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과 함께 세계로, 기차로 대륙을 누비다.
슬로바키아의 코시체에서 체코의 체스키 크룸로프로 가는 길은 무척이나 힘들고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일단은 브라티슬라바로 갔다가 다시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를 거쳐 린츠로 갔다.
린츠에서 체스키 크룸로프까지는 지도상으로 멀지 않고 버스정류장이 바로 옆에 있어 버스가 있으면 버스를 타려 했으나 알 수가 없어 할 수 없이 기차를 타고 가기로 한다.
나중에 알아보니 린츠에서 체스키 크룸로프로 운행되는 버스는 일반버스가 아닌 관광버스와 비슷한 것으로 호텔이나 여행사에서 표를 구할 수 있다고 하며 비용도 비쌌다. 우리는 시간은 많아 유레일패스가 통용되는 기차로 가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기차는 린츠에서 오스트리아의 SUMMERAU로 갔다가 거기서 북쪽으로 체스케 부데요비체에서 다시 남쪽으로 체스키 크룸로프로 와야 된다.
코시체에서 새벽 4시에 일어나 기차를 타서 체스키 크룸로프에 도착하니 밤 9시가 넘었다. 코시체의 숙소를 출발하여 기차 타는 시간과 기다리는 시간 등을 합하여 20시간 가까운 여행에 몸은 많이 피곤하였지만 차창을 통해 들어오는 새로운 동유럽의 풍경은 모든 피로를 잊게 해 주었다.
늦은 밤 역에 도착하니 사람들도 많이 내리지 않는다. 몇 명 내리지 않은 사람들도 차가 와서 태워가거나 미리 불러 놓은 택시를 타고 가 버리니 남은 건 우리뿐이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없어 길을 물어보기도 무엇하고 난감해하며 있는데 뒤늦게 내린 사람이 우리를 보고 인사를 하는데 한국 사람이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며 어디서 오느냐고 했더니 린츠에서 온단다. 그럼 우리하고 같이 왔을 텐데 기차에서 만났으면 많은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며 숙소는 정했느냐 했더니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먼 거리는 기차를 타고 잠은 가지고 다니는 조그만 텐트를 치고 비박을 한다고 한다.
괜찮으면 우리는 숙소를 예약했는데 같이 가면 어떠냐 했더니 그냥 간다고 한다. 그러면서 인사를 하고 가버린다.
늦은 시간에 한적한 시골 기차역에는 인적도 드물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시간표를 보는데 영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역에서 출발하면 보통 시내로 들어가니 버스가 오면 무조건 타려 마음먹고 기다리고 있는데 한참 지난 후에 버스가 온다.
무조건 버스를 타고 주소를 보여 주며 여기를 간다고 하니 손사래를 치며 내리라며 택시를 타라고 한다. 다시 물어보아도 택시만을 외친다. 아마 시내 방향으로 가는 버스는 이미 끝났나 보다.
택시를 탈 것인가, 걸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는데 저기서 택시가 하나 온다. 손을 들었더니 그냥 지나친다. 그러더니 저 앞쪽에서 멈춘다. 뛰어가 보니 사람이 타고 있다. 아마 택시를 불러 타는 것이리라.
쫓아가서 택시를 불러 달라고 부탁을 한다. 전화가 안 되어 택시를 부를 수가 없다고 하니 알았단다. 조금 기다리면 올 것이라며. 그러고 택시는 떠나갔다.
한 20분쯤 기다리니 그 택시가 다시 왔다. 택시를 좀 불러 달랬더니 자기가 손님 태워다 주고 다시 온 것이다.
돈이 여기 기다리고 있는데 남한테 주기는 아까웠던 것일까?
택시로 가는 길은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걸어서 가면 지름길로 가기 때문에 많이 걸리지 않았지만 차로 가는 길은 그렇지가 않았다.
체스키 크룸로프는 정말 동화에서 나오는 도시 같다. 옛 도시를 복원하여 보존하면서 시내의 건물들은 숙박업소와 음식점, 상점 등으로 이용되고 현지 거주자들이나 종업원들은 모두 외곽으로 나가 거주하는 가 보다.
