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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서영 Mar 04. 2019

아버지들이여,
딸은 당신의 작은 연인이 아니다.

제발 꿈에서 깨어나라.

나는 대한민국에서 보기 드물게 아빠와 친한 딸이다. 이게 얼마나 낯선 말인지,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여성이라면 모두 알 텐데... 그게 가능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딱 세 가지를 꼽자면


1. 어렸을 때부터 주말이 되면 산으로 바다로 공원으로 놀러 갔고, 가족여행을 자주 다녀서 아빠와의 '추억'이 많다.

2. 엄마가 아프셨을 때 아빠가 최선을 다 해 간호하는 모습을 봤고 지금도 부부금슬이 매우 좋다.

3. 조언자, 양육자, 훈육자로써의 역할을 확실히 했다. 


우리 집에는 몇 가지 룰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공부 못하는 건 괜찮지만 거짓말은 하면 안 된다"였다. 실제로 나는 하기 싫은 공부는 지지리도 안 하는 똥고집이었지만 그걸로 혼나는 일은 없었다. 다만 딱 한번 너무 굉장한(...) 성적을 받은 성적표를 숨긴 걸 들켜서 정말 호되게 혼난 적은 있다. 통금도 있었고, 분명히 엄격한 집이기는 했지만 그 훈육의 룰이 아빠의 KIBUN에 따라 바뀌는 일은 없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지만, 이유가 확실했다. 당연하지만 나는 한 번도 아버지에게 맞은 적이 없다. 그리고 지금 기억해도, 아빠와 엄마가 싸우는 모습 역시 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래서 어렸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모든 아버지가 저런 줄 알았기 때문에,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 딸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아주 순수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십 대 후반이 되어 대한민국의 많은 "아버지"라는 작자들이 양육자로써의 역할을 다하기는커녕, 폭력을 휘두르고, 심지어 성폭력까지 저지른다는 듣고 아주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자녀를, 딸을 상대로 말이다!


지금 SNS에서 도는 모 웹툰의 "귀여운 부녀"의 모습은 절대 제대로 된 양육, 훈육의 역할을 수행하는 아빠와 그의 딸의 모습이 아니다. 딸과 뽀뽀를 하고 싶어 단숨에 접시를 비워버리는 아빠, 다 큰 딸은 안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아빠라니. 세상에 어떤, 제대로 애를 키워본 아빠가 애를 저렇게 안아요. 애비야! 애 탈골된다! 아버지가 딸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건강한 모습은, 아내(=어머니)에게 잘하는 것뿐이다. 저런 유사연애 관계 같은 걸 귀여운 부녀관계 포장하는 거, 정말이지 너무 괴상하다.


물론 지금 우리 아빠의 모습 역시 우리 엄마의 희생과 노력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너무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아빠가 엄마한테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와 아빠의 성격이나 성향이 잘 맞는 것도 지금 아빠와 나의 관계에 영향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성인이 된 지금 아빠는 나를 양육의 대상이 아닌 한 사람의 장성한 어른으로 대하고 있어서, 페미니즘 이슈에 대해 전적으로 나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은 물론 우리는 자주 아빠의 사업 이야기를 하거나 나의 작업 방향에 대해 토론하고는 한다. (가끔 아빠에게 비즈니스 아이템을 물어다 드리는 건 덤 ㅎㅎ) 


지금은 아빠도 나이가 많이 드셔서 (작년에 환갑) 이전만큼 정정하시지 않고, 가끔은 내가 더 어른(?) 같을 때도 있지만 나는 여전히 우리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버지가 내가 자라나는 것을 즐겁게 함께 하셨던 것처럼, 나는 즐겁게 아버지가 늙어가는 것을 함께 할 것이다. 


그러니 모든 아버지여, 제발 꿈에서 깨어나라. 나 같은 딸은 거저 얻는 게 아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여자와 당신의 유전자가 반반 섞인, 그리고 당신의 아내가 죽도록 아파서 낳은 소중한 생명체인 것은 맞지만, 그게 딸을 향한 당신의 이상한 소유욕, 독점욕을 정당화해주지는 않는다. 당신이 해야 할 것은 그 아이를 책임지고 한 사람의 제대로 된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딸은, 당신의 작은 연인이 아니다. 


그러니 제발 아버지가 되어라,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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