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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 Oct 25. 2020

어느 나라의 탐정을 보러 갈까요

<명탐정 따위 두렵지 않다> | 니시무라 교타로

결혼을 앞두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어디로 신혼여행을 갈지 정하는 것이었다. 여행 자체도 설레는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직장인이라면 당당하게 받을 수 있는 5일간의 휴가가 기대되었다. 주말을 앞뒤로 붙이면 장장 9일에 가까운, 혹은 연휴가 붙어 있다면 열흘도 넘게 쉴 수 있는 휴일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 긴 기간 동안 해외여행 - 당연히 이때만 해도 해외로 신혼여행을 갈 것이라 생각했다- 을 갈 수 있다니. 그것도 설렘과 기대와 낭만과 우리 둘만의 시작이 가득 담긴 신혼여행이라니. 신혼여행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계획을 세우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두둥실 떠오르는 것이었다. 


자, 이 짧지 않은 휴가를 받아 어디로 신혼여행을 갈 것인가. 




© bendavisual, 출처 Unsplash







"영국 런던 어때?

지화는 대뜸 런던을 들이내밀었다. 

"오빠는 아직 유럽을 가본 적이 없다고도 했고, 런던이면 충분히 날을 잡고 가야 하는 거리인 데다가, 볼거리도 적지 않게 많을 거잖아."

끌리는 제안이었다. 신혼여행을 휴양지가 아니라 관광지로 가게 되면 좀 피곤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지화는 앞으로 우리는 체력이 떨어질 일만 남았다며 조금이라도 기운 있을 때 돌아다니는 게 좋을 거라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그리고 지화의 다음 말이 더 마음을 굳히게 만들었다.

"그리고 런던에 가면 베이커가 221B 번지에 갈 수 있어."







<명탐정 따위 두렵지 않다> | 니시무라 교타로 | 레드박스 | 2014



추리계의 어벤저스가 있다면 바로                          

<명탐정 따위 두렵지 않다>는 제목만 보면 명탐정에 도전하는 악당이나 범인의 대담한 일대기처럼 읽힐 것이다. 그렇지만 소설에서 말하는 명탐정이 무려 네 명이고, 그것도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법한 탐정들이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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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일본의 노부호 사토 다이조는 탐정들을 초대한다. 미국의 엘러리 퀸, 영국의 에르퀼 푸아로, 프랑스의 메그레 경감, 일본의 아케치 코고로. 노년의 이들을 모은 이유는 하나. 바로 일본의 유명한 미해결 사건인 '3억 엔 사건'을 해결해달라는 것이었다. 


이를 들은 현역에서 은퇴한 이 네 명의 명탐정은 그런 사건의 해결은 탐정이 아니라 현대 경찰이 맡아야 한다고 했지만, 이 노부호 역시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그 '3억 엔 사건'을 그대로 재현할테니 범인의 행동 궤적을 추리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진짜 사건의 범인을 찾아내겠다는 발상이었다. 그리고 실제 범인과 유사한 젊은이에게 범인 역을 맡기고 다시 한번 '3억 엔 사건'이 모방되어 일어나고 명탐정들은 범인 역의 젊은이의 행동을 놀라운 추리력으로 맞춰갔지만 살인사건이 일어나며 사건은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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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일본의 유명한 미궁 사건이 있다. 바로 '3억 엔 사건'이라고 불리는 것인데, 1968년 12월 경찰관을 위장한 범인이 현금 수송차량을 기발한 수법으로 탈취해 간 사건이다. 지금까지도 범인이 누군지 찾지 못한 유명한 사건이라는데, 작가는 이 사건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것도 유명한 소설 속 탐정을 불러 모아서. 


이 소설을 읽으면서는 작가의 대담성과 각 탐정들의 성격과 행동을 잘 묘사한 관찰력, 추리소설에 대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사건을 창작하고 이야기를 재미있게 이끌어내는 작가의 능력이라니! 


물론 더 보고 싶은 탐정을 내 멋대로 고른다면 미스 마플도 넣고, 브라운 신부도 넣고, 긴다이치 코스케도 넣고, 에노모토 케이도 넣고.... 가만있자, 우리나라 추리소설의 대표 탐정은 누가 있지?





