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조선시대 여자처럼 고분고분 싱글싱글한 여자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얼굴에 구름 끼는 날을 찾아보기 힘든 나다. 그러나 천재는 나의 미세한 기분 변화도 기가 막히게 알아 챈다. 그런 날은 인간 농담 제조기가 된 것마냥 웃긴 얘기들을 주렁주렁 만들어서 발사한다. 무엇보다 이 남자는 말 자체를 예쁘게한다.
몇 주 전 천재네 집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그는 요즘 주말이면 부쩍 낮잠을 잔다. 식사 후 노곤해 보이길래 나긋하게 말을 건넸다.
"이제 또 (낮잠) 잘 거지?"
"아니 너 (식탁이랑 설거지) 치우는 거 보고"
"내가 안 치울까 봐. 안심하셔."
"아니, 네가 혼자 치우는데 외로울까 봐.."
심쿵한 한 마디로 그날 부엌일은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마치 연중 크리스마스 찬가를틀어놓고 지낸다 느낄 때가 있다. 이 남자에게선 가끔 영화에서 본 듯한 미쿡 젠틀맨이나 영국 신사 향기가 난다. 마초처럼 통 큰 상남자 같다가도 둘이 있을 땐 더없이 다정해진다.
한 번은천재의꿈속에 내가 나왔다 한다. 배경은 지하철 내 전철탑승구. 그날따라 내가자기를 쫓아다니며, 내머리가좋다고 계속 자랑을 늘어놓았다 한다. 현실에서는 내가 그보다 머리가 나쁘다며 가끔 자책하는데, 꿈은 실제와 반대로 꾸기 마련인가 보다. 꿈속에서 그는 막 바삐노선을 갈아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내가 자꾸 '나 머리 좋다'며 못 걷게 방해해서 당황한 듯했다.
그래 꿈 속이었지만, 날 그 자리에 두고 다른 전철 노선으로 갈아타러 갔다 한다. 물론 나는 천재 옆에 계속 나타나,따라다녔기에둘이 끝내 함께이긴 했다 한다. 그러나 꿈속이라지만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나를 귀찮게 느낀 찰나의 대목, 그 지점에서 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렇게 말이다.
"우씨!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라는데, 내가 좀 자랑했다고 귀찮아한 거네. 역에 두고 가고"
"...."
"꿈속의 천재를 대신해서 현재의 천재가 벌을 받으라"
그는 웃자고 한 말에 서슬이 퍼래진 나의 눈빛 레이저를 보자 적잖이 당황했다. 고문의자나 교수대를 방불할 분위기였다. 나는 그 틈을 타 검지와 엄지 손가락을 장전했다. 그리고 천재의 이마로 돌진해서꿀밤 5대를발사했다. 한 대만 때리려 했는데, 자꾸 헛손가락질에 명중할 때까지 직진한 것이다.
몇 분 후 혹시 기분이 어떨까 물었다.
"아까 꿀밤 5대 맞아서 어땠어?"
"1대 맞은 거 같았는데"
"죄에 비해 벌이 작단 의미인가?"
"응... 엉?"
가끔 얼버무려 내 말을 잠정 인정해 주는 그. 그의 너그러움은예쁜 비언어적 매너이며 잔잔한 평온함을 준다.
천재의 어머니는 참 인텔리전트한 신여성 같았다. 천재가 대학 1학년 마치고 음악(작곡)하겠다고 휴학을 강행했을 때, 그의 어머니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씀하셨다 한다.
"젊어서 그런 방황도 다 해보는 거야. 하고 싶은 대로 (잘 방황) 해"
대학 1학년이면 조급해하며 공부해라, 성공해라 닦달하기 쉬운 것이, 어머니들 마음일 텐데 말이다. 가끔 천재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회상하는 말을 들을 때면, 참 배포 있고 품이 넓다 느낀다. 그리고 종종 천재에게서 그런 어머니의 여유로운 품이 스며 나온다.
며칠 전 천재가 친한 동창인 석철(가명)씨에 대해서 말할 때였다.
"석철이도 자수성가한 친구지. 와이프가 간호사고 학교 다닐 때 만나 부부가 되었지"
"의사, 간호사 커플이 꽤 되나 봐?"
"의대와 간호대가 가까이 붙어있어 학교 다닐 때 눈이 맞는 경우 꽤 되지"
"글쿠나. TV 드라마 같은데 보면 처갓집에 열쇠 3개 요구하는 그런 장면 있잖아. 학생 때 만나면 그런 거 요구 안 하나?"
"그니깐. 영악한 여자들은 (의사) 면허 따기 전에 학생 때 남자를 잡는 거지.""
"...."
난 '영악'이라는 단어가 왠지 이질감 내지는 반감이 들어 물었다.
"그럼 나는 어떤 거야? 나도 영악해?"
"넌 영악과는 거리가 멀지."
"그럼?"
"넌, 주님의 뜻이지!"
"그지? 어쩜 이리도 정답만 말하는지. 천재 맞네!"
