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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유 Apr 03. 2024

대학 입학과 신경증의 극에 달한 나

나의 자기학대 연대기 (4) _ 학보사

앞선 모든 자기학대 연대기가 나 자신을 변화시켜온 계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라면, 이 이야기는 이제 빼도박도 못하고 내가 우울증 환자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다양한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아왔던 이유가 하나 있다. 바로, 이 일이 벌어졌던 이유가 학보사라는 특수한 환경과 주동자가 ROTC라는 특수성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점이었다. 이 이야기를 한 번 하려면 우리 학보사가 얼마나 이상한 공간이었는지, 그 사람이 얼마나 군대식 문화에 절여졌는지를 이야기 해야했는데 그걸 일일이 설명하자니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은 확실하게 내 삶의 많은 것을 바꿔두었기 때문에, 이야기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미리 이야기해둘 것이 있다. 모든 학보사가 그렇진 않다. 모든 기자들이 다 그런 사람은 아닐 것이며, 모든 RT들이 저런 폐급일 리는 없다. 단지, 우리 학교 학보사가 별로였으며 저 자식이 폐급이었던 것이다. 이 일을 해결해나가면서 나는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를 접해야했는데, 그 이야기를 다 하자면 한 세월이 걸릴 것이 뻔하므로 나는 딱 내가 겪은 것만 이야기할 것임을 미리 언급한다. 




꽃피는 춘삼월, 나는 모 대학 지방 캠퍼스에 입학했다. 대학에 오면 꼭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을 하면서 나는 내가 기자 생활에 제법,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취재도 재밌고 인터뷰도 재밌고 재미 없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어쩌면 자연스럽게 나는 기자 생활을 하는 것을 꿈꾸게 되었는데, 학보사 활동이 나중에 기자로서 일 할 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학보사에 입사했다. 


우리 기수가 학보사에 입사했을 때, 학보사에는 딱 두 명이 있었다. 정확히는 세 명이었는데 우리가 들어오기 전부터 퇴사를 하겠다와 퇴사를 못 시켜주겠다 사이의 팽팽한 싸움이 있었으므로 한 명은 없는 셈 치겠다. 여기서부터 망했음을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이 학보사는 망했다는 시그널이 이거 하나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당시에는 6명인가의 동기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중에 나이가 제일 많았으므로 편집장으로부터 전 기수까지는 존재하지 않던 '기수장'이라는 직책을 받았다.


" 기수장."

" 예, 61기 기수장."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나는 그 때부터 온갖 순간에 기수장, 하고 불렸어야 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본 바에 의하면, 그는 내가 즉전력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자신의 손에 잘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아 나의 선발을 거부했다고 한다. 아마 나를 기수장으로 선발한 것은, 그리고 기수장이라는 웃기는 군대식 문화를 불러온 것은, 나를 쥐고 흔들어보려는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기수장이 혼나야 하는 이유는 다양했다. 애들이 5분대기조를 제대로 안해서, 아침 신문사 의국 문 열기를 나만 하고 있어서, 나는 공강 시간에 의국에 틀어박혀있는데 다른 애들은 그러지 않아서 등등. 처음에는 기수장이기 때문에 의무라는 마음으로 해내던 일들이 어느 순간 빡침의 요소가 되었다. 나는 그의 비서였다. 그가  ROTC 일 때문에 어디를 가야하면 그 전에 알려줘야했다. 신문사 입사 한 달이 거의 다 되어가는데 안 나오는 사원증에 그에게 이야기 하고도 욕을 먹어야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그의 군사학과 수업 피피티를 손봐달라는 말에 손을 봐주고도 알록달록하지 않은 톤온톤 피피티를 만들었다고 욕을 쳐먹는 날도 있었다. 


사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지라고 참을 수 있었다. 그럴 수 없는 일인 것을 알면서도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만약에 이 학보사에 빌런이 하나였다면, 나는 마저 학교를 다녔을 것이다. 학보사를 마저 했을 수도 있다! 


문제는 여긴 빌런이 둘이었다. 


간사가 있었다. 지금은 뭐, 영전의 형식으로 승진했다고도 들었다. 간사는 편집장 위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성격이 참 더러웠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으면 전화를 바로 돌렸으며, 전화를 바로 받지 않으면 전화를 왜 바로 받지 않느냐고 카톡에서 난리를 쳤다. 그 시기에는 서울에 갈 일이 있어 가면서도 일을 했고, 카톡 소리를 들으면 퍼덕거리며 잠에서 깼다. 

빌런들끼리 사이라도 좋았으면, 괜찮았을 것이다. 


좋았으면, 괜찮았을 것이다.


안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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