우리의 숙소도 그랬다. 방은 모두 게스트하우스로 운영되고 주인은 외곽으로 퇴근하여 우리가 늦게 도착한다고 하니 문 옆에 열쇠의 위치가 있는 메시지를 남겨 놓을 테니 그것을 보고 열쇠를 찾아 들어가라 하여 열쇠 찾는데 애를 먹었다.
숙소에 들어와 짐을 푸니 밤 11시가 넘었다. 일단은 밥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온다. 여기는 관광지이기에 늦게까지 카페나 피자집도 불을 밝혀 놓았고 술집에도 많은 사람들이 드나든다. 피자를 사서 숙소에서 먹으려 하였으나 지금은 끝났다 하여 카페에 들어가 맥주와 현지 음식을 시켜 먹는다. 좀 늦어도 거리낄 것이 없다. 우리만의 여행이고 남는 게 시간인데.
늦은 아침 숙소에서 일어나 숙소의 부엌에 가서 밥을 해 먹을 수 있는지 점검해 보는데 구수한 된장국 냄새가 난다. 반가운 마음에 들어가 보니 동양의 젊은 여자가 김과 밥을 섞어 주먹밥을 만들고 있다. 눈인사를 하고 어디서 왔느냐 했더니 일본에서 왔다고 한다. 오늘 나가는데 점심 도시락을 준비한다고 하며 아침은 쌀밥에 미소 국으로 해결한다고 한다.
나도 쌀을 가지고 와서 밥을 하기로 한다. 여행하면서 쌀로 밥을 지어먹으면 비용도 절약되고 우리 입맛에 맞아 좋다. 한국에서 가져온 고추장과 현지에서 사는 오이나 당근, 그리고 햄 등으로 반찬을 하면 아주 좋은 한 끼 식사가 된다.
늦은 아침을 먹고 중앙 광장 쪽으로 나가본다. 돌아다니다 자전거를 끌고 올라오는 어제의 청년을 다시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는다. 어젯밤 너무 추워 텐트에서 자는데 입이 돌아갈 뻔했다며 너스레를 떤다. 사실 숙소에서 자는 우리도 추위를 느꼈는데 한 데에서 얇은 텐트에 부실한 이불에 얼마나 추웠을까 하니 안 쓰런 마음이 든다.
청년은 전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직장을 찾았는데 한 2개월의 기간이 있어 한 달 전에 동해를 출발하여 시베리아를 횡단하고 여기까지 왔단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동해를 출발한 지 꼭 2개월이 되었다. 우리보다 1개월 늦게 출발한 것이다.
길에 서서 이야기하다 카페에 들어가 뭐 하나 마실까 하다가 아이스크림이 맛있을 것 같아 어떠냐 했더니 좋다고 한다.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생각하니 밤새 텐트에서 추위에 고생을 했는데 차가운 것을 대접한 것이 미안하다. 커피나 따뜻한 것을 대접했어야 했는데.
아이스크림을 먹고 우리는 이제 성을 둘러보러 나왔다 하니 젊은이는 일찍 일어나 다 둘러보았다며 이제 자전거를 타고 오스트리아의 린츠로 간다고 한다. 젊음이 부럽고 용기도 부럽다.
하기야 여기까지 돌아다닌 우리도 무모함에 가까운 만용도 있기는 하다. 그래도 우리는 무기가 있다. 그 누구도 탐내지 않는 흰머리와 주름살과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통 맥주의 본고장이라고 하면 독일이라고들 하는데 체코가 맥주의 본고장이라고 하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할까?
미국의 버드와이저도 여기가 원조라고 한다. 내일은 체코의 맥주 공장을 둘러보기로 한다. 여기에도 맥주 공장이 있지만 여기에서 기차로 약 50분 거리에 체스키부데요비치가 있는데 거기에 버드와이저 공장이 있다.
맥주 공장 탐방을 위해 체스키부데요비치로 가기 위해 일찍 일어나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유레일패스를 이용하여 기차로 갈 수도 있었지만 시골의 정취를 만끽하고자 버스를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체스키 크룸로프를 출발한 버스는 시골길을 달려 체스키부에요비치로 간다. 버스 여행은 기차 여행에서 느끼지 못하는 새로운 광경을 선사한다. 아침 출근길과 등굣길을 책임지는 버스는 정이 넘치기도 하고 조금은 살벌하기도 하다.