짝꿍은 우리 인연이 작위적인 뚜쟁이의 결과물이 아니라 '운명'이라는 말을, 내 세계관과 가치관을 배려해서 풀어 준 것이다. 명품 브랜드 한 번도 산 적 없고 심지어 천재 만나기 전까진 '사'자 남자는 질색하던 나였다. '사' 자 붙는 남자들을 혐오하듯 싫어했던, 오만한 나의 선입관을 나중에 알고는 불편했을 그이다. 혼수로 열쇠는 커녕 썸 탈 때부터 내가 가난한 집 딸임을 강조했다. 우리 집은 대대로 전통이 있는데, 다들 시집, 장가갈 때 집에서 혼수 같은 거 하나도 안 해주었다고 못 박기도 했었다.
하지만 짝꿍 천재는 종종 나의 선입관이 담고 있는 이 사회 부의 불평등, 기득권의 만행, 없는 자의 편견과 아집, 열등감의 상처, 고집스러운 저항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어...."하다가는 "그랬구나"로 응수할 뿐이었다. 그는 내 인생이 품어낸 날 선 생각들을 담담히 품에 안아 주곤 했다.
천재는 최근 부쩍 나의 꿈을 자주 꾼다 한다. 1일 1 꿈은 아니지만 내가 무슨 꿈 꾸었냐고 물어보면 다섯에 한번 이상은 내가 출연하는 듯한다. 그래 한 번은 이리 물어봤다.
"어제도 꿈에 내가 나왔어?"
"그런 듯?"
"내가 꿈에 자주 나오는데, 출연료 줘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럴까. 요즘 사는 것도 빠듯한데. 출연료 줘야겠다. 얼마야?"
"이그 농담이야"
그는 올초 생일날, 나로부터 일취월장 사랑상을 받은 바 있다. 근데 요 며칠 전부터 이런 말을 한다.
"내가 (자기도) 일취월장 사랑상 줄까?"
2월에 조카진국이가 사업 관행으로 행했던 일로 세금추징을 당했다.(포레스트 운남의 잭팟(0) 이모, 죽고 싶어요) 그 아이는 현재 어디서고 돈을 끌어모을 데가 없어, 이번에도 내가 영끌해서 추징된 1000만 원가량을 막아 주었다. 나름 건실하게 살고자 했던 청년이었다. 작년 초 사업실패와 결혼연기로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오기도 했다. 사업이 잘 풀릴 때는 수입이 수억 원대였다는데, 그도 몇 년 못 갔다. 조카의 엄마이자 나의 친언니는 작년 8월부터 디스크 수술을 거듭하느라 올초까지 일을 잘 못 하고 있다. 그래 두 모자의 생활비도 나와 우리 형제자매가 몇 차례 돈을 모아 갖다 주었다.
천재가 내게 사랑상 줄까, 묻는 질문이 담은 함의를 알고 있다.
'너, 요즘 힘들지? 내가 힘이 되어 줄 테니깐, 어려우면 망설이지 말고 말해줘'
그리고 실제로도, 천재가 조카일로 물질적 지원을 몇 번 해주었다. 연인단계부터 이런 가정사를 보여야 하는 게 못내 창피했다. 며칠 전 그만 천재 앞에서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조카한테도 내내 그 아이가 잘못했다고 거이 채근하지 않았다. 남자가 사업하면 몇 번 말아먹는 것은 무지기수이니 기죽지 말고 힘 내라고 했다. 그러나 작년 여름부터 누적 1억 원 가까이 이 모자를 도와주면서 정말 영혼이 탈탈 털리는 느낌이 들었다. 벼랑 끝에 선 자가 가족이든 누구든 내 손이 닿는 곳에 있다면 도와주는 것이 맞지 않는가. 다행히 그때 세입자가 준 전세보증금이 수중에 있어 5000만 원은 거기서 우선 충당했다.
허나 천재는 이토록 늠름한 이모의 모습 이면에 오래도록 견뎌온 삶의 무게와 눌림, 이내 서글픔을 읽고 있었다.
"그냥 이런 후진 모습들을.. 연애 단계에서(부터) 민낯을 드러내는 게 너무 서글퍼.."
"이그,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그리곤 살포시 내 손을 잡아주며 토닥여 주었다. 내 남자의말이 성숙한 것은,그가 나의 고통에 누구보다 마음을 다해 공감하고 배려해 주기 때문이다.뭐든 시시비비를 가리기 보다 그윽한 이해의 눈빛과 공감의 말로 뽀송뽀송 말풍선을 남겨주는 내 남자.
나는, 사랑을 믿지 않았고 그래서 사랑의 이름으로 다가오는 세상을 피 튀기듯 처단하며 살아왔다. 그는, 사랑이란 단어를 혐오하듯 기피하는 내게, 공해와 같은 사랑타령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를 삶으로 또 비언어적 배려로, 그렇게 사랑 초보자를 기다려주며 가르쳐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