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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 Oct 09. 2020

우리의 삶에도 반전이 있을 거야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 우타노 쇼고 | 2005

© director_kim, 출처 Unsplash




"우리... 벚꽃 보러 온 거 맞지?"


지화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살짝 절규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럴 만도 했다. 벚꽃이 흩날릴 계절, 이 좋은 봄날에 (나이는 좀 많지만) 두근두근 설렘 반 애정 가득 연애를 하고 있는 우리가 데이트하러 온 이곳은 남산이다. 유서 깊은(?) 데이트 명소인데, 문제는 그게 우리만 아는 명소가 아니라 서울의 모든 사람들이 이 시각 이 날 이곳에 와 있다는 것. 


"중국인도 엄청 많네!" 

그러게. 오늘따라 중국인도 참 많네. 사람 많은 거 국적 따질 건 아니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가 사방이 퍼지니 여기가 한국인지 중국인지 모르겠네.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흩날리는 벚꽃잎보다 사람이 더 많은 지경이었으니.


"미세먼지도 많네!!"

그래. 미세먼지도 오늘따라 참 많구나. 미세먼지가 황사와 같이 와서 떠다니는 미세먼지 알갱이가 노랗게 눈에 보이는 것만 같다. 하하하. 지화야. 우리는 왜 하필 이렇게 미세먼지 많고 중국인도 많고 한국인도 많은 날 남산에 오르기로 한 걸까. 하하하.


내 웃음소리에 자조가 섞여 새어 나왔다.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 우타노 쇼고 | 한스미디어 | 2019


제목과 표지에 속지 마세요                                       


작가 이름을 보지 않았다면 이게 추리소설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낭만적인 제목이라니. 연애소설에 쓰일 법한 제목이다. 표지는 또 어떤가. 제목에 어울리게 흐드러지게 핀 벚꽃과 '부농부농'한 색감까지. 없는 첫사랑의 아련한 기억이라도 단번에 꺼내게 할 법하다. 


2019년에 새로 개정되어 나왔지만 이 소설을 읽은 지는 꽤 되었다. 처음 이 책을 집어 들고 생각하던 게 기억난다. 


'응? 우타노 쇼고? 그 우타노 쇼고?'


이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읽었던 우타노 쇼고의 추리소설들이 있다. <밀실 살인 게임>, <움직이는 집의 살인>,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 등. 제목만 봐도 딱 추리소설이다 싶지 않은가. 제목에 의지해 읽을 추리소설을 찾곤 하는 나라서, <벚꽃 지는 계절이 그대를 그리워하네>라는 제목은 지나친 모양이다. 


"이렇게 로맨틱하고 감성 가득한 제목이라니. 추리소설 맞아?"


이런 생각을 했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그런 생각은 쏙 사라질 것이다. 속지 마세요. 제목에.




살인사건과 탐정과 낭만과 그리움도 함께                   


주인공 나루세는 어느 날 자살을 시도하려던 여자를 구하게 된다. 그녀와 관계가 진전되는 한편 고등학교 후배의 부탁으로 뺑소니 사건의 범인을 찾기 위해 다단계 회사를 캐보는 탐정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이야기의 큰 얼개는 이런 정도다. 주인공 나루세가 우연히 자살 시도에서 구한 여자와 가까운 사이가 되고, 후배의 부탁으로 다단계 회사를 파헤치는 나름의 수사를 한다는 것. 그 이야기 속에 작가는 독자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치밀한 떡밥을 남겨 두었다.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으레 드는 생각과 달리 문장들이 아련한 서정감을 던져준다. 부족한 내 표현으로는 이렇게밖에 말할 수가 없는데, 정말 읽다 보니 뭔가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보통의 추리소설을 읽을 때와는 다르게 등장인물들에 조금 더 감정이입을 하게 되었는데 그건 추리소설의 문법과 문장에서 많이 벗어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리뷰할 수가 없는 소설                                             


추리소설에 사용되는 트릭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그중에서 서술 트릭은 작중에서 이야기 내에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 밖에서 독자에게 던져지는 트릭이다. 독자가 직접 이야기에 참여하게 되는, 그럴 수밖에 없는 트릭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서술 트릭의 장점은 독자를 잘 속인다는 것, 독자가 이야기에 흥미를 많이 느낄 수 있다는 것. 단점은 작가가 영리하게 트릭을 만들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고, 치밀하지 않으면 독자가 오히려 재미를 느끼지 못할 수 있으며, 어떨 경우에는 이야기를 제대로 다 이해하지 못한 채 책을 덮어버리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는 점 등이 있다. 요즘처럼 소설이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서술 트릭이 쓰인 소설은 영상화가 까다롭다는 점도 일종의 단점이려나. 


서술 트릭이 있다고 말만 해도, 해당 소설의 반전을 미리 공개해버리는 것이나 다름없어서 조심스럽다. 리뷰하기가 어려운 추리소설이 바로 이런 류의 소설일 것이다. 그럼에도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는 알고 읽어도 그 반전의 놀라움과 새로움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남산에서 동대입구역 쪽으로 내려가기 위해 찻길을 따라서 내려왔다. 원래는 버스를 타려고 했으나 사람이 너무 많아 그냥 걸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음에도 입안에는 모래 맛이 느껴지는 것 같았고 눈도 뻑뻑해지는 것 같았다.


"황사와 미세먼지 가득하고, 사람들도 너무 많아서 낭만적이진 않지만 그래도 벚꽃 가득한 봄에 데이트하니 좋네."

지화가 다정하게 말했다. 잡고 있는 손이 따뜻했다. 

"그러게. 이런 날이어도 좋네."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태극당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많았지만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남산에 다녀오면 태극당이지. 온몸에서 미세먼지가 후드득 떨어지는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빵집에 들어오니 빵 냄새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 날 남산 등정(?) 후 태극당에서 빵을 먹으니 엄마 아빠 때 데이트하는 기분이네."

"동감이야."


올해의 벚꽃 구경은 여기서 끝이겠네. 첫 벚꽃 데이트인데 좀 아쉽다. 

"올해는 이게 가장 최악의 데이트겠네. 이제 어떤 데이트를 하더라도 다 좋겠는걸?

지화가 날 보고 배시시 웃었다. 그렇네. 이게 최악일 테고 앞으론 괜찮은 데이트만 남겠네. 좋다. 


살다 보면 안 좋았던 것만 있었던 적은 없었다. 지나고 나서 기억이 보정된 걸 수도 있지만 안 좋았던 것도 다 좋은 날의 떡밥이 되곤 했다. 그게 우리 살면서 겪는 소소한 반전들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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