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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서영 Feb 20. 2019

저, 타투 했어요.

뻥입니다.

얼마 전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내가 한창 대화를 하던 도중 무의식적으로 귓불에 매달려있던 귀찌를 당겨 빼자 그것을 본 상대가 물었다.

"그거 귀찌죠?"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상대는 다시 물었다.

"왜 귀를 안 뚫었어요?"

그러자, 나는 다소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왜 안 뚫었냐는 질문을 받는 게 재미있어서요."


나는 귀를 뚫지 않았다. 타투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화려한 머리와 패션을 보고, 당연히 귀를 뚫었을 거라, 혹은 몸에 그림 한 두 개쯤은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없다. 그리고 나는 그 예상을 시원하게 무너뜨리는 과정이 퍽 즐겁다. 왜?라고 묻는 사람들의 표정, 그 반응을 보는 것이 재미있다. 나는 네 생각대로 행동하지 않는단다, 하하!


물론 그렇다고 해서 피어싱이나, 타투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것만이 가지는 미학에 대한 열망은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할 수 없는, 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되돌릴 수 없는 것,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한 옅은 공포에서 기인한다. 귀는 한번 뚫으면 아물지 않는다. 타투도 지울 수는 있다지만, 그것은 새살이 돋도록 또 다른 상처를 내는 것일 뿐, 결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물론 많은 돈과 함께 제대로 된 전문가를 찾아가면 최대한 비슷하게 전과 같은 상태로 만들 수는 있겠지만)


나는 피어싱이나 타투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귀찌나 헤나 등으로 타협점을 찾는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연꽃이 핀 연못을 헤엄치는 잉어를 에어브러시로 새겼다. (사실 새겼다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다. 어렸을 때 먹던 판박이 껌의 판박이처럼, 색을 얹은 것뿐이니.)


타인의, 혹은 자신으로부터 시작된  기대, 예상, 편견 등에서 벗어나 보는 것-이라는 거창한 의도는 아니지만, 이번 글은 그저 내 타투를 자랑하고 싶어서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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