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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 Oct 30. 2020

좀비떼가 창궐한대도 우리는 결혼해야지

<시인장의 살인>, 이마무라 마사히로

신혼여행이 취소되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와이로 달콤한 신혼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말이다. 취소되었다. 이게 다 코로나19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점차 확산되기 시작했던 2월 말이었다. 지화가 갑자기 뉴스 한 꼭지를 전송해줬다.

- 큰일났어. 우리가 탈 항공편이 운항 중지된대.

- 뭐?

기사는 우리가 예약한 항공사에 관한 보도였다. 코로나19가 확산됨에 따라 3월부터 4월까지 한국과 하와이 간 항공운항을 중지한다는 것이었다. 코로나19가 한창 들불처럼 번지고 있던 때라 항공사의 판단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문제는 우리가 타려고 예약해 둔 항공권이 취소됐다는 거지.

 

난감했다. 결혼 후 지화와 하와이에서 어떻게 쉬고 어딜 가고 무엇을 즐길지 잔뜩 구상해 둔 상태였다. 바이러스가 이렇게 우리의 결혼 계획을 망가뜨릴지 예상하지 못했다. 연초부터 뉴스에서 위험성과 불안감을 예보하긴 했지만 우리가 날짜를 잡아 놓은 4월쯤이 되면 이 소동도 잔잔히 가라앉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면 우리나라와 하와이 정도는 이 위험을 비껴갈 것이라 생각했다. 그때는 정말 몰랐다. 코로나19가 우리의 결혼 계획을 마구 헤집어 놓을지.


일단 서둘러 항공권 환불을 문의했다. 그리고 숙박 예약도 취소했다. 다행히 숙박비는 현장에서 결제하는 거라 손해를 보진 않았다. 항공비는 돌려준다는 데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어쨌든 언제고 돌려받게 될 테니 그건 문제 없었다. 그저 우리의 신혼여행 계획만 무너졌을 뿐이었다. 우리는 낙담하면서도 결혼 계획과 일정에서 신혼여행만 빼버리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참 순진한 생각이었다.


점점 상황이 악화되어 가는 걸 보면서도 우리는 우직하게 결혼식을 준비나갔다. 회사에서 대여해주는 식장을 예약해 놨고 나의 정장과 지화의 웨딩드레스를 준비했고, 식 당일에 필요한 포토그래퍼, 부케, 꽃장식 ... (결혼 한 번 하는 데 뭐가 이리 많이 필요한지!) 등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차근차근 준비해나갔다.




© nate_dumlao, 출처 Unsplash




코로나19의 상황은 점점 악화되기만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게 시작되었다. 그에 따라 사람들의 모임도 집합도 차츰 제약되기 시작했다.


회사와 연계된 식장에서 연락이 왔다. 이 날은 둘이서 고심해서 문구를 정성스레 만든 청첩장이 도착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담당자가 길게 말을 돌려 하긴 했는데 요지는 이거였다. 예약을 취소해줄 수 있겠느냐고. 다른 사람들은 다 취소했다며. 식장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었다. 보증인원에 한참 못 미치는 적은 하객만 모시고 할 계획이었는데도 코로나19 확산으로 모든 국민들이 조심스러워 하고 있던 때였으니 식장에서 부담스러워 하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우리 결혼식이 3주밖에 안 남았다는 게 문제였다.


이쯤되니 결혼을 할 수 있을지, 결혼을 해도 되는지 우려되었다. 코로나19는 정말 역병이었다.









<시인장의 살인> | 이마무라 마사히로 | 엘릭시르 | 2018



무려 데뷔작인데 4관왕!

이 책은 뭐가 됐든 읽을 수밖에 없었다. 책 표지에 자랑스럽게 큰 글씨로 두둥 박혀 있는 문구가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가.


"2018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2018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

"2017 주간 분슌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

"제18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수상"

"제27회 아유카와 데쓰야사 수상

"2018 서점대상 노미네이트"


여기서 거론된 이 상들을 잘 모른다 하여도, 적어도 이 소설이 그리 만만하게 볼 것은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겠다. 이런 경력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딱 내 마음에 들 소설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소설 고르는 데 큰 기준이 된다.


게다가, 데뷔작이란다. 일본 추리소설계는 매년 수많은 소설이 쏟아져 나오고 유명한 작가들도 여럿 있고 한국에서도 인기를 끄는 작품들도 허다한데, 데뷔작이 이런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등장했다하니 눈길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읽지 않을 수 없는 책이었다.



