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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 Oct 26. 2020

이렇게 집이 많은데 우리 살 집은 없는 게 미스터리

<십자관의 살인>  손선영




© Heartywizard, 출처 Pixabay




"아."

누구랄 것도 없이 탄식이 흘러나왔다. 우리는 잠시 집을 바라보며 걸음을 멈췄다. 

"오빠, 여기는 안 될 것 같아."

조심스럽게 명한에게 말했다. 명한도 고개를 끄덕이더니 수긍했다.

"그러네. 직접 와보니 전혀 예상과는 다르다."  다른 곳을 알아봐야겠다.


미세먼지 가득했던 날, 우리는 '임장' 중이었다. 서울에서 우리가 살 수 있는 지역을 몇 군데 골라놓고, 그중에서도 우리의 예산으로 가능한 전세매물을 몇 개 골라서 하루 날 잡아 돌아다녔다. 서울의 마곡역 쪽에서부터 마포구 쪽까지 쭈욱 내려오면서 들르는 동네마다 어떤지 실제로 눈으로 보고자 했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꽤 여러 군데를 돌아다녔다. 중간중간 부동산에 들어가 시세와 형편을 알아보기도 했다. 어느 단지형 빌라는 주차 자리가 꽤 넓어서 마음에 들었는데 들어오는 골목길이 꽤나 어두워 마음이 불안해졌고, 어느 빌라는 다 좋았는데 주차하기가 어려워 보였다. 


직장에서는 조금 멀어지지만 단지가 잘 형성되어 있는 곳에도 가서 구경했다. 여기는 학교가 가깝네, 건널목이 좀 머네 등등 이야기하면서. 전철역과 도보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한 동짜리 아파트도 눈여겨 봤는데 실제로 가봤더니 주변이 너무 스산하여서 최종후보에서 제외되었다. 저녁에 어둑해져서 늦게 집에 돌아갈 때면 무서울 것 같았다. 가격은 우리 예산으로 충분한 곳이었는데.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들른 상암동에서 명한은 자신만만하게 한 집을 골라봤다며 나를 안내했다. 

"여기가 지하철역에서도 그렇게 안 멀고, 빌라인데 엘리베이터도 있더라고. 그리고 3종지라서 나중에 혹시 개발이 된다고 하면 이득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


명한이 하는 말 대부분은 잘 못 알아 들었지만 자신 있어하는 모습에 안심하고 따라나섰다. 디지털미디어시티 역에서 내려 십 몇 분 걸으니 명한이 봐 두었다는 그 집이 보였다. 언덕 위에 있었다. 꽤나 가파른 언덕이라 비가 많이 오거나 눈이 쌓여 있을 때는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단박이 들었다. 우리 둘은 그 집 앞에 서서 잠시 탄식을 내뱉었다.


"어쩐지 좀 싸게 나왔더라니......"







<십자관의 살인> |손선영 | 한스미디어 | 2015


아가사, 도일, 마플, 심농, 김전일, 코난, 모리스가 나오는


이 책에는 아가사 (크리스티)가 나온다. (코난) 도일의 이름도 있다. (미스) 마플도 보이고 (조르주) 심농도, 김전일, (에도가와) 코난, 모리스 (르블랑) 등의 이름이 나온다. 


이 캐릭터들이 한 작품에 모두 출현하는 건 아니다. 다만 소설에 등장하는 연희대학의 추리소설연구회의 회원들이 닉네임으로 저 이름을 사용한다. 그러니까 배경은 현대 한국, 등장인물들은 평범한(?) 대학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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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지 않은 이름을 가진 이 대학생들은 외딴섬 '반구도'에 있는 '십자관'에서 합숙을 한다. 이 십자관은 최첨단의 기술로 만들어진 것으로 '아가사'라는 프로그램이 관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이들은 '머더 키트'를 가지고 클로즈드 서클을 구성하여 추리소설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게임을 한다. 합숙의 재미를 살리기 위해 시작한 이 게임에서 실제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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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클로즈드 서클의 구조를 갖고 있는 도입부다. 제한된 인원, 쉽게 드나들 수 없는 섬과 별장, 한 명씩 살해되고 서로를 의심하면서 범인을 찾아내야 하는 긴장감. 그리고 예측하기 어려운 반전과 진실. 남은 것은 작가가 얼마나 영리하고 치밀하게 떡밥들을 회수하면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쳐내는지 하는 것이었다.




