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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서영 Mar 21. 2019

"천생 여자"는 칭찬이 아닙니다.

내가 요리를 잘하는데 왜 네가 좋아하냔 말이다

우리 아빠는 출장이 잦으신 편이다. 여느 때처럼 긴 출장을 마치고 귀가하신 아빠를 위해, 다음날 아침 나는 오랜만에 아침밥을 차려드렸다. 밥에 된장찌개, 뭐 그 정도였던 것 같은데, 여하튼 아빠는 아침상을 기쁘게 받으셨고, 맛있게 드셨다. 그날은 마침 주말이었고, 외할머니, 그러니까 아빠의 장모님을 뵈러 가는 날이기도 했다.


외할머니댁에 도착하자, 할머니는 여느 장모가 그렇듯(혹은 여느 한국인이 그렇듯) 사위인 아빠를 반기며 밥은 챙겨 먹었냐 물었다. 아빠는 기쁜 것을 애써 감추는 듯한, 하지만 그 의도가 훤히 보이는 중년 아저씨 특유의 은근한 말투로 우리 딸이 차려줬다고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아유 좋겠네, 자네가 딸을 잘 뒀네, 그런 말로 아빠의 말에 장단을 맞춰주셨다. 그런데, 그 말에 아빠가 괜히 너스레를 떨며 말씀하는 것이었다. 


"딸이 응당 아빠 아침밥 정도는 차려주는 거죠."


그 말에, 나는 하던 모든 것을 멈췄다. 그리고 싸늘한 얼굴로 아빠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아빠, 내가 아빠에게 아침밥을 차려준 이유는 아빠를 사랑해서지, 내가 딸이라서가 아니야."


아빠는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차려준 것도 고맙고, 너무 좋다고 뭔가 변명을 계속하셨지만, 나는 계속해서 아빠를 쏘아 부쳤다. 세상에 응당 그래야 할 것이 어디 있냐고, 딸이라 차려준 건 무어냐고, 그럼 내가 아들이면 안차려 줘도 되었던 거냐고, 결국 아빠는 내게 사과를 하셨다.


사실 나도 알고는 있다. 그게 아빠의 의도가 아니었다는 것을. 아빠는, 나름대로 장모님께 내 자랑을 하던 중이었다는 것을. 장모님의 손녀딸이, 저의 딸이 저를 이렇게 사랑해서 아침밥도 얻어먹고 다닙니다 허허 애가 참 착하지요, 잘 커줬지요, 그런 너스레의 일종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더욱이 그 문장에서 '딸'이라는 단어가 중요한 게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나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말에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그걸 듣는 사람도 그렇게 믿게 된다. 그렇기에 거기에서 '딸'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안 됐다. 그 뒤에 "응당"이라는 단어가 와서도 안됐다. 거기서 강조되어야 할 것이 딸의 의무가 되면, 나는 가부장제의 위계질서에 의해 집안의 가장인 부친에게 밥을 차려다 바친 하찮은 여식이 되어버린단 말이다. 가족을 사랑해서, 직접 아침밥을 차린 내 마음을 그렇게 취급하면 안 되지. 아무리 결과가 똑같다 하더라도, 나에게는 이 과정이, 그 해석이 아주 중요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아빠가 고마워하기를 바랐다.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기를 바랐다. 


겨우 아침밥 차린 걸로 X랄이 풍년이라고 할 수 있다. 유난이라고, 유세라고, 뭐라 부르던 상관없다. 그 '겨우'는 '겨우'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있는 힘껏 난리를 친 것이다. 그래야지 다시는, 비슷한 경우가 생겨도 그렇게 말하지 않을 테니까.


사실, 나는 요리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의외라는 소리를 정말 많이 들었지만, 뭐, 선입견까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내가 만들어서 내가 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손수 만든 요리를 누군가에게 대접하고, 상대방이 그것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그게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그것뿐만 아니라 각종 공예나 자수 같은 것도 좋아해서 꼬물꼬물 작은 소품을 만들어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것도 즐겁다. 하지만, 어디에 가서 나에게 이런 취미가 있다는 것을 굳이 밝히지 않는다. 


그것을 선뜻 밝히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글의 처음과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그 취미들이 흔히 사회에서 "여성스럽다"라고 칭하는 취미이기에,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무언가를 '여자라서 좋아하는 것' 혹은 반대로 '여자니까 응당 잘해야 하는 것'이라고 너무나도 쉽게 평가한다. 심지어 "여성 여성 하다"는 게으른 칭찬을 하며 은근히 자신에게 해주길 바라는 뻔뻔한 인간들도 도처에 널려있다. 그건 착취예요, 님아.


요리, 자수, 뜨개질 등의 일은, 바로 여성의 노동이었기 때문에 하등 하게 취급되었다는 내용의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나는 그것에 백번 동의한다. 남성이 요리하는 문화도 비교적 최근에야 들어오지 않았던가. 여성의 일은, 노동은, 너무나도 쉽게 평가절하된다. 


더 이상 그렇게 두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내 재능이고, 나라는 사람이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유세 떨고, 유난 떨고, 난리난리를 칠 것이다. 마구 뽐내고 자랑할 것이다. 물론, 내가 원한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쓰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 역시 나의 선택이지 결코 내 의무가 아니다. 이것은 내가 여성인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엮지도 않았으면 한다. 


여자라서 응당 그래야 하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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