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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 Oct 07. 2020

탐정보단 우리 같은 직업이 낫지

<네 번째 원숭이> | J. D 바커 | 비채 | 2020

저녁 시간이 늦은 사당역, 각자 일을 마치고 늦은 데이트를 하던 날이었다. 명한은 커다란 백팩을 메고 왔고 내가 든 숄더백도 그에 못지않게 두둑했다. 가방에서 나온 것은 각각 노트북, 아이패드, 그리고 여러 논문들. 우리는 자주 가는 카페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가지고 온 것을 늘어놓고는 각자 쓸 원고에 집중했다.


사람을 만날 때 닮은 구석이 많으면 서로 이해하기에 좋다. 모험보단 안정을 좋아하는 나이대가 되어서 그런 걸까. 처음부터 서로 말이 잘 통하고 이해를 잘 해준다 싶었는데 비슷한 환경에서 성장하고 비슷한 과정의 진로를 선택하여 비슷한 정도로 살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말하자면 연구. 어찌 보면 따분하기도 하고 고락의 부침이 적기도 하여 잔잔한 호수의 일 같기는 하다. 열정은 있지만 스릴은 없고 밤샘은 있지만 대가는 미미하고 보람은 있지만 영광은 없는 그런 정도랄까.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명예가 넘치는 것도 아니고 휘황찬란한 미래나 일확천금을 기대하기도 어려우니 가끔은 빛 좋은 개살구 같다. 그것도 흔하디 흔한 개살구 농장에 있는 개살구. 


큰 고난이 없으니 안정을 중시하는 나로서는 우리의 일이 마음에 들기는 하는데, 과연 명한은 어떻게 생각할까?





<네 번째 원숭이> | J.D. 바커 | 비채 | 2020





네 번째 원숭이가 무슨 말인가 했더니                  

제목만 보고서 어떤 내용일지 감이 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책을 집어 들고 살지 말지 고민하게 된다. 책의 띠지나 뒤표지의 문구를 보고 눈치채는 수밖에 없다. 아니면 먼저 읽은 사람의 리뷰를 보거나 출판사의 홍보문구를 보는 것도 한 방법일터.



"귀, 눈, 혀를 차례로 배달하는 연쇄살인마 4MK. 오늘 그가 죽었다. 새로운 희생자의 귀를 든 채로..."


거. 참 살벌한 문구네. 귀와 눈과 혀를 자르는 연쇄살인마라니. 책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지만 4MK는 '네 마리 원숭이 살인마'의 약자였다. 래퍼 이름 같은 약자라 한눈에 들어왔었는데 유래(?)를 알고 나니 이해는 쉬웠다. (사실 Fourth인지 Four인지 잘 모르겠다.) 이 이름은 일본의 절에 있는 원숭이상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듣기에는 일본 말고도 여기저기에 있는 것 같지만, 여하튼) 각각 눈을 가리고, 귀를 가리고, 입을 가린 원숭이상이 있는데 여기에서 착안하여 이 살인마를 '네 마리 원숭이 킬러'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나는 이 원숭이상의 유래가 되는 것을 논어에 나오는 '예(禮)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라고 알고 있는데 여하튼, 이 소설에서는 "악(惡)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라고 해두었다. 책을 읽는 데는 아무 문제없다. 




연쇄살인이라는 긴장감과 속도감                                 


연쇄살인 이야기는 늘 긴장감이 가득하다. 언제 어떤 사건이 터질지 기대하고, 어떤 사건들이 이미 일어났는지 감안하고 읽게 때문이다. 이에 더하여 <네 번째 원숭이>는 이미 사건이 벌어진 것이 유명한데, 그 범인이 교통사고로 죽어버린 것에서 시작한다. 범인은 알았으나 죽었고, 지금 그의 희생자가 된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 상황. 


그래서 남은 단서들을 최대한 끌어모아 희생자를 추적하고 범인의 정체도 밝혀내는 것으로 소설의 내용이 흘러간다. 물론 이렇게만 흘러간다면 뻔한 추적극이 될 수도 있었으나 작가는 여러 번의 반전을 미리 소설에 숨겨두었다. 


