시는 길을 장식해 줬었다.
성묘를 마치고 이제는 길을 따라 차를 몰다 통영으로 가기로 한다. 통영에 도착하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차박 할 장소를 찾아보다 정말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하고 돌아다니다 인터넷 검색하다 보니 통영 전통공예관 주차장이 좋다고 나와있다.
조금 늦은 시간이었지만 내비게이션으로 검색하고 찾아가니 나쁘지 않다. 캠핑카도 몇 대 세워져 있고 차박을 하는 SUV도 몇 대 있다. 일단 우리 차에 차박 준비를 마치고 인근 식당을 찾아간다. 생선 구이 정식에 막걸리 한잔으로 피로를 풀고 차에 들어와 잠을 청한다.
이른 새벽잠에서 깨어 차를 몰고 시내를 둘러본다. 중앙시장을 둘러보고 조각공원도 산책하며 이순신 장군을 모신 충렬사도 둘러본다.
충렬사를 보고 서호시장으로 가 본다. 이른 아침의 중앙시장은 문을 열지 않았는데 이곳은 이제 장이 시작된다. 통영에서 유명하다는 훈이네 시래깃국 집을 찾아 아침을 먹고 횟집에 들러 아들과 딸 집에 회를 택배 부탁하고 다시 차를 몰아 경상남도 수목원으로 향한다.
조금은 이른 감이 없지 않으나 이제 막 봄꽃들이 피기 시작하니 뭔가 재미있는 풍경이 펼쳐질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정말 수목원은 홍매화와 수양 벚꽃 등 정말 아름다운 꽃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수목원을 둘러보고 다시 진주시장으로 향한다. 진주시장에는 41년 전 내가 근무하던 직장이 있었다. 야근을 할 때면 제일 식당에서 해장국과 비빔밥을 시켜 먹던 곳이었는데 얼마 후에 보니 아주 맛집으로 변해 있었다. 육회 비빔밥으로 점심을 먹고 다시 차를 몰고 달려간 곳은 하동의 삼성궁이다.
진주는 내게 있어 조금 특별한 곳이다. 부산에서 근무하다 집사람을 만나기 시작하고 있었는데 젊은 혈기로 지리산이 좋아 근무 희망지를 나하고 연고도 없는 진주로 썼더니 즉각 진주로 발령을 받았었고 2개월 후 집사람과 결혼을 했었고 그 후에 우리 딸을 진주에서 낳았었다. 그런데 진주에서 결혼하고 나니 집사람의 큰 집이 진주 인근의 사천이었었다.
그런 인연으로 진주에 많이 오게 되었고 지리산도 많이 왔었다. 천왕봉도 몇 번 올랐고 지리산의 경치가 좋아 얼마 전에도 큰 형님 내외와 함께 차로 노고단도 올랐었는데 비바람이 몰아쳐 하나도 보지 못하고 내려왔었고 지난가을에는 형님과 함께 정령치의 단풍도 보러 왔었다.
진주에서 거림계곡으로 가다가 다시 삼성궁으로 네비 검색하여 달려 나간다. 삼성궁도 아주 오래전에 한번 다녀왔던 곳인데 다시 들어가 보니 정말 새롭다. 입구에서부터 걷고 걸어 한 바퀴를 다 돌아 다니 정문으로 나와 하동의 벚꽃을 보러 가 보기로 한다.
삼성궁에서 하동 쪽으로 내려오는 길가로 벚꽃이 장관을 이룬다. 쌍계사 벚꽃 길을 가려다 구례 사성암으로 네비를 찍고 달린다.
지난번에도 구례 사성암을 가려했다가 너무 늦어 가지를 못했는데 오늘은 한번 도전해 보려는데 집 사람이 너무 늦었다며 중간에서 잠자리를 정하자고 하는데 늦더라도 사성암은 보고 잠은 차박은 말고 대전의 동생집이나 시골의 형님 집으로 가면 될 것 같은 생각이다. 정말 안 되겠으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쪽잠을 자더라도...
그렇게 네비를 찍고 달리는데 길가의 풍경이 정말 아름답다. 벚꽃이 터널을 이루고 잠시 차를 세우고 바라보는 강 건너편의 풍경도 정말 아름답다.
사성암은 평상시에는 밑에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마을에서 운영하는 마을버스를 타고 사성암으로 이동해야 되는데 늦은 시간에는 마을버스가 운행을 하지 않아 자기 차를 몰고 사성암까지 올라갈 수 있다.
사성암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사람들의 왕래가 드문 사성암으로 가파른 길을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올라간다. 밑에서 차로 가파른 길을 힘들게 올라왔고 또 차에서 내려서도 힘들게 올라왔지만 올라온 보람은 있었다.
깎아지른 절벽에 지은 절도 아름답고 사성암에서 바라보는 섬진강의 풍경도 아름답다. 조금 아쉬운 점은 안개가 끼어 희미한 풍경이었지만 이 또한 신비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세상 모든 것이 생각하기 나름 아니겠는가? 내가 생각하기에 여기를 천국으로 여기면 천국이 될 것이고 지옥으로 여기면 지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성암을 둘러보고 나오니 저녁 7시가 넘어간다. 이제는 어디로 갈 것인지 정해야 된다. 일단 대전의 동생에게 전화를 하고 대전으로 향한다.
동생집에서 잠을 자고 다음 날 아침 동생이 차를 몰고 대둔산 쪽으로 드라이브를 가자고 한다. 대둔산을 들렀다가 장태산 인근에서 흑염소 전골로 점심을 먹는다. 맛있는 음식이 있는 소주 한잔 안 마실 수 없어 낮술을 한잔하고 혼자서 신탄진 금강변을 걸어본다.
오랜 기간 대전에서도 근무하였지만 이렇게 혼자서 신탄진의 금강 변을 걷기는 처음이다. 한참을 그렇게 걷고 또 걷는다. 내일은 서울의 코엑스에서 맥주 박람회에 가야 되지만 이른 새벽에 올라가면 되기에 오늘 저녁도 동생집에서 자기로 한다.
3박 4일 먼길이었지만 넥쏘 차가 있어 큰 부담 없이 여행을 즐길 수가 있었다. 수소 1 킬로그램에 8,000원이면 요즘의 연비로 약 140킬로 미터를 달리니 휘발유에 비해 엄청 싼 유류비에 고속도로 통행료도 반절이니 정말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특히나 자율 주행으로 운전하면 무척이나 편하니 넥쏘 차를 장만하기 정말 잘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