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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 Oct 05. 2020

이 세상에 미스터리 아닌 게 어디 있어

<탐정 전일도 사건집> | 한켠 | 황금가지 | 2019

"언제부터 추리소설을 읽었어?"

떡볶이를 앞에 두고 나는 지화에게 물었다. 지화는 떡볶이를 한 점 집어 들고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음. 정확하게 기억나는 건 아닌데 초등학생 때 읽었던 건 기억 나."

"가장 처음 읽은 추리소설은 뭐였어? 난 역시 셜록 홈즈 시리즈였는데."

"나도 셜록 홈즈부터 시작했지."


그렇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이 추리소설에 빠지게 된 계기는 대부분 셜록 홈즈부터 시작하더라. 우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셜록 홈즈의 명민하고 날카롭고 불친절하지만 쾌감을 주는 추리 퍼포먼스에 반해 추리소설이 주는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그다음 나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들을 좋아했다. 지화 역시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에 반했지만 찾을 수 있는 추리소설이라면 가리지 않고 읽었다고 했다.




© jelly, 출처 Pixabay



"어릴 때는 보고 싶은 책을 다 살 수 없으니 도서관에 가거나 서점에 가서 읽었지. 도서관에서 빌려 보는 것도 좋았는데 동네 서점에 쭈그려 앉아서 읽고 온 경우도 많았어."

지화는 떡볶이를 오물오물 씹었다. 분명 연애 초기에는 떡볶이를 별로 안 좋아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나보다 더 떡볶이를 자주 찾는다. '매운 게 먹고 싶다'는 지화의 말에 삼각지역과 신용산역 사이에 있는 '현선이네 떡볶이'를 찾았었는데, 그 이후 생각날 때마다 둘이 이곳을 찾고 있다. 



"그래서 추리소설처럼 보이는 걸 열심히 찾아 읽었지. 탐정이 등장하거나 범죄가 있거나 하면 추리소설이라 생각하고 읽었어. " 

지화와 나는 추리소설 입문과 경과가 비슷했다. 어릴 때 우연히 읽은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를 읽고 추리소설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요즘처럼 추리소설에 대한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알음알음 배워가면서 찾아 읽었다. 그러다 학업에 열중해야 할 중고등학생 때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추리소설과 좀 멀어지게 되었고 다시 어느 정도 마음에 여유가 생긴 성년이 되어서야 추리소설을 본격적으로 탐독할 수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세상은 넓고 추리소설은 무궁무진하게 많다는 걸. 그리고 추리소설이 '장르소설'이라 불리며 독자의 흥미와 재미만을 강조한 문학으로 여겨지지만, 그 안에는 삼라만상의 모든 이야기를 담아내기도 한다는 것을. 


어느새 떡볶이가 바닥나고 있었다. 지화는 영리하게도 떡볶이를 잘 골라 먹었다. 다행히 나는 떡볶이보단 어묵을 더 좋아하기는 한다. 슬쩍 바닥에 숨어 있는 떡볶이를 지화의 숟가락에 올려주었다. 지화의 입가에 미소가 피었다.


지화가 계속 말했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내가 추리소설을 읽는 걸 별로 안 좋아하셨어."

"왜?"

"작가의 만들어 놓은 계교에 놀아나는 거라던가. 작가가 머리를 잘 써서 짜 놓은 놀음이라 그렇게 좋은 건 아니라고 보신 거지."


음. 어머니는 짜장면을 싫어하신 게 아니라 아버지가 딸이 추리소설 읽는 걸 싫어하셨다라. 그렇게 보실 수도 있지. 홈즈나 포와로가 등장하는 추리소설은 트릭과 퍼즐이 큰 주축이라 작가와 독자가 머리싸움하는 걸로 보이기도 하니까. 장인어른이 되실(지도 모를) 분을 만나 뵈면 추리소설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아야겠군.







<탐정 전일도 사건집> | 한켠 | 황금가지 | 2019




이 세상에 미스터리 아닌 게 어딨어                       

       

생각해보면 세상에는 미스터리가 넘쳐난다. 거창하게 '세계 x대 불가사의' 나 '미해결 살인사건' 같은 거 말고도 소소한 미스터리가 얼마나 많은가. 


출근길 지하철에 앉아 있는 남자의 양말이 짝짝이인 것도, 갑자기 나에게 화를 내는 상사의 태도도, 백만 년 만에 전화해서 남편 흉을 보는 친구도, 한강 둔치에 누가 버리고 간 공유 킥보드도 어찌 보면 다 훌륭한 미스터리의 소재가 된다. 


남자는 첫사랑을 만났다가 아침에 부인에게 들킬까 봐 급히 나오는 길에 양말을 잘못 신었을 수도 있고, 상사는 몰래 대출받아 주식을 샀는데 주가가 떨어지고 있어 괜히 나한테 화를 낸 것일지도 모르고, 친구는 새로 창업한 남편이 잘 나간다는 것을 자랑하려고 흉을 보는 척하는 걸지도 모르고, 한강에선 칼부림이 났다가 급히 도망가느라고 범인이 공유 킥보드를 버리고 간 것일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상상하는 것은 자유지만, 거창한 것이든 시시한 것이든 미스터리함은 어디든 존재한다. 


그러고 보면 소설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추리 작법을 이용한 것은 또 얼마나 많던가. 너무 나간 의견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추리 작법이 들어가지 않은 것이 없다. 드라마 <비밀의 숲> 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디즈니 영화 <주토피아>를 봐도 대체 동물들이 왜 저러는 건지, 범인(?)이 누구인지 궁금한데 이게 다 일종의 추리....라고 보기엔 너무 나간 생각인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가장 오늘의 탐정다운 전일도 탐정                                



이 소설은 단편집이다. 정확히는 연작소설이 되겠다. 소소, 아니 시시해 보이는 다양한 사건을 탐정 전일도가 해결해주는 것이 골자다. 사건 의뢰와 탐정의 해결이 반복되는 전형적인 추리소설이라 하겠다. 