<네 번째 원숭이>는 희생자를 찾아가는 현재의 수사 과정과, 범인이 일부러 흘린 자신의 일기의 내용이 교차되어 전개된다. 이를 통해 연쇄살인범의 배경과 심리를 이해하게 하면서 동시에 사건이 어떻게 긴박하게 흘러가고, 또 이 교차되는 내용이 만나는 과정에서 어떤 재미가 주어지는지 알아가는 매력이 있었다. 


큰 사이즈의 사건을 다루는 소설에서 정의의 편, 그러니까 형사나 경찰은 유독 몸고생 마음고생을 하는 경우가 많이 보이는데, 이 소설에서도 그러했다. 4MK를 전담적으로 담당해 온 샘 포터 형사가 소설 내에서 어떻게 고생하는지를 보고 있자니 짠하기도 했다. 탐정도 형사도 경찰도 참 힘들겠구나 싶다. 



영상이 그려지는 텍스트                                          


최근의 소설들은 텍스트를 읽는 대로 잘 만들어진 영상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길 미리 예상 또는 기대하고 글을 쓰는 건지, 아니면 이제 영상적 이미지가 너무 자연스럽게 된 시대에 살아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이 소설도 문장을 따라 읽으면서 스크린 또는 브라운관에 비치는 영상이 바로 그려지는 듯했다. CBS 드라마화 확정이라고 하니 머지않은 때에 영상으로도 만날 수 있을 거다. 


참, 소설의 맨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 이야기가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후속작이 나오면, 아마 주저 없이 읽게 될 것이다.







"나는 돈을 좀 많이 벌고 싶지."

명한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하기사, 돈 싫어하는 사람 있을까. 

"우리 일이 나름 전문 지식을 필요로 하고 나는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어. 그렇지만 대기업 다니는 친구나 은행 다니는 후배처럼 연봉이 많은 쪽은 아니니까. 공무원처럼 미래가 아주 안정적이지도 않고."

나는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는 교수님은 그러시더라고. 대학원 진학하겠다는 학생에게 진지한 상담을 해주신대. 대학원 과정 듣는 동안 들어가는 등록금만 몇 천인데, 그 돈 모아서 장사를 하면 오히려 안정적일지도 모르는데 그 돈을 투자할 정도로 이 길에 확신을 갖고 있는지. 진학을 말린다는 할 정도로 심각하게 생각해보게 하신다더라고."

"좋은 분이시네."


잠시 둘 다 말이 없이 노트북의 화면만 바라봤다. 알 수 없는 전문 용어들이 춤추는 모니터 위 하얀 워드의 세계. 그 속에서 우리는 유의미하기도 하고 무의미해 보이기도 하는 것들을 만들어낸다. 만들어내야만 한다. 


가끔은 이 진로를 선택한 게 참 재미없는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것도 아니고, 이름을 날리게 되는 일도 없고. 좋아서 하는 게 가장 큰 장점인 건가. 잠시 허공을 바라보다가 언젠가 아버지가 해준 말씀이 생각났다. 



"예전에 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이 있는데 말이야."

"뭔데?"

"직업은 우리 같은 직업이 최고래."

"왜?"

"돈 잘 벌고 사회적 명망을 받는 직업이라고 흔히 여겨지는 전문직을 보면, 판사와 검사, 변호사는 매일 남이 다투는 것만 보고, 의사는 아픈 사람만 만나게 되잖아. 그만큼 힘든 직업이라는 거지. 대신 우리는 그렇진 않으니까...?"

"그렇긴 하네. 하하하"

혹시 그냥 위로와 응원을 보내주시려고 하신 말씀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우리가 우리 일을 좋아하고 즐길 수만 있다면야, 이처럼 잘 맞는 직업이 또 있을까 싶다. 


적어도 연쇄살인마 찾아내야 하는 형사나 탐정보다는 우리가 훨씬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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