버스가 정류장에 섰다가 출발하는데 저 멀리 한 학생이 손짓을 하며 뛰어 온다. 한 승객이 발견하고 운전사에게 이야기하니 버스가 멈춰 선다. 학생은 온 힘을 다해 길이 아닌 밭과 목장을 가로질러 뛰어온다. 숨을 헐떡이며 버스에 오르려는 순간 운전사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밭과 목장을 가로질러 오는 바람에 발이 더러워졌으니 신발을 풀에 닦으라는 것이다.
발을 닦고 올라오는 학생에게 다시 훈계가 이어진다. 아마 차 시간이 몇 시 몇 분인데 늦었다고 꾸중하는 것이리라. 학생은 말없이 훈계를 듣고 자리에 앉는다.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어른과 그것을 수용하는 학생의 모습이 아름답다. 그리고 버스는 목적지를 향해 출발한다. 아무도 버스가 늦게 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승객들의 모습도 흐뭇하다.
체스케 부데요비체도 체스키 크룸로프만큼이나 아름답다. 도시도 아름답고 교통의 중심지로 도시가 상당히 크고 활기차다. 말로는 체스키 크롬로프 성을 견제하기 위해 양조장을 만들어 맥주를 생산하도록 하여 경제를 키웠다는 말도 있다. 그래서 커다란 맥주 공장도 두 곳이나 있고 미국 맥주인 버드와이저의 원조가 이곳이라는 것이다.
버드와이저 맥주 공장의 공장 투어에 참여하려 하였으나 참여하지 못하고 회사 소개 비디오를 감상하는 것으로 대체하고 식당에 들어가 맥주를 시음하였다.
맥주공장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 기차역까지 거리가 멀어 버스표 파는 곳과 버스 타는 법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어디서 왔느냐며 버스표는 사람이 많이 있는 버스정류장의 자동판매기에서 살 수 있는데 이곳은 작아서 없다며 버스에 타서 운전자에게 돈을 주어도 된다고 한다. 그러더니 지갑을 뒤져 자기가 가지고 있던 버스표 두 장을 우리에게 준다. 괜찮다고 사양을 하는데도 선물이라며 기어코 쥐어 준다. 돈을 주려해도 받지 않으며 자기가 타는 차를 같이 타고 가다가 내리라는 곳에 내려서 다른 버스를 타고 가라며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정말 고맙다.
이번에는 기차를 타고 체스키 크룸로프에 도착하여 처음 오던 날은 택시를 탔지만 이번에는 배낭도 없으니 걸어보기로 한다. 기차역에서 시내의 숙소로 걸어오는 길은 차를 타고 오는 것보다 더 아름답고 정겹다.
여기에도 커다란 맥주 공장이 있다. 공장 앞의 식당에서는 바비큐를 굽고 있고 공장에 딸려있는 식당에도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다. 우리도 식당에서 식사를 할까 하는데 옆에 맥주 및 기념품 판매장과 맥주 시음장이 있다.
식사 대신 맥주 한잔으로 허기를 달래고 숙소로 돌아온다. 오늘의 여행은 정말 맥주의 본고장 체코의 맥주 양조장 3곳을 탐방하는 아주 즐겁고 조금은 힘든 하루였다.
맥주 한잔을 마시고 걸어서 숙소에 돌아오니 이제 깜깜한 밤이다. 체스키 크룸로프를 마지막으로 동유럽의 여행을 접고 이제 서유럽으로 넘어간다.
새로운 여행지를 찾아 떠나는 길은 언제나 새롭다. 그리고 화폐가 다른 여행지, 특히 체코와 같은 도시를 떠날 때는 쓰고 남은 돈을 다 쓰고 와야 된다. 체코 돈은 한국에 가지고 와도 바꾸기도 쉽지 않고 동전은 바꿔주지도 않기 때문이다.
남은 돈은 기차역 인근 슈퍼마켓에서 양말이나 쌀, 음료수 등을 사는 것으로 다 써버 린다. 그리고 기차를 타고 새로운 여행지 독일의 뮌휀을 향해 출발한다.
체스키크롬로프의 더 많은 사진과 이야기는 제 유튜브를 확인해 보세요.
체스케부데요비체의 사진과 이야기는 아래 제 유튜브에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