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손하게 무례한 당신에게.
'익명'님에게
익명님 안녕하세요, 제 글 하나하나에 남겨주신 댓글 잘 읽어보았습니다. 전반적으로 공손하게 쓴 쌍욕 끝에 칭찬이나 조언이랍시고 뭔가를 덧붙이셨더라고요.
우선 익명님,
공손한 문체를 유지한다고 해서 익명님이 저지른 무례가 사라지지는 않아요. 고운 말의 탈을 쓴다고 해서 당신의 태도가 정당화되지 않는답니다. 익명님은, 기본 대화의 태도가 글러먹으셨어요.
익명님의 태도가 왜 무례하냐면요, 상대방을 '평가'하고 싶어하는 태도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보통 "칭찬"이나 "조언"이라면 어디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좋은지, 어디를 고치면 좋은지가 있어야 하는데 익명님의 글에는 그런게 없어요. 고압적인 자세로 상대방과 어디 네가 내 말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자, 그런 태도 뿐이에요. 저는 익명님께 평가 받으려고 존재하는 게 아니고, 익명님은 남을 평가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랍니다. 익명님은 지도 교수가 아니에요. 아니, 교수가 학생 논문에 점수를 매겨도 이것보다는 예의가 있겠어요.
아마 익명님은 자신의 의견이 굉장히 의미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건설적인 비판, 도움이 되는 조언 뭐 그런 거요. 뭐 그럴 수도 있죠. 개밥도 밥인데. 저도 나서서 헛소리 하는 걸로는 어디 가서 뒤지지 않는 사람이지만, 적어도 길가던 사람 붙잡고 하지는 않거든요. 근데 익명님은 만만한 상대- 주로 여자분한테 가서 JYP... 아니 속삭이시지 않나요? 자기와 동등하게 보이거나 좀 더 잘나 보이는 상대는 무서우니까. 자기 얘기를 들어줄법한 사람에게요. 그게 익명님 자신의 연약한 혹은 지나치게 비대한 자아를 유지하는 방법이라면, 아이코, 노선 잘못 잡으셨어요. 제발 부탁인데 나가서 친구 좀 만드세요. 맨날 자기 할 말만 일방적으로 떠드니까 종국에는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바이트 낭비 하시는 거잖아요. 관심받고 싶어서.
그래서일까요, 저는 익명님께서 하신 말씀에 "여자 치고"라는 투명 글자가 너무도 선명하게 보여요.
"(여자 치고) 글을 잘 쓴다"
"(여자인데) 용기 있다
"(여자가) 왜 그러냐"
사실 무언가에 특출 난 여성이라면, 아니 특출 나지 않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말이거든요. 여자들이 (주로 남자가 말하는) 예쁘다는 칭찬을 기분 나빠하는 것도 이것과 맥락은 같은데, 논지가 흐려지니 여기까지만 얘기할게요. 어차피 얘기한다고 해서 이해할 거라고 기대도 안 하거든요.
익명님께서 저를, 여자를 얼마나 하찮고 하등 한 존재로 보시는지, 저는 영원히 알 길이 없겠지요. 그런데 그런 여자가 객관적으로 자신보다 잘난 것 같으니, 필사적으로 얕잡아보는 게 참 같잖아요. 여기서 찔리면 지는 거, 알고 계시죠?
어쨌든 축하드려요, 저에게 이렇게 긴 관심을 받게 되었네요. 정말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짝짝~
아, 여기까지 쓰다 보니 문득 든 생각인데요, 저는 익명님께서 하도 무례하시길래 일단은 남성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혹시 실례가 아닐지는 사실 별로 관심 없어요. 그렇지만, 그래도 딱 한 번만, 조심스럽게 여쭤볼게요.
혹시 남자분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