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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다운 김잡가 Sep 02. 2024

Day36_해안절벽에서 다이빙할 용기는 다음 기회에

꽉 채운 여행, 사우스포인트 >>푸날루우 비치>> 화산공원

늦잠

여행 일수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인지라 하루 꼬박 잡아도 모자랄 힐로를 어거지로 일정에 끼워 넣었다. 일찍 움직이면 브랙샌즈도 가고  힐로에서 점심은 먹을 수 있으니까. 여유로운 여행은 했으니 하루정도 빡빡하게 움직여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출발이 10시, 이미 늦었으니 힐로는 또 다음으로 미뤄둔다.

그간 내가 봐온 것들과는 또 다른 느낌의 차창밖 풍경이 펼쳐진다. 나무의 종류도 다르고 눈으로도 충분히 습도가 가늠이 된다.

코나를 벗어났다.


원래는 한 커피농장에 들렀다 블랙샌즈로 가려고 했는데 커뮤니티 카페에 올라온 글을 보니 사우스포인트에 가고 싶어 졌다.


커피 한 잔과 맞바꾸고 얻은 인생 절경, 사우스 포인트

커피농장을 지나쳐 사우스포인트로 가는 내내 잘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커핑농장이 더 나았으려나.

내비게이션이 사우스포인트 안내를 종료한 후 길 따라 펼쳐지는 들판의 소와 말을 보며 10분 이상 더 운전을 해서 들어가면 해안절벽이 펼쳐지고 그 근처에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는 것이 보이고 나서야 비로소 도착을 실감할 수 있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좀 무섭기도 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내 몸이 바람에 나부껴 맑고 깊은 바다 쪽으로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경이로운 해안절벽.

아름다움에 절로 터져 나오는 감탄과 기분 나쁘지 않을 만큼의 공포가 공존하는 대자연의 한 켠에 앉아있다 보면 장엄한 신의 작품에 압도되어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아무리 커피농장이 맛집이었어도 아니 그곳이 설령 미슐랭 스타 맛집이었었다 할지라도 이곳에 온 것이 단 1%도 후회되지 않았을 것이다.


젊은 커플이 다이빙 준비를 한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허락을 구하자 예쁘게 구도가 잡힐 곳을 알려준다. 찍는 김에 저리로 가서 찍으라고. 바람이 세서 옮겨가는 내낸 겁은 났지만 몸을 옮기고 나니 눈이 호강하는 명당이었다.

자기도 뛰어들고 싶다는 아들을 겨우 뜯어말렸다. 내년을 기약하며 하와이에 다시 올 구실을 하나 더 만든 셈이다.


크록스 하나 신고 대여섯 번 다이빙을 한 소년이, 그를 그냥 뛰어들게 놔두는 부모의 마인드가 부러웠다. 혹시 내가 하와이 로컬이었다면 허락했으려나.


(아마도 수없이 많은 절벽 다이빙을 관람할 수 있었던 것은 오늘이 하와이 임시 공휴일이었던 덕이 가장 큰 것 같다.)



푸날루우 블랙샌즈 비치

오늘은 식사할만한 어디를 들를 시간이 없다.

푸날루우 블랙샌즈비치에 들러 간식가방을 탈탈 털어먹었다. 먼 길이라 간식 두둑이 챙기길 참 잘했다.

근처 식당이 있다고 들었지만 사우스포인트에서 바다에 뛰어들지 못한 두 아이의 아쉬움은 밥이고 뭐고 다 됐고, 바다에 담가야만 풀리는 것이었다.

블랙샌즈비치도 바람이 많이 불어 큰 파도 때문에 깊이 들어갈 순 없었지만 아이들은 가능한 선에서 최선을 다해 물놀이를 했다.

블랙샌즈비치에 가면 거북 보는 것은 쉽다고들 하는데 나는 두 번째 방문, 두 번 다 못 봤다. 사실 한 마리가 있다고 했는데, 이상하게 미련이 생기지 않았다. 구불거리는 길을 내리 달려오느라 멀미도 났고 그냥 주저앉아 쉬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나는 새까만 모래를 만지작 거리며 만족스러운 휴식을 취했다.

갈길이 바빴다. 3시가 거의 다 되어서 바다를 나왔고 부지런히 화산공원으로 향했다.


