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제대로 식샤 좀 합시다.
이것은 내가 아는 어떤 언니의 이야기이다.
어느 날, 남자 친구와 함께 밥을 먹던 언니는 밥상에 수저를 내려놓고,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그게 대체 어떤 막돼먹은 행동이냐고 할 수 있겠으나, 사실 진짜 막되어 먹은 것은 언니의 남자 친구 쪽이었다.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아구아구 쑤셔 넣듯 밥을 먹는 그 꼴이 그렇게도 보기 싫더랬다. 상대방이 먹는 속도는 안중에도 없었고, 대화 한마디 없이, 그저 '섭취'에만 눈이 돌아가 있는 그 모습을 보니 자신이 사람을 만나는 건지, 짐승을 만나는 건지 구분이 안되더라고. 물론, 언니의 남자친구가 그날따라 유난히 배가 고팠을 수도 있다. 혹은 너무도 피곤해서 밥을 먹는 행위에만 집중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언니는, 그날따라-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것을 본 눈을 하고 있었다.
사실 먹는 모습에서, 상대에 대해 많은 걸 읽을 수 있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 잘 먹나요"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쩝쩝거리며 먹는 사람, 햄스터마냥 볼이 터질 듯이 음식을 욱여넣는 사람, 혹은 경쟁하듯 식탐을 부리며 자기 몫을 덜어두는 사람들 같은 것이다.
먹는 모습뿐만 아니라, 먹기 전후의 모습으로도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집에서 밥을 먹는다면 밥을 먹기 전 후로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고 넣는지, 식사를 마친 후 (백번 양보해서) 밥그릇과 수저를 싱크대에 가져다 놓는지 같은 것. 혹은 밖에서 먹는다면 티슈를 깔고 수저를 놓거나, 컵에 물을 따르는지, 반찬이 모자라면 가지고 오거나 갖다 달라고 부탁을 하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이걸 줄여서 흔히들 "밥상머리 예절"이라고 부른다지. (만약 집에서, 혹은 식사자리에서, 단 한 번도 이런 기억이 없다면 지금이 바로 자신의 인생을 돌아봐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먹을 때야, 짝다리 짚고 노트북 보면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게 뭔가. 하지만 같이 먹을 때는, 상대방의 페이스에 맞춰 먹으면서, 필요하다면 대화도 나누고, 상대방의 행동을 관찰하고 그에 맞춰 배려하는 행위가 필수이다. 그게 힘들다면 양해를 구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밥을 먹는 행위가 단순히 영양분을 섭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교행사라고 생각하면 쉬울까? 물론 이게 귀찮고 힘드니까 혼밥족이 늘어나는 거라는 생각도 들지만 말이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이런 습관을 가진 사람과는 상종하기 싫기 마련이지만, 내가 정말 의아한 것은, 이런 끔찍한 식 예절을 가진 사람들은 왜, 유난히도 남성이 많은 것일까?
누가 쫓아오나? 뺏어 먹어? 대체 왜 밥을 얌전히, 천천히 먹지를 못하는데? 유전적 요인이라고 변명하기에는 사냥감을 쫓거나 천적에게 쫓기는 선사시대가 지난 지 한참이다. 아니, 그렇게 급하면 뜨신 밥은 왜 먹나? 생쌀이나 퍼먹지. 숟가락 젓가락은 왜 써? 손으로 퍼먹지. (절대로 손으로 밥을 먹는 문화권을 비하하는 의도로 쓴 것이 아니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게다가 그 와중에 또 맛있는 것만 쏙쏙 골라먹지. 정말 대체 왜 그러는 건데?
아마 그것은, 날 때부터 남자였기 때문이리라. 아들이라서, 남자라서, 당연히 제 손으로 밥 한 번 차리는 일 없이, 치킨을 시키면 당연히 닭다리를 차지하고, 명절 때가 되면 당연히 큰 상에 앉아 당연히 고기가 듬뿍 들어간 국을 건네네 받던 것들이 켜켜이 쌓여 그런 진상 결정체가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아마 그렇게 당연한 듯한 '대접'을 받다 보니, 그것이 당연히 자신이 누릴 '권리'라고 생각하게 된 것 아닐까. 그러니까 그것을 빼앗길 것 같은 순간이 오면- 그러니까, 함께 식사하는 자리와 같이-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악착같이, 혹은 무의식적으로 식탐을 부리는 것이다. (설마 상대방이 먹는 게 아까워서 그런다는 저열한 생각에서 비롯되는 않았다고 나는 굳게 믿고 싶다.)
자, 식탐자들이여. 이제는 사람이 되어야 할 때이다.
우리는 짐승이 아니기 때문에 조리된 음식을 먹는 것이고, 인간이기에 먹는 모습 역시 그들과 구분되어야 한다. 그게 예절이다.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을 때는 사람 대 사람으로 눈을 맞추고, 대화를 하고, 페이스를 맞춰야 한다. 그 상대가 연인이든, 친구이든, 동료이든, 똑같이 숟가락을 들고 함께 식사를 한다면 말이다.
비단 밥을 먹을 때뿐만이 아니다. 상대방을 살피는 태도, 그게 문명인으로써 할 수 있는, 아니해야 하는 행동이다.
우리, 제발 문명인처럼, 제대로 식샤 좀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