"할인은 되지만 할부는 No, 열 번 의뢰하시면 한 번 공짜!"

생계형 탐정은 이렇게 커피숍 쿠폰 도장 찍듯이 고객을 잡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제 탐정업이 공식적으로 도입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탐정처럼 번뜩이는 뇌세포를 굴리며 경찰이 손도 못 대는 사건을 휴지 풀듯 술술 해결해가고, 때로는 멋진 날라차기로 범인을 잡기도 하는 그런 탐정이 정말 나올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일도 같은 탐정은 어쩐지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조부모부터 부모까지 탐정업을 대대로 해온 유서 깊고 뼈대 굵은 탐정 가문에서 태어난 전일도는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반백수지만 탐정업에 대해서는 명확한 소신을 갖고 있다. 부모님처럼 '불륜 탐정'은 아니고 '실종 탐정'이라는 자신의 직업 정체성(?)도 확고하다. 덕분에 이 탐정이 만나게 되는 사건은 대개 사람을 찾아달라는 '실종' 사건이다. 


그런데 이 사건들은 참 시시(?)하다. 계약 결혼하여 살고 있다가 사라진 부인 '스파게티 황'을 찾으러 가고, 전세자금 받아야 한대서 집주인 딸을 찾으러 가고, 비혼 주의자가 그동안 냈던 축의금을 회수하러 가는데 동행하고.......


누가 죽고 어디가 썰리고 납치되는 그런 무시무시한 내용이 아니라, 정말 오늘날 어디에나 있는 사람들의 의뢰라 가장 지금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 등장하는 사건들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이 다 비쳐 보인다. 평범한 연애 고민부터 갭투자, 비혼, 아이돌 연습생과 공시생, 취업 실패, 노인의 삶, 유튜브, 아이 교육과 부모의 욕심, 미투 등등. 현재 대한민국의 사회 문제이자 우리 모두의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는 크고 작은 문제를 영리하게 녹여내었다. 


총 열 편의 사건이 등장하는데 아홉 번째 사건 <우리들의 미래>는 여러모로 다양한 감정과 생각이 떠오르게 했다. 읽다 보니 이게 추리소설인지 사회소설인지 헷갈리다가도 작가의 문장력이 좋아 웃다 울다 할 법한 때가 여러 번 있었다.



일상 미스터리가 이렇게 정겹고 재밌는데                       


어떤 재미를 추구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개 일상 미스터리는 분위기는 잔잔하고 내용은 쉽고 등장인물들은 정겨운 것이 매력이다. (그 와중에도 꽤 큰 범죄가 일어나는 일상 미스터리도 있겠다마는.) 


<탐정 전일도 사건집>에서 가장 큰 매력을 느낀 부분은 시시콜콜하게 일어나는 사건들이 하나같이 솔직한 우리의 모습인데, 작가가 그걸 심각하지도 어렵지도 우스꽝스럽게도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문장은 인터넷과 유튜브에 익숙해진 사람도 술술 읽어 내려가게끔 쉽고 속도감이 있었다. 468쪽의 한 권을 읽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앞에서 읽었던 내용을 다시 찾아보며 '이게 떡밥이었어?'라고 놀라는 추리소설도 무척 좋아하지만 일상 미스터리의 매력에 빠지면 한 동안은 이런 이야기만 찾게 된다. 잔혹한 범죄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추천하기에 좋다. 


무엇보다 세상 모든 것이 아기자기한 추리소설의 소재가 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 장르인지. 






떡볶이가 매워서 그런지 지화는 연신 쿨피스를 마셨다. 매운 걸 잘 못 먹는데도 열심히 먹는 모습에 나는 쿨피스도 찬물도 부지런히 채워주었다.



"그래도 좀 감동적인 건 뭐지 알아?"

지화 입꼬리에 은근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내가 쿨피스를 채워주는 게 감동적일 것까지야. 

"뭐가 그리 감동적인데?" 

지화가 나를 칭찬하면 좀 멋쩍어하는 표정을 지어줘야지. 에헴.

"우리 아버지 말이야. 추리소설 많이 읽지 말라고 하시는 건, 딸이 추리소설 좋아하는 건 잘 알고 계신다는 거잖아."

"응? 으응. 그렇지. 하하하" (내 얘기가 아니네.) 

"어느 날은 갑자기 아가사 크리스티 책을 한 묶음 들고 귀가하시더라고. 왜 그 해문출판사에서 나온 포켓 사이즈 아가사 크리스티 전집 알지? 그거를 잔뜩 들고 오시더라니까. 내가 이게 다 뭐냐고 물어보니까, 누가 이걸 다 버리고 갔다는 거야. 보니 새 책이나 다름없이 깨끗하고 멀쩡한데, 집에 있는 추리소설 팬인 딸이 생각나신 거지. 그래서 그걸 다 들고 오셨다는 거야."


매운맛 떡볶이 때문인지 주변이 더워졌다. 양 손 두둑이 추리소설 시리즈를 들고 귀가하는 아버지의 모습이라. 멋지다. 나도 그런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나중에 알았지만, 친할머니가 그렇게 에도가와 란포 소설을 좋아하셨더라고. 친손녀도 이렇게 추리소설을 좋아하니, 대를 이어가는 추리소설 애독가라고나 할까."


아. 그럼 우리 아들딸도 추리소설을 이어서 좋아하겠네. 나는 (김칫국 대신) 남은 쿨피스를 다 마셨다. 앞에서 지화는 아무것도 모르고 싱글벙글 웃고 있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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