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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 Oct 14. 2020

사랑에 공식은 없지만 추리소설엔 공식이 있...나?

<미스터리 아레나> | 후카미 레이이치로 | 엘릭시르 | 2019

아주 평범한 날의 평범한 치킨집이었다. 원래는. 


자주 데이트하던 사당역과 인접한 한 치킨집. 우리는 더운 날 열기도 식히고 치킨님으로 한 주간의 몸과 마음을 정화받고자 저녁이 되자마자 이곳으로 왔다. 어김없이 치킨을 흡입하며 몇 번을 해도 지겹지 않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바로 옆 좌석에 앉은 중년 남녀가 하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 fwed, 출처 Unsplash



신기한 일이었다. 그 치킨집에 빈 좌석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아 시끄러웠는데 아무리 옆 좌석이라도 말이 쏙쏙 들리다니. 아니, 신기할 것도 없었다. 그 여자분이 술에 취해 목소리가 커졌으니까. 조금 우는 거 같은 목소리기도 했다.


"아뉘이~ 내가 진짜! 우리 남편이 나한테 예쁘다고만 해줬어도 이러지 않쥐이~!"


응? 앞에 같이 계신 남자분은 남편이 아닌가 봅니다?


"그래요. 누님. 내가 있잖아요."

"내가아! 우리 남편한테서 이쁘다는 말을 한 번도 못 들어봤어어...... 그런 말만 해줬어도 내가 너를 만나진 않았을 거야......"

"그럼요 그럼요."


나도 모르게 치킨을 들고 먹는 것을 서서히 멈춘 채 옆 좌석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명한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어떤 상황인지는 짐작되었다. 남자가 여자 손 잡고 있는데? 부,불륜인...가...??


"누님, 우리 노래방 가요. 먼저 나가 있을게요."

남자가 여자보다 먼저 자리를 떴다. 남자가 가게 밖으로 훌쩍 나가는 걸 보니 계산은 여자분이 하는 모양이었다. 노래방 계산도 여자보고 하라는 것 같았다. 여자는 옷매무새를 추리더니 이내 남자를 따라나섰다. 


"어. 방금 옆자리에서....."

"그거... 같지?"

"아닐 수도 있지."

"뭔가 뜻하지 않게 남의 비밀을 목격한 것 같네."


명한을 바라보았다. 우리야 평범하게 만나서 주말에 치킨 뜯고 데이트하는 보통의 만남을 이어오고 있는데 이게 인연과 사랑의 가장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 세상엔 다양한 모습의 사랑이 있을 테니. 불륜과 외도 같은 건 나쁘지만, 그렇다고 사랑에 공식과 문법이 있다고는 할 수 없을 거다. 






미스터리 아레나 | 후카미 레이이치로 | 엘릭시르 | 2019



이토록 흥미진진한 추리 퀴즈라니                              


이 소설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골랐다. 우선은 제목에 끌렸고, 작가에 끌렸으며, '2016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라는 문구에 끌렸기 때문이다.


제목에 '미스터리'가 들어갔다. 추리소설임을 한눈에 보여주는 제목들이 있는데 '살인', '사건', '탐정', '미스터리' 등이 그렇다. 이런 문구가 제목에 있다면 일단은 좋아하는 추리소설일 테니 의심하지 않고 읽어본다. 작가 후카미 레이치로의 전작인  <에콜 드 파리 사건>과 <토스카의 키스>를 읽어 보았다. 이 두 소설은 각각 미술과 오페라를 주요 소재로 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작가가 예술에 조예가 깊고 소설의 소재로 잘 활용하였다는 감상을 가진 바 있다. 그래서 사실, 이 소설 역시 예술을 소재로 삼은 추리소설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을 빗나가서, 이 소설은 '추리 퀴즈 서바이벌 방송'이라는 상당히 매력적인 소재를 들고 나온 것이었다. 서바이벌 추리 게임 TV쇼에서 참석자들이 연쇄살인의 진실이 무엇인지 밝혀내야 하는 것이 이야기의 커다란 줄기였다. 다 읽고 나니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의 1위의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그만큼 흥미진진했다. 중간중간 껄껄 웃게 되는 재미도 덤. 




액자 구조의 이야기와 숨겨진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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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으로 비가 흠뻑 쏟아지는 날, 4층으로 된 별장에 모인 미스터리 연구회 사람들. 별장으로 오는 다리는 무너져 사람들은 고립되었고, 이윽고 살인 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누가 어떻게 왜? 


이것이 <미스터리 아레나>의 올해 문제다. 매년 연말이 되면 일본의 인기 프로그램  <미스터리 아레나>가 방송된다. 이 방송은 퀴즈에 참가한 자들이 제시되는 살인사건의 진실을 알아내면 우승하는 프로그램이다. 우승자에게는 20억 엔의 상금이 주어진다. 자신만의 논리와 지식으로 무장한 참가자들의 열띤 추리 대결. 과연 누가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영광의 주인공이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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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추리 퀴즈 프로그램의 참석자들이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어떤 트릭을 썼는지를 찾아내는 것이 이 소설의 내용이다. 그래서 TV 추리 퀴즈의 참석자들이 제각기 자신의 추리를 설명하는 한 이야기와, 이들이 풀어야 하는 살인사건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되는 액자 구조로 되어 있다. 


