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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 Oct 03. 2020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추리소설일까

<이웃집 아이를 차로 치고  말았어>  (그렉 올슨)

둘이서 나란히 저녁의 청계천가를 걸었다. 날은 적당히 시원했고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짧았던 '썸'을 끝내고 연애라는 걸 시작한 지 네 달여. 우리는 아직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과거 연애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그리고 여기저기서 보고 들은 바에 따르면 연애하고 두 달쯤 되었으니 사소하게든 크게든 싸울 시기였다. 남녀가 서로 싸우는 이유야 동서고금 막론하고 찾으려면 백과사전 한 묶음은 거뜬히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나오지 않던가. 그리고 경험상 싸우는 시기는 어느 정도 서로에게 익숙해졌다,고 여겨졌을 때 시작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명한과 나는 아직 싸우지 않았다. 그동안의 내 연애 패턴을 떠올려보면 장족의 발전 혹은 있을 수 없는 일 정도의 만족스러운 애정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덧붙이자면, 나는 명한과는 싸울 일이 없을 거라고 건방지게 자신하고 있었다. "이제 겨우 네 달 만났는데 그걸 어떻게 장담해."라며 주변에서는 코웃음 쳤지만 그렇게 생각할만한 나름대로의 근거가 있었다.



© priscilladupreez, 출처 Unsplash




일단, 우린 삼십 대 중후반에 만나 연애를 시작했다. (정확히는 한 명은 중반이었고 한 명은 후반이었고……) 그러니까 다소 늦게 시작한 연애인 셈. 늦연애긴 한데, 둘 다 오랜만에 하는 연애이면서 충분히 나이가 찬 (사실은 넘치는......) 때라서 그런지 우리에게는 오히려 장점으로 다가왔다.


나이가 있으니만큼 각자 여러 사람도 만나 봤고 다양한 경험도 쌓아 봤다. 다시 말해 적당히 알만큼 알고 해 볼만큼 해보고, 겪어볼 만큼 겪어봐서 그런지 서로에 대해 기가 막히게 이해를 잘해주었다.  소소하게 연인들 사이에 일어나는 흔하고 많은 몰이해와 짜증과 다툼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하는 일이 비슷하고 가치관이 비슷하고 종교나 입맛이 같고, 이런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상대방을 그대로 좋아해 주는가, 하는 게 아닐까. 우리는 그런 점에서 더 뺄 것도 더할 것도 없이 잘 맞았다. 물론 직업관이나 성향, 취향, 가치관 등도 일치했으니 서로에게 금상첨화였다. 


그리고 이 남자, 배려심도 많고 나를 참 신뢰해준다. 무조건적으로 예뻐해 주는 게 느껴진다. 내가 조금 못된 말을 해도 좋은 방향으로 받아쳐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여자의 마음이라는 게 조금 짓궂어질 때가 있는 법. 


나는 가끔 답이 없는 질문을 툭툭 던지곤 했다. 

이를테면, 스타워즈와 어벤저스의 열렬한 팬인 그에게 "스타워즈 시리즈와 어벤저스 시리즈 중에서 하나만 볼 수 있다면 무엇을 고를 거야?"

아니면, "밤새 옆방에서 시끄럽게 싸우고 울고 지지고 볶는 호텔방과, 조용하지만 꽤 더러운 호텔방 중 한 곳에서 묵어야 한다면 어딜 갈 거야?"

이런 질문들. 


그럴 때마다 난감해하면서도 은근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명한의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엉뚱한 대답을 하거나 내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거나,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아아"라며 절규(?)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일어나지 않을 극한의 사정을 가정하여 상상해 보는 건 대화의 재미난 소재가 되지 않던가.









<이웃집 아이를 차로 치고 말았어> | 그렉 올슨 | 한스미디어 | 2018



직설과 긴장감 사이의 줄타기

                                                                       

처음에 책을 손에 쥐고 제목을 보면서 든 생각은 이랬다.  


"와, 참 정직한 제목이네."


책 표지도 그렇고, 제목도 그렇고 사건의 발단이 뭔지 패를 다 까놓고(?) 시작하는 소설이었다. 이웃집 아이를 차로 쳤다니, 자극적인데 어떻게 될지 뒷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제목이다. 사고로 시작된 사건임은 분명하다. '--고 말다'라는 동사는 "앞말이 뜻하는 행동이 끝내 실현됨을 나타내는 말"로 의도하지 않은 일에 쓰이지 않던가. 다만 띠지에 붙은 말은 좀 수상했다. 


