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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유 Apr 18. 2024

빌런 둘이 사이가 안좋아서 서로 싸움

나의 자기학대 연대기 (4) _ 학보사 (2)

https://brunch.co.kr/@kimmmmjae/15

* 선행 편이 있습니다. 보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 회사에 빌런이 둘인 경우는 사실 드물지 않을 것이다. 회사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둘이 빌런인 정도는 싸움도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우리는 신입이 다섯명이나 되는 일곱명짜리 부서였다는 것, 상급자와 최종결정권자가 각자의 이유로 빌런이라는데 있었다. 게다가 둘 다 데스크의 장, 실무 총책임자라는 각각의 위치가 있으니 좀처럼 해당 권력다툼이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편집장은 어떻게든 우리의 환심을 사기 위해 쏘카로 차를 빌려 여기저기 데리고 다녔고, 실무 총책임자인 간사는 우리를 휘어잡기 위해 자기 입장으로만 이야기를 전해놓은 외부인력을 자꾸 데리고 왔다. 이런 콩가루 집안. 이 집안에 질린 사건은 지금부터였다.


나는 가나안 성도이고, 현재는 무교이며 신은 있겠지만 어쩌면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일지도 모른다고 믿는 사람이지만 우리 대학교는 종립학교였기 때문에 일부 인물은 무조건 참여해야하는 종교행사 같은 것이 있었다. 그 날도 그런 행사 중 하나였다. 그 날의 종교행사는 기숙사생이 모두 참가해야하는 행사였기 때문에 나는 해당 종교행사에 참석해있었다. 큰 행사에 참석했을 때는 물론 휴대폰을 진동모드나 무음모드로 전환해놓는 것이 예의이지만, 나는 언제 학보사에서 호출이 올지 몰랐기 때문에 소리를 켜놓은 상태로 손에 쥐고 있었다. 그런데 휴대폰이 계속 반짝반짝거리는 것 아닌가.


처음에는 전화였다. 당연히 전화를 받을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응답하지 않았다. 두어번 더 온 전화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자로 바뀌였다. 전화도 문자도 모두 한 번호로 왔기 때문에 이제는 무시할 수 없었다. ****과 19학번 이**, 학보사 61기.

' 재유야 나 **인데.'

아마 첫 문자를 했을 때는 내가 그의 전화를 받지 않은 것이 모르는 번호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 뒤로 내가 지금 행사에 가있다는 것을 떠올렸는지 문자로 용건을 말했다. 용건은 간단했다.

' 편집장 형이 우리 지금부터 파업한다 그러고 뛰쳐 나가버렸는데 나 어떡해?'


하나님부처님알라님날아다니는스파게티괴물님.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지? 나는 행사장에 집행위원으로 참가중이었던 학보사 동기에게 문자를 했다.

' 야, **이가 지금 학보사에 무슨 일 있다는데 나 가봐야 할 것 같은데 기숙사는 어쩌지?(이 행사에 참여햐지 않으면 다음 학기 기숙사 입주를 할 수 없었다.)'

' 일단 가봐. 내가 너 물건 싹 챙겨서 참가했던 것처럼 해둘게.'


동기를 믿고 일단 신문사로 가니 불쌍한 동기가 오도카니 불 꺼진 편집국에 앉아있었다. 나는 그를 붙잡고 사정을 물었다. 그도 뭘 잘 아는 것 같진 않았다. 정확히는 자기가 아무것도 모르니 뭐라도 아나 싶어서 나에게 구조 요청을 했던 것에 가까웠다. 그의 말에 의하면, 편집장 형이,우리는 학형제도를 차용했다, 굉장히 화난 상태로 들어와 파업을 하겠다고 선언하더니 그만 남겨두고 나가버렸다는 것이었다. 아니, 다 같이 파업을 할 거면 뭔 설명을 해주고 파업을 해야지 냅다 파업을 하겠다고 선언해버리면 우린 뭐 어쩌라는 거지? 약하게 화가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지만 꾹 눌렀다.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러고 난 후 그가 무슨 돌발 행동을 해서 간사도 그의 파업 선언을 알아차렸던 것 같다. 간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편집국으로 왔다. 그리고 나서 우리밖에 없는 것을 알고는 모두가 모이면 자기를 부르러 오라며 사무실로 갔다.


우리는 짐을 들고 도망쳤다.




 우리가 짐을 들고 도망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일단 우리도 상황을 파악할 시간이 필요했고, 바로 위 상급자와 틀어질까 두려웠으며, 이 모든 사태를 우리가 뒤집어 쓸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뭔 이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둘은 다음날 쯤 아무튼 대충이나마 화해한 것 같았다. 아마도. 그렇지만 내 인내심은 이미 죽으러 간 지 오래였다. 시어머니를 둘을 모시는 기분이었다. 저 시기의 나는 우울증으로 인한 근막통증증후군으로 다리를 절었음으로, 이해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이 끝나지 않는 신경쇠약의 끝에, 나는 일단 탈출하기로 결정했다.


여기까지 읽은 당신은 궁금하겠지. 그래서, 파업선언은 왜 나온 거였을까? 자, 지금부터 내가 적는 것에는 거짓이 없음을 밝힌다. 그러니까 간사는 이전부터 우리가 일처리가 느렸기 때문에 자극을 받은 상태였고, 편집장이 당시 수습기자를 꼬셔 연애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가 취재를 핑계로 취재용 니콘 DSLR을 가지고 다닌다는 것도 알았다. 그는 그에게 이번 학교 행사는 자신이 취재하겠으니 편집국에 있으라는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우리의 멍청한 형은 그것을 어기고 취재용 카메라를 든 채로 행사장에서 수습기자와 꽁냥꽁냥하다가 걸렸고, 간사가 그를 크게 혼냈다.


... 예상가겠지만, 그는 그에 대한 반발로 파업을 선언했던 것이었다.


등신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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