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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 Oct 19. 2020

스마트폰 하나에 외로움과 스마트폰 하나에 범죄와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 시가 아키라 | 북플라자 | 2017

어느 해의 초가을이었던가. '핫'하다는 망원동에서 같이 저녁을 먹은 우리는 한강공원을 걸으며 소화나 시키자 했다. 


어째서였을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대화의 주제는 '남녀 간의 이별'로 옮겨갔다. 왜 여자들은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미리 가정해서 걱정하고 그러지 않을 거라는 남자의 확답을 듣고 싶어하는지 모르겠다. 헤어질 생각은 조금도 없는데 만일의 경우를 가정해서 우리가 헤어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보고, 인터넷에서 보고 들었던 여러 이별 경험담의 이야기들을 하며 내 생각은 어떤지 자꾸 물어봤다. 나는 "그 남자가 잘못했네.", "만나는 사람이 그러면 안 되지."정도의 말들로 지화의 생각에 맞장구쳐 주었다.



© kevcostello, 출처 Unsplash




그러다 스스로 겪은 이별 이야기도 나왔다. 지화는 쐐기를 박듯이 이야기했다.

"내가 경험했던 최악의 이별은, 커플 요금제를 해지하겠냐고 물어보는 콜센터 직원의 전화였어."

"커플 요금제? 오랜만에 들어보네."

"응. 과거에 통신사들이 다양한 요금제를 내놓았잖아. 그 중 하나가 커플요금제라고 특정한 번호 하나를 선택해서 그 번호와는 문자나 통화료에 혜택을 줬지."

"그래, 그거 많이들 사용했었지. 그런데 커플 요금제와 이별이라니?


"어느 날 아침에 늦잠 자고 있는데 사용하던 통신사에서 전화가 오더니 이렇게 말하는 거야. '상대방이 커플 요금제 해지 신청을 하셨는데요, 동의가 필요합니다. 해지하시겠어요?'라고. 콜센터 직원도 조금 난감하고 조심스러워 하는 듯한 목소리였지. 그래서 나도 짜증난 목소리로 '네. 해지해주세요.'라고 했어."

"그러면 그 사람과 그렇게 헤어진 거야?"

"그 이후로는 다시 연락이 없었지. 그렇게 끝."

한강 바람이 스산했다.

"커플 요금제 같은 건 휴대폰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최악의 발상이었지."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 시가 아키라 | 북플라자 | 2017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이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겠지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이 든다면, 아직 제대로 독서에 빠진 것이 아니다. 작가들은 여전히 새로운 주제와 신선한 소재로 참신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가지고 온다. 시가  아키라의 <스마트폰을 떨어트렸을 뿐인데>이란 책 역시 마찬가지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최근의 우리의 모습이 이 소설에 들어갔구나, 싶었다.


사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행동에서 출발한다. 깜박하고 택시에 스마트폰을 두고 내린 것에서 모든 사건이 시작된다. 오늘날을 살고 있는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이 실수로 시작하기에, 독자는 거부감 없이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다. 


그리고 주인공이 잃어버린 게 지갑도 아니고, 피처폰도 아니고, 삐삐도 아니고, 스마트폰이기 때문에 소설에서 등장하는 사건이 일어날 수 있었다. 모든 것의 시작은 스마트폰이었다. 그리고 현대의 발전된 정보통신 기술이 범죄의 배경이자 도구였다. 이야기는 이 지점에서 복잡하면서도 매우 몰입감 있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시가 아키라라는 작가는 처음 알게 됐는데, 뭐 그건 크게 중요하지 앟았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대상 수상작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심 없이 읽어볼 이유가 있었다. 




일상을 공포스럽고 미스터리하게 끌고 가는 힘          


보통의 세계라면, 잃어버린 스마트폰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거나, 스마트폰의 주인이 누군지를 찾기 위해 주운 사람이 고민하거나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의 세계에서는 스마트폰을 택시에 두고 내린 남자와, 그 스마트폰을 주은 사람, 그리고 백골 상태의 여성 사체를 발견한 형사의 시점을 번갈아가며 이야기가 흘러간다. 책의 제목 그대로 '스마트폰을 떨어트렸을 뿐인데' 왜 사체가 나오고 형사가 나오는 것이며 대체 어떤 큰 사건이 엉켜 있는 것인지?


스마트폰 주인의 여자친구 신상이 SNS에 공유되면서 연쇄살인마와 얽히게 되고, 형사와 주인공은 이를 쫒는다. 스마트폰으로 일어날 수 있는 현대의 크고 작은 범죄들을 작가는 요모조모 충실히 배치해 두었다. 평범한 일상이 끔찍한 범죄의 대상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다른 추리소설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공포심을 안겨주었다.


내가 섬에 갇히거나 폭설에 별장에서 오도가도 못하게 되어 연쇄살인마를 만나게 될 일은 아마 평생 거의 없겠지만 스마트폰을 잃어버려 범죄에 노출되는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누구나 쉽게 인터넷에서 개인을 범죄의 대상으로 전락시킬 수도 있으니까. 


인터넷 세상은 정말 찾아보면 뭐든지 있네요.


