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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 Aug 21. 2019

비 오는 파리의 밤, 울려 퍼지는 달그락 바퀴소리

마드리드 기차역에서 Y와 내가 아침 식사 대신 먹은 츄러스

꽤 오래된 일이라 잘 기억나지 않지만, 마드리드에서 파리까지 유레일 열차를 타고 9시간가량 이동한 것 같다. Y와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기차역에서 샹젤리제 거리로 향했다. 몽마르트 근처에 있는 숙소에 짐을 풀고 이동해도 됐을 것을, 왜 미련하게 캐리어를 질질 끌고 샹젤리제 거리로 향했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하여간 우리는 달그락달그락 캐리어 소리를 내며 개선문까지 이동했다. 

비 오는 파리의 밤, 개선문 앞

캄캄한 밤, 개선문 앞은 꽤 한산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관광객도 많지 않았다. 성수기가 아니었던 것도 이 여유로움에 한몫했으리라. Y와 나는 개선문 앞에서 짤막하게 인증 사진을 찍었다. 비가 와 멋진 사진을 남기진 못했지만, 여행 후 남는 건 인증 사진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거운 짐과 추적추적 내리는 비 때문에 개선문 관광은 포기했다. 우리는 10여 분 개선문 앞을 서성이다 또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숙소로 돌아가 쉴 수도 있었지만, 그 시절 우리는 프랑스 파리까지 와서 팔자 좋게 휴식을 취할만한 배짱이 없었다. 


다음 장소는 에펠탑이었다. 개선문과 달리 에펠탑 앞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 중 캐리어를 질질 끌고 에펠탑으로 향하는 건 단연코 우리 둘뿐이었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여러 개의 보도블록을 지났다. 도보에 있는 턱을 지날 때마다 캐리어가 말썽을 부렸다. 유럽 특유의 돌바닥이 캐리어의 전진을 방해한 것이다. 돌부리에 걸려 멈추길 여러 번, 나는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까맣고 파란 파리의 하늘 위로, 우뚝 솟은 에펠탑을 본 순간 나는 그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짜증스러움을 모두 잊어버렸다. 

파리에 왔음을 실감 나게 해 주었던 그 날의 에펠탑

 처음 에펠탑을 세울 때 대부분의 파리 시민들은 이 조형물이 흉측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그 누가 이 조형물을 흉측하다고 말하겠는가…. 


깜깜한 밤, 주황색 불빛을 내뿜은 에펠탑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물론, 아름답지 않은 것도 있었다. 에펠탑 근처에 나타난 잡상인들이었다. 그들은 연신 하늘 위로 야광 장난감을 쏘아댔고, “원 유로, 원 유로”를 외치며 에펠탑 열쇠고리를 팔고 있었다. 난생처음 에펠탑을 마주한 우리에게 이 장면은 꽤나 거슬리는 일이었다. 우리는 로맨틱한 분위기를 모두 망쳐버린, 그들의 상술에 넘어가지 않으리라고 다짐하며 누구보다 도도하게 에펠탑을 향해 걸어갔다. 


도도한 걸음도 잠시, 우리는 에펠탑 입구에서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초저가 여행을 계획한 우리에게 에펠탑 입장료는 너무나 비쌌기 때문. 우리는 전망대를 포기하고 가까운 곳에서 에펠탑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파리의 바가지요금, 잡상인들의 상술에 현혹되지 않겠다는 굳건한 의지를 표명하며 에펠탑까지 걸어왔는데 입장료가 비싸서 들어가지 못하다니…. 다시 생각해도 정말 굴욕적인 순간이다. 차라리 흑인 오빠들이 원 유로라고 외치던 열쇠고리라도 하나 살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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