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단출한 짐. 23살의 나는 기내용 캐리어 단 하나만 들고 프랑스 파리로 향했다. 사실 그때의 난 영국 맨체스터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었다. (말이 좋아 어학연수지, 사실은 대학 졸업을 앞두고 현실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그러던 중 긴 연휴가 생겼고 나와 한국인 유학생 Y는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Y는 나보다 두 살 아래로 유순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어학원에 들어가던 첫날, 나는 레벨 테스트를 하기 위해 한 강의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나 말고 4명의 한국인이 더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Y였다. 사실 낯가림이 심한 Y와 이렇게까지 친해질 줄은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운명이었을까. Y와 나의 홈스테이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었고, 우리는 어학원에서 그리고 집 근처에서 자주 어울리며 급속도로 친해졌다.
사실 Y와 내가 이토록 친해진 건 특별한 계기 때문이다. Y와 나는 비슷한 시기, 홈스테이 가정과의 불화로 고민하고 있었다. 나의 홈스테이 가정은 외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Y의 홈스테이는 사정이 좀 달랐다.
진심이었든 아니든 겉으로는 친절을 베풀었던 나의 홈스테이 가정과 달리, Y의 홈스테이 가정은 대놓고 불친절했다. Y는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계 영국인 가족과 함께 살았다. Y에 따르면, 그들은 식사를 할 때 스푼 대신 손을 사용했고, 이러한 생활양식은 Y에게도 강요됐다고 한다. 가정교육도 문제였다. 홈스테이 가정의 아이들은 버릇이 매우 나빴다. 영어 실력이 좋지 않았던 Y를 무시하는 건 물론, Y의 지갑에 손을 대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Y는 홈스테이 가정을 떠나길 희망했고, 다행히 같은 어학원을 다니는 한국인들의 도움으로 맨체스터 대학 인근의 사설 기숙사를 얻을 수 있었다.
같은 시기, 나는 비교적 무탈하게 홈스테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나의 홈스테이에는 호스트인 중년 여성 H와 그의 두 아들이 살았다. 그리고 나와 같은 어학원을 다니는 스위스 남자애가 내 건넛방에 묵었다. (스위스에서 온 S는 나와 비교적 사이가 좋았다. 그러나 엄청 가깝게 지낸 건 아니었다. 영어 실력이 뛰어났던 그는 나보다 조금 더 영어가 유창한 한국인들과 자주 어울렸으며, 나와는 가끔 안부 인사 정도만 주고받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영국에서 맞이한 나의 스물세 번째 생일날 그 일이 벌어졌다.
생일날 아침, 나는 1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방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호스트 가족이 남긴 생일 카드와 작은 선물이 있었다. 호스트인 H와 그의 두 아들이 준비한 것이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는데, 생일선물까지 챙겨주다니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나는 호스트 가족의 호의에 무척 감동했고, 서둘러 1층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리곤 어김없이 어학원으로 향했다.
이날 호스트 가족과 나의 생활에서 조금 특별한 게 있었다면, 한국인 친구들과 생일파티가 있어 늘 함께하던 저녁을 생략했다는 것 정도였다. 그날 밤이었다.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귀가한 나는 방 안에서 쪽지 하나를 발견했다. “오늘 밤, 네 생일 기념으로 나와 함께 자지 않을래?” 마치 쓰레기처럼 구겨진 종이에 쓰인 이 한 문장에 내 가슴은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리고 이내 참을 수 없는 화가 치밀었다.
분명 그 쪽지는 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날 밤 집에는 H의 큰아들과 나뿐이었으니 누가 썼는지도 짐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귀가한 이후, 큰아들의 행동이 무척 의심스러웠다. 평소 방문 밖을 잘 나오지 않는 그였다. 그런데 그는 무언가 잘못을 저지른 양 안절부절못하며 집 안을 서성였고, 그런 그의 행동은 이 사건의 범인이 자기 자신임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단서였다. 나는 당장 H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급히 할 이야기가 있다고, 매우 중요한 이야기이니 늦게 들어오더라도 기다리겠다고.
늦은 밤, H가 돌아왔다. 하지만 사전의 전말을 들은 H는 입으로는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자기 아들을 깊이 믿고 있는 눈치였다. 나중에는 아들 친구가 놀러 왔다가 장난을 친 것 같다고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기까지 했다. 어처구니없는 변명이었다. 그날 이후로 H의 반격이 시작됐다. H는 내가 서랍장을 여닫는 소리, 문을 여는 소리가 시끄럽다는 둥 방문을 왜 잠그고 다니느냐는 둥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다. (그 사건 이후, 안심하라며 나에게 방문 열쇠를 쥐여준 건 H 본인이었다.) 더 이상 홈스테이에 머물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Y처럼 홈스테이를 나오게 됐다.
이러한 동병상련의 이유로 Y와 나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다. 특히, 내가 새 보금자리로 이사하기 전 나는 2주가량 Y의 기숙사 방에 몰래 얹혀살았다. 좁디좁은 방에서 동고동락하며 우리는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됐다. 이것이 Y와 내가 친해진, 그리고 함께 유럽 여행을 가게 된 계기다.
유학생 신분이라 지극히 가난했던 우리는 초저가 유럽 여행을 계획했다. 우리는 항공료는 저렴하지만, 서비스나 품질 면에서 악명이 높은 라이언에어를 이용했고, 숙소는 6인 이상이 함께 사용하는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룸을 이용했다. 밥값을 아끼기 위해 매일 게스트하우스에서 아침을 해결했으며 점심은 슈퍼마켓에서 싸고 양 많은 과자와 과일 등을 구매해 대강 때웠다. 이렇게 여행하기를 며칠. 우리는 마침내 런던과 마드리드를 거쳐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