어느 나라의 탐정이 매력적인가                                

추리소설을 읽다 보면 시대별로 다르고 작가별로 다르긴 하지만 나라마다 탐정의 매력이 좀 다르게 다가온다. 전세계 모든 국가에서 출판되는 추리소설을 읽어 볼 정도로 독서력이 깊고 넓지 않아서 단정지어 말하기는 뭣하지만. 


일단은 가장 많이 접했고 그만큼 익숙한 영국과 일본의 탐정들이 떠오른다. 특히 가까운 나라의 일본의 추리소설은 아무래도 그 나라 문화를 이해하기가 쉽고 낯설지 않아서 비교적 기억에 잘 남는다. 뭔가 일본의 탐정들은 기괴한 사건들이 함께 연상되곤 하는 편이다.


유럽 쪽으로 방향을 틀어 보면 영국의 경우  셜록 홈즈나 아가사 크리스티의 탐정들, 브라운 신부나 손다이크 박사 등이 떠오르는데 어쩐지 좀 하나 같이 개성이 강한 캐릭터라는 인상이 든다. 스웨덴의 경우 고생만 무지 많이 한 미카엘 블롬크비스트가 생각나면서, 회색빛 스웨덴의 모습이 함께 연상된다. 프랑스는 낭만의 도시라는 별명과는 달리, 메그레 경감처럼 진한 누아르의 매력이 떠오르고. 


세계 여행을 탐정과 추리소설과 같이 한다면 이 역시 새로운 재미가 될 터. 



현실적인 탐정과 비현실적인 탐정                            

추리소설 속의 소위 명탐정이라는 캐릭터들은 범상치 않다 못해 비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줄 때가 많다. 탐정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셜록 홈즈만 봐도 그렇다. 신발에 묻은 것을 슬쩍 보고, 남겨진 발자국만 보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아침에 뭘 먹었고, 성격은 어떠하다는 걸 유추해낸다는 게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싶다. 


그렇다고 너무 현실적인 탐정이 등장하면 과연 재미가 있을런지. 드디어 우리나라에서도 탐정이라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는 한다. 그러니 현실에서도 탐정 명함을 내미는 사람들을 보게 될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탐정이 등장하는 빈도가 많아질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현실을 충실하게 반영하면 할수록 소설이나 영화에서 보아왔던 척하면 척하고 범인과 사건과 트릭의 진실을 알아내는 탐정은 보기 어려워질 터. 그리고 소설에서만큼은 좀 비현실적이라도  통쾌하고 매력적이고 비상한 캐릭터를 보는 게 즐거울 것 같기도 하고.









지화의 제안대로 우리는 런던과 스코틀랜드까지 돌아보는 신혼여행 계획을 차근차근히 세우면서 결혼 준비를 해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전격적으로 신혼여행지를 바꾸게 된다. 


"우리, 역시 좀 휴양하는 신혼여행이 필요할 것 같아."

일도 하고 결혼 준비도 하느라 둘 다 조금 지쳐있던 때였다. 마침 지화는 그때 논문과 시험 준비 등이 한꺼번에 겹쳐 체력과 정신을 여러 곳에 쏟아 넣고 있느라 더 지쳤을 것이다. 결혼 준비라는 게 그냥 식장만 예약하고 웨딩드레스 맞추고 그러면 끝나는 게 아니었다. 뭐 이리 신경 쓸 것도 많고 조정할 것은 또 얼마나 많은지. 지불과 예약과 확인과 조절을 하느라 만들어 둔 체크리스트는 빽빽하게 낙서가 되어 있었다.


"그래, 그것도 좋을 것 같아. 휴가 받아서 좀 쉬다 오자."

나도 휴식이 필요한 때였다. 런던이든 파리든 어디든 다 좋지만 일단 잠도 푹 자고 날씨 좋고 분위기 좋은 곳에서 지화와 함께 슬렁슬렁 다니며 충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가 계획을 바꿔 결정한 곳은 하와이였다. 런던으로 계획했다가 하와이라니. 전혀 성격이 다르지만 그때 당시 우리의 목적지로는 가장 적당한 곳이었다. 그날로 숙소를 정하고 항공권도 예매했다. 


그나저나, 하와이에는 어떤 탐정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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