"찰리가 사라졌어. 죽은 애가 없어졌다고!" 


여기까지만 봐도 궁금증은 많은 가지를 뻗어나간다. 과연 주인공의 이웃집은 어떤 사람이며, 주인공과 어떠 관계를 맺고 있었던 걸까? 아이는 크게 다친 건가, 아니면 죽은 걸까? 주인공은 사고를 어떻게 수습해 갈까? 사라진 아이는 어떻게 된 걸까? 그리고 이야기는 과연 어떻게 뻔하지 않고 흥미롭게 흘러가 독자의 이목을 빨아들일까?


제목의 힘이었다. 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돌려서 궁금증을 유발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어떤 내용인지 다 알려주면서 오히려 뒷 이야기가 궁금해져 읽고 싶게 만들었다. 






정말 일어날 수도 있는 이야기

                                                                         


//

리즈는 변호사 시험을 준비 중이다. 떨어지고 보는 번째 시험이다. 밤새 공부하면서 신경은 날카로워져 있었고 약까지 먹으면서 시험을 치르러 나가는 날이었다. 시험장에 늦게 도착할 같아 비몽사몽 와중에도 차고에서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그리고 후진을 했는데....... 쿵!하고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자동차 뒤편에 있는 건 옆집 캐롤 부부의 아이, 찰리였다. 

//


이야기의 주요 얼개는 이웃집 아이를 차로 치어버린 리즈의 시선에서 전개된다. 리즈는 중요한 변호사 시험을 보는 날, 시험 부담과 약 기운과 갖가지 복잡한 감정에 싸여 사고를 저질렀다. 그리고 그는 차에 치인 아이를 위해 구급차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방수포로 덮어둔 채 시험장으로 간다. 그 사이 아이가 사라진 걸 알게 된 옆집의 캐롤은 아이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경찰에도 신고한다.


이야기는 크게 리즈 부부와 캐롤 부부의 시선에서 전개된다. 리즈네는 리즈의 죄책감과 불안감, 자신의 범죄가 드러날지 모른다는 초조함과 공포감에 휘둘리고, 캐롤네는 돌아오지 않는 아이를 찾다가 부부간의 문제까지 들추게 된다. 리즈가 벌인 사건으로 두 가족과 마을은 겪지 않아도 될 일들에 흠뻑 빠진다.


사실 소설의 첫머리는 20년 전 이 마을에서 일어난 사고로 시작한다. 이 과거가 어떻게 현재와 연결되면서 복선이 될지 함정이 될지 지켜보는 것도 한 재미였다.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여자

                                                                 

소설은 흡입력도 세고 전개의 속도도 빨랐다. 작가는 사건과 관계된 사람들의 시선에서 그들이 겪는 감정의 변화와 긴장감에 놓인 처지를 사실적으로 풀어놓았다. 사고를 은폐한 리즈와 남편이 겪은 감정의 소용돌이, 아이를 잃어버린 캐롤 부부의 갈등, 마을을 휘감고 있는 안타까움과 응원의 분위기. 


덕분에 빠르게 이 사건의 한 복판에서 캐릭터들을 관망하는 듯한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사건을 마주한 사람들의 심리 변화와 행동에 대해 작가가 얼마나 공을 들여 썼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이 사건의 얼개보다는 심리묘사와 변화가 이 소설의 장점이자 특징이었다.


다만 캐릭터에 너무 쉽게 몰입이 되도록 작가의 역량 때문일까. 주인공 리즈의 행동과 태도를 보면서 충분히 이해가 가면서도 어찌나 중간중간 짜증과 화가 나던지. 수백 양보해서 당황한 마음에 찰리에게 방수포를 덮어두고 방치했다 하더라도 그다음에 이어지는 일련의 행동은 정말이지 민폐만 끼치는 인물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독자를 짜증 내게 하려던 작가의 목적이었다면, 성공한 셈이다.


속으로는 리즈의 행동을 흉보면서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이야기의 꼬리를 따라 가느라 매우 빠르게 완독할 수 있었다. 이 사고로 펼쳐지는 두 부부의 숨겨져 있던 비밀과 갈등, 마을의 혼란은 영화의 장면을 보는 것처럼 쉽게 독자를 이해시켰다. 