여름 합숙이 연쇄 살인의 무대가 되는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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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코 대학 영화 연구부의의 여름 합숙이 이루어지는 호수 근처의 별장. 그리고 그 호숫가 근처에서는 락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의문의 조직이 락 페스티벌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의문의 바이러스를 주입하고, 이윽고 별장 근처에 좀비떼가 몰려와 낭만을 꿈꾸던 여름 합숙은 삽시간에 좀비로 둘러싸여 오도가도 못하게 된다. 게다가 설상가상 외부와의 연락도 끊긴 상태가 된다. 그리고 이렇게 밀실이 된 별장 내에서 예상치 못했던 살인 사건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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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많은 밀실을 보아왔지만 좀비떼로 만들어진 밀실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살인 사건 역시 독자의 호기심과 추리력을 자극했다. '자극했다'는 말이 제일 어울리는 것 같다. 나름 여러 편의 추리소설들을 읽어왔지만 이런 추리소설은 처음이라 신선하기도 했다.


대체 작가는 어디서 이런 아이디어를 얻었고, 대체 이 '좀비물 더하기 밀실 살인 사건'을 어떻게 풀어나가려고 한 것일까.



좀비와 추리소설이 만나면

좀비물은 지금 현재 가장 주가를 올리고 있는 장르 아닐까 싶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이 국내외에서 크게 흥행했다고 하고, 좀비를 다루는 영화나 드라마가 꾸준히 생산되고 인기도 많이 얻고 있으니 말이다. 좀비물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최근에 한국의 영상물을 보면 조선에서 좀비가 출현하고, 좀비 탐정이 등장하고, 부산 가는 기차에서 좀비에 쫓기고 좀비 때문에 아파트에 갇히고.....  이런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으니 좀비가 대세는 대세인가보다 싶다.


좀비가 이렇게 다양한 장면에서 어울린다면 추리소설 역시 좀비와의 만남이 어울릴 것이라 예상된다. 그리고 이 소설은 좀비를 추리소설의 주요한 요소로 끌어들어 왔다. 좀비가 추리소설과 만나면 어떻게 될까 궁금했는데 이런 방식일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소위 본격소설이다. 탐정이 등장한다기 보다는 밀실에서 일어나는 연쇄살인이 있다. 기막힌 배경을 만든 것도 기발했는데, 밀실에서 일어나는 연쇄살인의 정체도 놀라웠다. 좀비는 이렇게도 추리소설과 만날 수 있구나,란 감상이 길게 여운으로 남았다.


엄청난 스포트라이트가 이 소설을 읽는데 방해가 되거나 오히려 기대에 못 미치게 만드는 단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어느 지인은 그런 감상을 들려줬다) 그럼에도 기발한 발상과 대담한 전개에 만족했다. 빠른 전개와 간결한 문체도 이런 감상에 영향을 주었다.







결국 우리는 예약했던 결혼식장을 취소했다. 청첩장은 전부 폐기하게 되었다. 이 시국에 결혼을 해도 되는 것일까.


"우리가 드디어 결혼을 하려는데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그래도 나중에 돌아보면 우리의 결혼이 가장 기억에 남을 거야. 이렇게 창궐하는 바이러스 속에서도 결혼 준비를 해왔으니."

지화가 대답했다.

"결혼식장이 취소된 것보다 신혼여행을 못 가게 된 게 많이 아쉽긴 하네."


그래도 여기서 굽힐쏘냐.



우리는 예정된 날에 결혼을 할 수 있도록 사방팔방으로 알아보았다. 계획했던 대부분의 절차들을 다 생략했다. 그리고 가족들만 모실 수 있는 식장을 알아봤다. 회사 직원들도 친구들도 결혼식에 초대하지 못했다.


많은 것을 포기하고 본래 계획 일정에서 크게 어긋났지만 어떻게든 우리는 결혼이란 걸 하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처음 계획에 못지 않은, 아니 어쩌면 훨씬 더 좋은 결혼식을 하게 되었다. 인생사 모르는 일이다. 어려움과 악재가 오히려 이익 또는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결혼을 준비하면서 '전화위복'이라는 사자성어의 의미를 뚜렷이 느끼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어려운 시기 속에서 둘이 하나가 되는 결혼을 올리면서 서로에 대한 확신과 애정이 더 단단해졌다. 좀비가 창궐한다 해도 우리는 굴하지 않고 결혼할 거다. 세상 어떤 어려움이 생겨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란 믿음이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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