처음에는 액자 구조일 거란 생각을 못하고 무작정 읽었다. 별장에서 첫 피해자를 발견하는 순간, 갑자기 TV 방송 세트로 시점이 바뀌니 어리둥절했다. 그제야 이 소설의 구조를 파악했다. 


두 이야기가 교차되어 진행되면서 어렴풋이 작가가 전체적으로 숨겨 놓은 반전이나 트릭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살인사건의 범인과 트릭을 찾아내려는 퀴즈 참가자들의 입장이 되어 책을 읽다 보면 어느덧 작가가 열심히 만들어 둔 반전과 반전의 재미에 흠뻑 빠져들 것이다. 





추리소설의 공식일법한 것에서 빠져나가는 영리함          


추리소설의 특징을 좌우하는 'Who done it' , 'How done it', "Why done it' 이 있다. 이 사건을 누가 저질렀는지, 어떻게 저질렀는지, 왜 저질렀는지를 알아내는 게 추리소설의 묘미란 얘기다. 이 세 가지 '던잇'을 두고 지금까지 다양하게 변주된 창작물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영리하게도 변주에 변주를 더 한 소설들도 등장했다.


<미스터리 아레나>는 한 가지(?)의 연쇄살인 이야기를 두고 퀴즈 참가자들이 제각기 다양한 답안을 제시하기 때문에 추리소설에서 으레 나오는 여러 트릭의 공식들을 한 자리에서 맛볼 수 있다. 참가자들이 답을 맞히기 위해 온갖 트릭들을 다 정답이라고 꺼내 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사실은 서술 트릭이었다느니, 시점 인물이 사실은 사람이 아니라느니, 알고 보니 다중인격이라느니...... 클리셰 같은 추리소설의 정통적인 수법에서 벗어난 참신한 트릭들을 다시 저격해서 풀어내는 참석자들의 지식과 추리력에 감탄하면서 이야기의 진실은 대체 무엇이길래 이렇게 참신한 재미를 던져주는지 마지막 페이지를 향해 달려가게 되었다.


가장 정통적인(?) 추리소설의 방식이라면 사건이 일어나고 명석한 탐정이 등장하여 범인과 트릭을 밝혀내는 것일 게다. 이제는 추리소설 작가들이 더 연구하고 영리해져서 이런 정통 방식을 뒤엎고 꼬고 재구성하고 아주 그냥 해체해서 재조립하는 온갖 새로운 공식이 등장하곤 한다. 공식이 없는 게 공식이라면 공식일 것이다. 


이러니 즐겁지 않은가. 이렇게 다양한 추리소설의 공식 아닌 공식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 앞으로 더더욱 흥하여 더 많은 추리소설과 작가들이 등장했으면 한다. 






물론 우연이겠지만 우리는 카페에 가면 싸우는 커플을 종종 만나곤 했다. 그것도 바로 우리 옆자리에서. 우리 가가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았든, 나중에 앉았든 이상하게도 옆자리에 분위기 냉랭한 남녀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경우가 유난히 기억에 남기 때문에 생긴 착각이겠지만, 우리가 자리를 고르는 운이 없나 싶기도 했다. 옆자리에 싸우는 커플이 있으면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기도 난감하고 괜히 크게 웃으면서 대화하기도 뻘쭘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왜 남들 싸우는 거에는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되는지. 우리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옆자리의 분위기와 상황 진전에 귀를 쫑긋 세우게 되는 것이다.


팔짱 끼고 의자에 최대한 등을 밀착한 채 싸늘한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여자, 미간에 주름을 잡고 눈썹에 힘을 주며 얼른 자리를 떠나고 싶어 하는 남자, 입술을 깨물고 있는 여자는 남겨두고 먼저 자리를 뜨는 남자, 마주 앉아 몇십 분간 아무 말도 나누지 않는 남녀, 단답으로 의미 없는 대답만 날리는 여자.....


사랑하니까 싸울 일도 생기는 거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우리는 싸우지 않기를 바라본다. 생각해보면 지금보다 철없던 시절에는 얼마나 많이 싸웠던지. 그때는 사랑이란 싸우는 거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만남과 헤어짐이 일상처럼 지나가는 건 상관없는데 그 안에서 상처 받고 마음고생했던 것들은 쩨쩨한 양분이 되어 남았다. 


"우린 싸우지 말자."

"그래."

옆에서 싸우는 연인을 마주치게 되면 기분이 복잡 미묘해진다. 

"그런데 만나면서 싸우지 않는 게 가능하겠어? 사소한 것이든 큰 것이든 싸울 일이 생기고야 말텐데."

"힘들겠지? 그래도 최대한 서로 노력해보자."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가 덧붙여서 명한에게 말했다.

"우리 싸우면 기념 삼아 비싼 식당에 가자. 호텔 뷔페나 파인 다이닝으로."

"하하하. 싸운 거 기념하는 거야? 그러면 싸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러게. 찜해 둔 식당이 있는데, 싸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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