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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욱 Sep 06. 2020

춤추는 하얀 국화

숨은 명소를 소재로 한 (스마트소설)


  춤추는 하얀국화

 

  아버지 49재를 끝내고 법당에서 나오자 까치가 울었다. 영정사진과 작은 제사상을 받쳐 든 가족들이 의식을 진행하는 스님 뒤를 따라갔다. 나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며 뒤를 따랐다. 쏟아지는 햇살이 따가워 살아있는 존재 같았고 담장에 모습을 드러낸 그림자들이 영혼들 같았다. 스님은 꽃봉오리 모양으로 기와를 얹은 구조물 앞으로 일행을 이끌었다. 그곳의 작은 철문을 열면 영정사진을 태우기 위한 아궁이가 있다. 그 꽃봉오리 가마 앞에 제사상을 차리고 불경 소리에 맞춰 차례로 나와 절을 했다. 나는 무리를 빠져나와 뒤에 섰다. 내 행동을 이상하게 여긴 고모가 뒤돌아봤지만 개의치 않았다. 가족들의 절이 끝나자 제사상에 세워두었던 영정사진을 꽃봉오리 가마 앞으로 가져가 불을 붙였다. 영정사진은 불이 잘 붙지 않았다.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도 몰랐다. 겨우 불이 붙은 영정사진이 꽃봉오리 가마에 들어갔다. 스님이 영정사진에 붙은 불이 꺼지지 않도록 철문을 반쯤 열어두었다. 그을음이 아지랑이처럼 일었다. 모두 경건한 의식에 빠졌을 때 나는 머리에 흰 국화를 올리고 골반을 돌리면서 춤을 췄다. 

  아버지 49재 날 춤을 추기로 했다. 내가 무용가가 되는 것을 반대한 아버지는 내가 집을 나가 무용과에 다닐 때부터 내 공연에 한 번도 오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고모를 통해 내 학비를 대주었다. 고모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 비밀을 고백했다. 나는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외롭게 말년을 보낸 아버지 장례식 때 오열했다. 화장장에서 아버지를 위해 춤을 춰야겠다고 마음먹고 나서 준비한 안무는 훌라였다. 평생 촌에서 농사를 지었던 아버지와 어울리는 춤이었다. 태양의 기운을 받아 온몸으로 발산하고 싶었다. 머리에 꽃을 얹고 골반을 돌리는 훌라를 불경 소리에 맞춰 연출한 것이다. 슬픔을 기쁨으로 승화하는 것이 아버지의 영혼을 위한 것으로 생각했다. 

  49재는 돌아가신 날로부터 49일 동안 7번, 7일째마다 제를 지내 돌아가신 분의 명복을 비는 천도 의식이다. 이레 만에 한 번씩 제를 올리는 이유는 사람이 죽으면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 육신 없이 혼령만 있는 중음신으로 떠돌다가 49일 안에 자신의 업을 심판받기 때문이다. 유가족이 영가를 위해 공덕을 지으면 좋은 곳에 갈 수 있다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혼신을 다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춤을 추는 것이다. 아버지가 내 춤을 보면서 두둥실 좋은 곳으로 가서 편히 지내시길 바랐다.  

  영정사진이 타들어 가는 동안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는 하얀 국화를 머리에 얹고 골반을 돌리며 훌라를 췄다. 목탁 소리에 맞춰 태양을 표현하려고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둥근 모양을 만들었다. 마음을 표현하려고 두 손을 가슴에 모았다. 처음엔 사람들의 눈길에 몸이 뜨거워졌지만 용기를 내고 의식을 위한 주문을 외웠다. 고모가 달려와 나를 말렸지만 단호하게 물리쳤다. 고모는 내 의식의 의미를 알아차리고 물러났다. 가족들과 경내 사람들은 나를 정신 나간 여자로 알았을 것이다. 춤출 때는 몸짓과 시선이 일치해야 한다. 손을 뻗으면 손끝을 바라보며 몸을 움직여야 동작이 자연스럽다.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춤에 빠져들었다. 춤을 추면서 아버지를 생각했다. 해외여행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아버지를 휴양지의 뜨거운 태양 아래로 데려갔다. 목탁 소리가 점점 커졌다. 나는 머리에 하얀 국화를 하나 더 올린 다음 골반을 유연하게 돌리며 춤을 췄다. 눈을 감고 춤을 추면서 손가락 끝으로 그림을 그리듯이 극락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극락의 바다를 표현하려고 손목을 돌리며 물결 모양을 만들었다. 넘실넘실 손 아래 영롱한 물이 만져지는 것 같았다. 나는 발그레해진 볼을 타고 흐르는 땀을 계속 훔쳐내며 훌라가 상징하는 평화와 온화한 마음 그리고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심오함을 표현했다. 훌라는 감정을 표현하는데 적합한 마법 같은 춤이었다. 마무리 동작은 꽃망울이 활짝 피는 모습이었다. 내가 춤을 끝내자 아버지의 영혼은 연꽃의 형상으로 변했다. 

  눈을 뜨자 순결하고 황홀한 햇살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영정사진을 태운 꽃봉오리 가마 앞으로 갔다.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춤을 출 때 바람이 불었다면 그 바람도 표현했을 것이다. 소나무에 앉은 까치가 울었다. 북한산 서쪽 기슭에 있는 조계종 소속 고려시대의 고찰인 진관사는 신비로운 소나무들이 병풍처럼 둘러싼 곳이다. 탈피하듯 비늘을 벗은 소나무 기둥들이 금빛이어서 오늘 특별 공연을 위한 무대장치 같았다.

  다시 까치가 울자 소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었다. 까치가 밥 먹을 준비를 하는 듯했다. 꽃봉오리 가마 옆에는 연꽃 받침 같은 둥근 돌조각이 있었다. 그곳에 제사 음식이 가득했다. 종손이었던 아버지는 어머니 보다 제사를 중요시 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낳지 못하고 고생만 하다 돌아가셨다. 집을 나오던 날 나는 제사상 위에 올라가 춤을 추고 싶었다.

  까치를 위한 밥상을 바라보다가 꽃봉오리 가마의 철문을 열어 보았다. 자세히 보니 철문의 주위는 온통 그을음이 두텁게 달라붙어 있었다. 거기에 아버지의 그을음이 더해져 윤이 났다. 아버지는 검디검은 그을음을 내고 희뿌연 재를 남기고 가셨다. 아버진 내 춤을 보면서 흐뭇하셨을 것이다. 고모는 내가 태양 아래서 춤을 출 때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 오랜만에 태양을 품은 춤이라 만족스러웠다. 그동안 일상에서는 잘 쓰지 않는 근육을 깨워 흥겹게 춤을 췄다. 담아 두었던 감정이 춤을 통해 빠져나가가자 다른 내가 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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