빅아일랜드 화산국립공원 주니어 레인저 챌린지

여유가 있었다면 이키트레일을 했을 거다. 하지만 작년에 바닥만 찍고 왔던 것을 반복하기보다는 새로운, 시간 내에 가능한 것을 하기로 했다. 주니어 레인저와 홀레이 씨 아치. 심플하다.

짧은 시간 많은 것을 하려니 오늘따라 남편과 죽이 잘 맞았다. 인생 사는 동안 오늘만큼만 척척 맞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화산국립공원  비지터센터 데스크에서 주니어레인저에 도전하겠다고 하면 도전과제를 준다.

영어도 힘든데 하와이어를 쓴 고유 동식물, 지명 등이 답인지라 속도를 낼 수 없었다.

다 못해도 그냥 준다는 말도 들었지만 우리 집 아이들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기에 혼신의 힘을 다해 한 시간을 넘게 그곳에서 도전과제를 했다. 어렵게 얻은 배지를 그 어느 것 보다 자렁스러워하는 아이들이 한없이 사랑스럽다.


동화 속 무지개 동산을 만나다

작년에 왔던 라바튜브와 이키트레일 진입로를 지나 홀레이씨아치로 향했다.

가는 길에 생전 처음 보는 무지개가 얼마나 예쁘던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무지개의 시작점과 끝점이 보인다고 좋아했더니 F감성 1도 없는 남편은 정말 무지개의 원리를 몰라서 그러는 거냐며 무지개가 왜 생기는 거지? 하며 문제를 낸다. 알아. 빛인 거. 그냥 내 눈에 그리 보인다고.라고 했지만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의 남편. 이렇든 저렇든 극 T인 남편의 뇌에도 그 무지개가 너무 예쁜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는지 아이들과 함께 무지개와 함께 거센 바람 속에서 30분 넘게 뛰어놀았다.

용암이 흐르던 돌 위에서 거대한 무지개를 놀이터 삼아 뛰노는 가족들을 바라보는 나는 내내 감동이었다.

다시 열심히 한참을 내달렸다. 곧 해가 질 것 같아 마음 졸이며 여섯 시가 다 되어서야 홀레이 씨 아치에 다다를 수 있었다.


날마다 변하는 자연의 조각품, 홀레이 씨 아치

바닷물이 정이 되어 쉼 없이 때리고 깎아 만든 홀레이 씨 아치.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작품의 모양이 변했어도 그 누구도 감히 항의할 수 없는 최고의 예술, 자연. 이 작품을 보고도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가 있을까.

차창 밖으로 빠르게 지나친 풍경부터 우리 발이 닿았던 모든 곳마다 대자연의 경이로움에 온몸이 반응했던 황송한 하루다.


점점 해가 저물고, 거의 해가 바다에 맞닿을 때쯤 홀레이 씨 아치에서 다시 화산공원 입구로 향했다.

생각해 보니 자연이 주는 감독에 마음이 불러 육신의 굶주림을 잠시 잊었었나 보다. 갑자기 크게 배고픔을 느꼈고 주변 식당을 찾아보기로 했는데 마침 뇌리에 스쳐 지나가는 그곳. 그곳으로 향하기로 했다.


7년 만에 다시 간 추억의 장소

7년 전 재거뮤지엄에서 분출하는 용암을 육안으로 똑똑히 보았고, 그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그때는 식사를 먼저 했더랬다. 그때 들렀던 킬라우에아 롯지.

장식이 있는 벽난로는 그대로였으나 테이블들이 모두 바뀌어있었다.

같은 벽난로 앞에서 추억의 포즈를 취하는 아들을 보며 웃음 지었다.

순간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를 데려와 고생만 시켰었던 2017년을 생각하니 하와이를 고집했던 나 자신이 조금은 원망스럽기도 했다. 저 때면 괌이었어도 되었겠다 싶은. 하지만 그때의 추억을 갉아먹다가 세 번째 하와이행을 할 수 있었고, 다른 곳을 배제한 채 네 번째도 호기롭게 하와이를 선택할 수 있었던 밑거름이라 생각하니 또 한편으로는 잘했다 싶기도 하다.


오늘 하루는 참 짧았고 또 참 길었다.

세 곳을 모두 누리기엔 짧은 하루였지만, 주어진 시간 내에서 알차게 잘 보냈다 생각하니 뿌듯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힐로는 따로 하루를 잡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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