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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서영 Mar 18. 2019

“작가님, 왜 탈코르셋 안하세요?”

여성은 무엇도 해명하거나 증명할 이유가 없다.


첫 책이 나온 후, 나를 계속해서 따라다니던 꼬리표가 두개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작가의 꾸밈노동"이었다.

내가 머리가 길고, 화장을 하기 때문에, 즉 '탈코르셋'에 참여를 하지 않기에 나는 "페미니스트 자격"이 없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페미니즘 콘텐츠를 다루는 사람으로써 여성혐오의 일종인 꾸밈노동을 하는 것은 백래시이며, 여성혐오에 일조하는 부끄러운 짓이고 수많은 "새끼 페미니스트"들에게 모범을 보이라는 논리였다.

애초에 강한 반발이라는 뜻이자, 성평등의 흐름에 반대하는 운동 및 세력을 뜻하는 "백래시"를 어떻게 개인인 내가 한다는 것인지... 그건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지만, 확실히 밝히건데, 나는 탈코르셋 운동을 언제나 지지하고 응원해왔다.

1차적으로 당장 개인의 편의와 경제적 이득,
2차 전통적 여성성 탈피를 통한 대상화 거부,
3차 꾸밈'노동'압박 타파 도모라는 점에서 말이다.

나는 이것에 대해 반박을 할 생각도 없고, 반박을 할 이유도 없다. 물론 나는 사회에서 요구되는 획일화 된 여성상 대신 더 다양한 여성상이 추구될 필요가 있다 생각하는 쪽이지만, 꾸미지 않는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꾸밀 자유를 논할 수 없단 의견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내가 의아한 것은, 정작 흔히 탈코(탈코르셋)라고 표현되는 머리 짧게 자르기와 노메이크업, 탈브라등은 모두 내가 해본 것들이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머리 관리가 귀찮아서 숏컷으로, 투블럭으로 치고 다녔던 사람이 바로 나다. (외려 머리가 너무 빨리 자라서 1개월마다 미용실에 가야했지만 말이다) 나는 브레이지어를 하지 않은지 만 3년째이고, 회사를 다닐 적에도 그랬고, 지금도 화장을 거의 하지 않는다. 하지만 화려한 것을 좋아하기에 가끔 특별한 날 내가 좋아하는 모습으로 변신하는 것을 즐길 뿐이다. 사실 그 모습조차도 전통적인 여성성과는 거리가 있어보이지만... 여튼 그게 나다. 하지만 바로 그 일부분만을 확대해석하고, 그렇게만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정말이지 사람 미치게 만든다. (혹시 그게 목적인가?) 그들의 논리는, 나의 그런 행동들은 나 개인의 편의를 위해 하는 일일뿐, 탈코르셋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니, 그럼 대체 뭐가 탈코르셋인데? 대체 뭐 얼마나 비장해야 탈코르셋이라는 이름을 '획득'할 수 있다는 거야?

심지어 그것이 나를 혐오할 이유가 되고, 비난할 이유가 되고, 내가 만든 콘텐츠를 불매하는 해시태그까지 만드는 이유가 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정말이지 할말을 잃었다. 내가 어떤 "인권운동가"처럼 여성혐오가 없다고 주장하거나 한 것도 아닌데도, 그들에게 나는 이미 그런 사람과 동급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나만 겪는 일이 아니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탈코'에 부합하지 않는 여성을, 그것이 나와 같은 작가이던, 아이돌이던, 심지어 팔로워가 좀 많을 뿐인 일반인까지 끌고 와 무차별적으로 '탈코하라'고 다그치는(라고 쓰고 사이버불리잉이라고 읽는) 것을 보며, 나는 공포를 넘어선 기괴함을 느꼈다.

페미니즘을 알기 전, 자신의 인생에 있어 "코르셋"으로 표현되는 것들의 비중이 높았던 사람일수록 탈코에 큰 의미를 두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자신의 싸움을 더욱 비장하게 생각하고 타인 역시 그 싸움에 참여하길 바라는 것이겠지. 가끔 그 마음이 넘쳐서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발현이 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 공격 대상이 코르셋을 만든 주체(남성중심적 사회)가 아닌, 그 사회의 피해자인 여성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아니러니이다.

우리가 싸워야할 것은 여성을 대상화하는 가부장적인 시선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코르셋)을 유지하지 않으면 생계를 위협받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고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바로 그 연결고리이다. 그걸 잘 이해해주는 상사가, 분위기가, 시스템이 얼마나 있을 것 같은가?

그런 현실에서, 단지 꾸밈노동 의제를 꺼내기 위해 "단백질 히잡"이니 "흉자", "애완견"이라 칭하며 조롱하거나, 탈코르셋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남의 인격이나 업적마저 깎아내리는 것은 너무도 이기적인 행동이다. 심지어 "코르셋녀"니 "백래셔", 심지어 "좆빨러" 라 이름 붙이는 것, 여성을 된장녀, 김치녀라 부르던 뭇 남성들의 행동과 똑같이 저열하다.


이미 여성의 삶은 충분히 힘들다. 여성은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사는 것조차 힘들다는 것, 누구보다 여성인 자신이 잘 알 것이다. 피해자처럼 보이지 않다러도 여성은 피해자가 맞다. 그것 자체가 싸움임에도, 더 격한 싸움에 참여하지 않는(것처럼 보이는) 여성을 비난하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


누군가는, 나는 그런 사회적인 굴레 안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탈코르셋'을 실천하기 쉬운 위치에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 글쎄,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인가? 실제로 어떤지를 떠나, 프리랜서니까 그렇게 보일 수는 있겠지.

그래,
나는 분명, 언젠가는 머리를 자를 것이다.
그리고 것은 분명 탈코르셋 운동의 일환일 것이라고 나는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가 지금은 하지 않겠다 선택했기 때문이다.


탈코르셋을 이유로 남을 비난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싶은 사람들이여, 당신이 어떤 마음이나 심정으로 탈코르셋을 했는지 솔직히 관심없다. 자신이 선구자이고 우매한 군중을 깨우치게 만든다고 생각하던, 충격요법이던, 당신의 전술 같은 거 나는 모르겠고, 적어도 내 싸움은 내가 알아서 할테니 당신의 싸움은 알아서 하길 바란다. 나의 싸움은 나를 위한 것이다.

나의 존재를, 타인의 존재를

각성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지 마라.


나는 당신의 사이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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