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문 Oct 31. 2020

[에필로그] 추리소설에도 낭만은 가득하니까

<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  | 구라치 준

집 근처 공원길을 걸었다. 마스크를 쓰고 일상을 다니는 모습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코로나 19가 전 세계를 점령한 지금 우리는 새로운 생활의 변화에 익숙해져 가는 중이었다.


일단, 재택근무가 시작되었다. 회사 방침에 따라 격일 재택근무를 해보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출근 보고를 하지만 실제로 출퇴근을 하지 않고 집에서 일을 한다는 게 나에게는 놀랍고도 매우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매번 한 시간 여 걸리는 출퇴근 시간을 유독 나는 힘들어했다. 이렇게 집에서 일을 병행할 수 있다면 천 년 만 년 불평 없이 일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했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는 외출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많은 약속들이 취소되었다. 원래는 결혼을 앞두고 결혼 소식도 전할 겸 많은 친구들과 지인들을 만나서 회포도 풀고 즐길 예정이었는데 그조차 못하게 되었다. 코로나19가 금방 물러갈 줄 알고 직접 만나서 이야기할 생각에 결혼 소식을 말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 상태로 결혼을 올리게 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역시 우리가 결혼을 하고 부부가 되었다는 것. 결혼을 하고 나서 좋았던 점이 여럿 있지만 일단은 각자 일을 마치고 저녁에 만나서 지하철 막차 시간을 계산하면서 데이트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좋았다. 매번 피곤한 몸으로 저녁 늦게 만나 밥 먹고 커피 한 잔 하고 밤 11시가 되기 전에 헤어지는 것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주말에 아침 일찍 일어나 단장하고 만나서 즐기는 일은 사라지고, 주말 늦도록 늦잠자며 부스스한 모습으로 편안한 하루를 같이 보낼 수도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저녁 먹고 후줄근한 차림으로 동네 한 바퀴 산책할 수 있다는 게 제일 좋았다.


명한의 손을 잡고 집 근처 산책하는 이 시간이, 비록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부부가 되어 걷는 이 시간이 소중하고 행복하다. 



"나는 언젠가 쏟아지듯이 하늘을 가득 메운 셀 수 없이 많은 별을 맨 눈으로 보는 게 소원이야."

명한이 내 말을 듣더니 어렵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언젠가 아이슬란드나 캐나다의 알러트, 알래스카의 배로우를 가자. 별이 잘 보일 거야."

명한의 설명에 따르면 남반구나 적도 지방보다는 북반구에서 습기도 적고 건조하고 오염물질도 없는 국가가 별을 보기에 좋을 거란다. 그래서 북유럽이나 북알래스카가 좋을 거라는 말이다. 그저 나는 뉴질랜드나 하와이를 떠올렸을 뿐인데. 꼭 그렇게 추운 곳이어야 하나요. 이과 남자란......





<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 | 구라치 준 | 검은 숲 | 2011



우리 둘이 가장 좋아하는 추리소설을 고르라면 물론 여러 작품이 나올 것이다. 그 중에서도  <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은 우리가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으로 반드시 손꼽히곤 한다. 


제목을 보자마자 알 수 있는 '본격 살인 소설'의 냄새, 폭설에 쌓인 별장에서 일어난 불가사의한 살인, 한정된 용의자, 기상천외한 트릭, 탐정 역의 등장인물이 가진 매력, 그리고 예상 못한 반전까지, 우리가 좋아하는 추리소설의 요소를 다 갖추고 있는 바람직한 소설이다. 


낭만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제목처럼- 별 내리는 산장이라니, 연인들이 함께 가고 싶은 곳이 아닐까 - 새로운 연인 탄생의 조짐이 보이기도 하지만, 역시 밀실 살인과 범인을 색출해 내려는 탐정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가장 큰 재미를 준다. 400 쪽이 넘어가는 비교적 두꺼운(?) 책이지만 한 번 읽기 시작하면 결말에 이르기까지 손에서 놓지 못할 정도의 재미를 주리라 장담한다. 


//

산장에 모인 사람들. 그날 밤 모임을 주최한 사람이 살해되어 발견되고, (당연하듯이) 기상악화와 폭설로 사람들이 산장에 발이 묶이게 되는데 다시 또 한 명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남겨진 사람들 중에 살인범이 있을텐데, 기상천외한 미스터리 서클과 세 줄의 발자국이 발견되면서 사건은 점점 기이해진다.

//


이 소설의 특징이라면 '친절한 작가'라고 할 수 있겠다. 각 장마다 작가의 말이 있는데 '추리소설'의 고유한 특징과 기발한 방법론을 제시해주는 역할을 한다. 부디 안 읽어본 사람이 없는 추리소설이 되었으면.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읽을 때 얻는 아찔한 스릴감과 쾌감, 논리와 추리의 재미가 있다. 이것들을 모두 만족시켜주는 추리소설을 매번 만나지는 못한다. 따라서 이렇게 추리소설을 읽는 목적과 기쁨을 잘 충족시켜주는 작품을 만나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지.


이 책의 뒤표지에 적혀 있는 일본 작가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말에 공감하며, 한번 그대로 옮겨본다.


본격 미스터리라는 편협한 장르 속에서 걸작이 탄생하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하지만 그 '기적'이 지금 이렇게 독자의 눈앞에 있다.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한 권의 추리소설을 건네주면서 시작된 우리는 어떻게든 코로나19를 뚫고 부부가 되었다. 앞으로 어떤 반전과 사건과 트릭이 난무하는 부부생활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우리 나름의 낭만과 기적이 가득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살인과 범죄와 탐정과 머리싸움만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추리소설에도 낭만은 가득하다. 소설 속의 낭만이든, 작가의 낭만이든, 독자의 낭만이든. 



부디 추리소설을 좋아하고 즐기는 독자들이 많이 늘어서 이 낭만을 함께 즐길 수 있었으면.



이전 14화 좀비떼가 창궐한대도 우리는 결혼해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