뭐든지 찾아보면 있다는 것은, 나 역시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말과 다를 게 없다. 현대인의, 일상의, 우리의 공포심을 자극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새로운 범죄와 새로운 위험과 새로운 이야기들          


인류 문명의 진보는 소설에도 진보를 가져다준다.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르겠지만.) 스마트폰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스마트폰을 떨어트렸을 뿐인데>라는 소설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스마트폰이라는 소재는 물론이고 이를 활용한 범죄와 새로운 인간관계의 유형도 그려지지 못했을 것은 분명하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이야기들도 분명 흥미롭지만, 역으로 생각해서 과거에 쓰인 추리소설들을 보며 그 시대의 배경과 문화와 관념과 역사를 알게 되는 것도 분명 큰 즐거움이다. 잘 모르는 시대와 공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읽으면 이해가 안 되는 경우도 왕왕 있지만 그 와중에도 '그때는 이런 게 있었구나', '예전에는 왜 저런 걸 당연하게 생각한 거지?'라며 신기해하거나 불편한 경험을 겪는다. 


반대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지금의 모습을 충실하게 반영한 소설을 읽으면 몰입이 더 쉽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좀 더 현대를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을 무의식적으로 찾아 읽는지도 모르겠다.


현대를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을 읽다 보면, 범인을 걱정(?)하는 일도 생기게 되는데 CCTV와 유전자 검사와 인터넷과 심지어 AI까지 발달되어 있는 이 시대에 대체 어떻게 범죄를 저지르고 어떻게 탐정이나 형사에게 안 걸릴지(?)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첨단 시대에도 여전히 실생활에서 크고 작은 범죄가 일어나는 걸 보면 아직 범죄를 못 따라가는 부분이 많이 남았구나 싶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제약(?)을 어떻게든 비껴가고 때로는 뛰어넘는 사건을 만들어내는 작가들을 보면 추리소설 팬은 그저 즐겁기만 하다. 작가들은 트릭을 고민하느라 힘들겠지만. 






한강 공원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들도 많이 뛰어다니고 있었고 전조등을 달고 달리는 자전거 무리도 많았......어엇? 

"위험해!"

나는 지화를 내쪽으로 끌어당겼다. 풀숲이 꽤나 우거진 마포구청역 방향의 길가였는데 뒤쪽에서 자전거가 달려왔다. 속도를 줄이지도 않고. 본능적으로 위험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쌔애앵!"

아주 아슬아슬하게, 정말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종잇장 한 장만큼의 거리를 두고 자전거가 높은 소리를 내면서 지나갔다. 자전거를 탄 사람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우리 옆을 지나가고는 뒤를 힐끔 보더니 우리가 다치지 않은 모양이라 판단했는지 그대로 멀리 사라졌다. 이미 어두운 시간이라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지만 저렇게 위험천만하게 자전거를 타는 사람에게 매우 화가 났다. 지화를 안고 걱정스레 물어봤다.

"괜찮아?"

"응. 그냥 좀 놀랐어. 어후, 다리에 힘이 빠지네."

"잠깐 저기 앉았다 가자."

앉을 곳을 찾으면서 방금 그 자전거 라이더의 등에 대고 큰 소리라도 질러버릴걸 싶었다. 



비어 있는 공원 내 벤치에 걸터앉았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둘 다 많이 놀랐다. 

"오빠가 미처 보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네."

"안 다쳐서 다행이야."

지화가 말을 이어나갔다.

"오빠를 만나면서 제일 좋았던 게 뭔지 알아?"

"이럴 때 든든하게 지켜 주는 거?"

뭘 또 칭찬해주려고 그러나.


"그것도 그렇지만, 날 외롭지 않게 해주는 게 제일 좋아. 휴대폰을 갖게 된 이후로 연애할 때는 늘상 휴대폰만 보면서 언제 연락오나 기다리기 일쑤였어. 왜 아직까지 연락이 안 오지, 친구 만난다더니 밤새 같이 노는 건가,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지는 안 궁금한가, 나는 이 사람한테 대체 어떤 의미인가, 이런 생각들이 늘 가득했거든."

그래. 여자들은 좀 그러는 거 같더라.

"나는 휴대폰이 그렇게 외로움을 가져다주는 것 같더라. 울리지 않으면 내가 무가치해진 것 같고, 소외된 것 같고, 중요하지 않은 것 같고. 정말 중요한 의미와 가치는 휴대폰이 아니라 모두 나 스스로에게 있는 것인데, 그 땐 그걸 몰랐지. 많이 외로웠던 것 같아."


"그런데 오빠는 내가 그런 생각이 안 들게 해주더라고. 물론 내가 어릴 때보다 성숙해진 면도 있겠지만, 먼저 날 생각해주고 아껴주고 배려해주고 좋아해 주는 게 느껴지더라고. 그게 참 좋더라."

지화가 쑥스러운지 멀리 한강을 바라봤다. 나는 지화의 손을 살며시 잡아주었다. 그리고 그 동안 늘 하고 싶었던 말을 건넸다. 수줍지만 단호하게. 




"결혼하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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