다시 보면 한국어판 제목을 참 잘 지었다. 원제는 'the last thing she ever did'다. 대충 번역해 보면 '그녀가 마지막으로 한 것(일)' 정도가 될까. 영어 원제가 무미건조하게 사건 발생의 주체를 암시하는 것에 그치는 데 반해, 한국어판 제목은 '정말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데 일어나버린, 내 미래와 이웃집의 미래가 급박하게 돌아갈 것임을 암시하면서, 어떤 사건인지 한 번에 짐작'할 수 있어 잘 뽑았다고 생각한다.






탐정도 없고 트릭도 없지만

                                                                     

서술도 스토리도 흥미진진해서 (주인공의 행동에 짜증도 많이 냈지만) 문자 그대로 단번에 읽어버렸다. 마지막 장을 탁! 덮고 나서는 문득 궁금증이 밀려왔다. '이 책도 추리소설인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일반 독자로서 내가 추리소설을 찾아 읽는 방법은 대개 이렇다. 온라인 서점이나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추리소설'로 분류되어 있는 범주를 찾아 들어가 되도록 신간을 찾아본다. 그중에서 제목이나 내용 소개를 읽고 흥미로워 보이는 책을 찾아 주문하거나 대여해서 본다. 그러면 탐정이 등장하고 트릭 해결이 주를 이루는 소설도 나오지만, '추리소설'이라는 단어에는 아주 꼭 들어맞다고 보기 어려운 '미스터리 소설' '스릴러 소설' 등도 함께 읽게 된다. 이 책도 그렇게 알게 되어 읽은  것이었다.


"추리소설"에 대해 국어사전이 정의하는 바를 보면, "범죄 사건에 대한 수사를 주된 내용으로 하며  사건을 추리하여 해결하는 과정에 흥미의 중점을 두는 소설"이라 한다. 연관 단어로는 '미스터리' '탐정소설'이 있다. 대개 스릴러 소설이나 서스펜스 소설도 함께 동류로 보기도 한다. 엄격하게 따져보자면 각각의 특징이 다 다르고 매력도 전혀 다르지만, 스릴러 소설이 '독자들에게 공포와 긴장감을 주는 소설'이라 하고, 서스펜스 소설은 '줄거리의 전개가 독자에게 긴박함이나 불안감을 주는 것'이니, 내가 읽고 싶어하는 '추리소설'이란 것에 모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어떤 것이 먼저 앞서고 뒤서는지는 모르겠다. 어떤 게 더 큰 범위고 하위 범위인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좁은 의미의 추리소설들만을 읽기엔 세상에 너무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 그 많은 이야기들을 즐기지 못하고 놓치는 건 참 큰 인생의 손해라고 생각한다. 









"이제 여기도 꽃이 피겠네."

저녁의 청계천가는 아직 추웠지만 따뜻해지고 있었다. 아직은 손을 맞잡고 나란히 걸을 때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아도 좋았다. 다행히도 우리는 대화가 끊기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잠시 먼 곳을 바라보는 것 같던 명한이 불쑥 말했다.

"아마 지금처럼 좋진 않았을 거야."

"...... 응?"

갑자기 뜬금없이 무슨 소리람?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명한을 바라보았다.


"아까 그 질문 말이야."

아.


몇 분 전 나는 이렇게 질문했다. "만일 우리가 지금 이렇게 만난 게 아니라, 둘이 조금 더 어릴 때, 하다못해 5년 전에라도 만났으면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대답이 없길래 좀 무리한 질문이었나 싶어서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는데, 이 사람은 내내 그 질문을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5년 전쯤이면 난 한참 앞뒤 안 보고 학업에만 매달렸을 때였거든. 해야 할 게 너무 많아서 스스로 지쳐있었어. 지금처럼 누군가를 만날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때라서, 그때 우리가 만났었다면 지화를 좀 힘들게 하지 않았을까 싶네."

"그렇구나. 그럼 우리는 적당한 때에 잘 만난 거네."

"응. 그런 거라고 생각해."


다행이다. 사람을 만나고 싶을 때 우연히 아니 운명적으로 어긋나지 않게 잘 만나 이렇게 다정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으니.


세상에 얼마나 일어났으면 싶은데 일어나지 않는 일이 많고,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데 일어나는 일은 또 얼마나 많던가. 그런 와중에 그저 지나가는 만남이 될 수도 있었는데 우리는 또 어떻게 만나서 지금 이렇게 같이 손을 잡고 청계천을 걷고 있네. 


좋은 저녁이었다.



그렉 올슨은 작가 겸 방송가라고 한다. 여러 소설과 책을 내었지만, 국내에는 현재 <이웃집 아이를 차로 치고 말았어>만 번역되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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