오마주의 어려움과 재미


일본 미스터리 소설 중에 유명한 <관 시리즈>가 있다. 아야츠지 유키토가 쓴 10권으로 된 시리즈로 그 각각의 제목은 <시계관의 살인>, <십각관의 살인>, <수차관의 살인>, <미로관의 살인>, <인형관의 살인>, <흑묘관의 살인>, <암흑관의 살인>, <깜짝관의 살인>, <기면관의 살인>이다.  기이한 건축가가 지은 독특한 건물(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한 추리소설(탐정 역이 등장한다)인데 각 편마다 서로 다른 재미를 주면서 완성도가 높고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매력도 더할 나위 없이 최고점을 주고 싶은 정도다. 개인적인 감상이 아니라, 일본에서 전체 판매량이 500만 부가 넘었다는 소식을 들은 같으니 그만큼 인기 높은 시리즈임은 더 말하지 않아도 충분할 것이다.


이 시리즈에 꽤나 열광하며 빠져들었던 사람인지라, <십자관의 살인>이라는 제목을 보고는 바로 이 시리즈를 연상하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책 뒷페이지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아야츠지 유키토의 <십각관의 살인>을 읽었다면 반드시 권한다!


그러니까, 야아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에 영향을 받은, 혹은 이를 오마주한 추리소설이라는 말이다. 어쩐지 <십각관의 살인>에서처럼 등장인물들이 추리소설의 유명한 주인공이나 추리소설 작가의 이름을 대신 쓰고 있는 것도 닮았다 했다. 그래서 주저하지 않고 읽게 되었다. 얼마나 <십각관의 살인>을 잘 오마주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변형했는지 궁금했다.


유명한 작품을 오마주한만큼 대담한 시도와 전개가 있으리라 기대했고, 등장인물들이 자발적으로 외딴섬으로 가면서 독특한 모양의 별관으로 가는 장면에서는 앞으로의 사건이 어떻게 벌어질지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되었다. 




추리소설에 이렇게 다양한 변주와 매력이 있는데


앞서 감상을 써냈던 <명탐정 따위 두렵지 않다>에서는 유명한 추리소설의 탐정들이 등장하여 추리소설 장르에 대한 오마주와 존경을 드러냈다면, 지금 보는 <십자관의 살인>은 <십각관의 살인>이라는 특정 작품을 오마주하며 추리소설에 대한 애정을 가득 담아냈다.


다만 읽다 보면 <십각관의 살인>이 크게 연상되지는 않았다. 그저 모티브만 가져다 썼을 뿐인가 싶을 정도로, 별개의 소설이라는 감상이 강했다. 


이 소설의 전개와 반전에 대해서는 일단 노외로 해두자. 이 소설을 읽으면 한국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한 다양한 인식과 의견, 그에 대한 변과 반박 등을 겸하여 알게 된다. 추리소설의 팬으로서 십분 공감이 가는 부분도 종종 있긴 했다. 이렇게 재밌는데 왜 추리소설 팬은 크게 늘지 않을까, 아니면 다들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것일까.


추리소설에도 다양한 변주가 이루어져, 이처럼 소설에 등장한 여러 탐정을 모아 이야기를 만들거나 한 작품을 오마주해서 새로 만들거나 하는 시도가 계속 나온다. 반전과 기발한 트릭을 기대하는 독자들이 많을테니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독자들을 더 놀라고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라도 추리소설의 도전과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하루 종일 서울의 온갖 곳을 돌아다니며 집을 보는 것은 말처럼 간단하고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해가 지고 어둑해지자 우리는 배도 채울 겸 근처에 있는 순대국밥집에 들어가서 순댓국을 한 그릇씩 시켜놓고는 오늘의 성과를 공유했다. (나중에 엑셀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서로 공유했다.)


한정된 예산이라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큰 어려움을 주었다. 우리가 예산이 넉넉했다면 이렇게 어려운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될텐데. 


저 수많은 아파트 중에 우리가 살 집이 하나 없다는 게 서울의 가장 큰 미스터리다. 우리의 미스터리기도 하고. 그 어떤 추리소설을 읽는 것보다도 더 심장이 쫄깃하네 거참. 


"회사 앞의 오피스텔을 한 번 알아보자. 오히려 출퇴근도 편하고 기본 옵션들도 다 있을테니 더 편할지 몰라."

"대출을 받고 전세를 얻어서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든 채워볼까?"

"서울에서 좀 멀어져도 공원 있고 살기 좋은 곳을 알아보는 건 어떨까?"


온갖 경우의 수와 우리에게 가능한 시나리오를 짜보았다. 부모님을 모시고 살까, 싶은 생각까지 들었으니 우리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는 한 번씩 다 써본 셈이었다. 어디서 복권이라도 당첨 안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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