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 여행 ②
발레타(Valletta)는 몰타의 수도이다. 행정구역상 면적은 0.8㎢에 불과하고, 인구도 약 6천 명 남짓이지만, 주변 도시권까지 포함하면 약 40만 명에 이른다. 몰타 전체 인구가 50만 명 전후임을 감안하면, 국민 대부분이 이 일대에 모여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도의 절벽 위에 자리한 발레타는 지형만으로도 천혜의 요새라 할 만하다. 그러나 잦은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 16세기 중엽, 도시 전체를 감싸는 성벽과 깊이 18미터에 이르는 해자를 조성하며 더욱 견고한 방어 도시로 거듭났다.
발레타의 관문, 시티 게이트
시티 게이트(Valletta City Gate)는 과거 성으로 출입하던 통로였다. 지금도 발레타의 상징적인 관문으로, 중심가로 들어서려면 반드시 이곳을 지나야 한다. 긴 세월 동안 다섯 차례의 재건을 거쳐 2014년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으며, 파리 퐁피두 센터를 설계한 이탈리아 건축가 렌초 피아노(Renzo Piano)의 작품이다.
성문을 통과하면 곧바로 오른편에 매우 현대적인 건축물이 시선을 끈다. 몰타 국회의사당이다. 이 또한 렌초 피아노의 설계로, 외벽에 깊게 파인 홈들이 독특한 인상을 남긴다.
그 맞은편에는 기둥 몇 개만 남은 유적이 보인다. 1866년 영국 식민지 시절 세워졌던 왕립 오페라 하우스의 흔적이다. 한때 발레타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혔지만, 화재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파괴되었다. 지금은 일부를 복원해 야외 공연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발레타 한가운데 자리한 성 요한 대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몰타의 심장이라 불리는 이곳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성 요한 기사단(The Order of the Knights of St. John)에 대해 잠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성 요한 기사단의 시작
성 요한 기사단은 11세기 초, 예루살렘을 찾는 순례자들을 돕기 위해 이탈리아 아말피 출신 상인들이 결성한 단체에서 출발했다. 이들은 세례 요한의 무덤 위에 세워진 호스피스병원에서 환자와 순례자를 돌보던 구호 조직이었으나, 제1차 십자군 원정을 거치며 성지를 지키는 기사단으로 성격이 바뀌게 된다.
이후 예루살렘이 이슬람 세력에게 넘어가자, 기사단은 로도스를 거쳐 몰타로 이동했고, 당시 지중해를 장악하고 있던 스페인 국왕 카를 5세로부터 몰타를 하사 받아 약 270년간 이 섬을 통치하게 된다. 이때부터 몰타는 하나의 국가로서 존재감을 갖게 된다.
16세기 중엽, 오스만 제국은 4만 명이라는 막강한 병력을 동원해 몰타를 공격했지만, 성 요한 기사단은 불과 6천 명의 인원으로 이를 결사적으로 막아냈다. ‘몰타 대공성전’이라 불리는 이 전투는 서유럽으로 향하던 오스만 제국의 팽창을 저지한 결정적인 사건으로 기록된다. 유럽 각국에서 감사의 표시로 막대한 물자와 후원금을 보내올 정도였다고 하니, 그 역사적 의의를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후 몰타에는 새로운 도시가 세워졌고, 그 도시는 기사단장을 기려 그의 이름인 ‘발레타’라 불리게 되었다.
나폴레옹의 몰타 점령 이후 기사단은 국가로서의 지위를 잃었지만, 오늘날까지도 상징적 국가로 존재한다. 로마를 거점으로 활동하며 100여 개국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 자체 여권도 발급한다. 우리나라에도 성 요한 기사단 한국지부가 있다.
성 요한 기사단은 발레타를 건설하면서, 일반 주민들을 위한 성당이자 기사단의 종교적 본부가 될 성당이 필요했다. 이런 필요에 따라 세워진 곳이 바로 성 요한 대성당이다.
몰타의 심장, 화려함의 극치, 성 요한 대성당
성 요한 대성당의 외관은 의외로 소박하다. 단정한 석조 건물 앞에 서면, 이곳이 그토록 찬란한 내부를 품고 있으리라 쉽게 짐작하기 어렵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누구나 숨을 멈추게 된다.
벽과 기둥, 천장까지 온통 황금빛으로 빛나는 공간. 대리석 바닥을 포함해 성당 전체가 바로크 양식의 장식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부조 하나하나에 금을 입힌 듯한 화려함은, 그야말로 눈부시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성당 내부에는 성 요한의 생애가 촘촘히 담겨 있다. 특히 천장에는 세례 요한의 탄생에서 순교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가 프레스코화로 펼쳐져 있다. 이 작품은 화가 마티아 프레티(Mattia Preti)가 무려 6년에 걸쳐 완성한 것이다.
2층 회랑으로 올라가면 이 천장화를 더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고, 동시에 아래를 내려다보며 성당 전체의 장엄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감탄이 멈추지 않았다.
바닥에는 바둑판처럼 구획된 무덤들이 이어진다. 약 400여 기에 달하는 기사들의 묘로, 대리석 판 위에는 라틴어 비문과 화려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곳이 단순한 종교 공간이 아니라 기사단의 역사 그 자체임을 말없이 전해준다.
중앙 제단을 기준으로 양옆에는 여덟 개의 예배당이 자리하고 있다. 기사단이 속했던 지역별로 꾸며진 공간으로, 예배당마다 각 기사단의 수호성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어느 하나 소홀한 곳 없이 모두 화려하다.
카라바조의 '세례자 요한의 참수'
성당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작품은 단연 카라바조의 〈세례자 요한의 참수〉다. 이 작품을 보기 위해 성 요한 대성당을 찾는 이들도 적지 않다.
오라토리움에 걸린 이 그림 앞에 서자, 시간을 잊는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화면 속에서 인물들은 극적인 긴장감을 머금고 있었다. 카라바조 특유의 명암 대비는 숨이 멎을 듯 강렬했다.
이 작품은 그의 그림 중 가장 큰 규모이며, 유일하게 그의 서명이 남아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삶의 궤적만 놓고 보면 그는 결코 모범적인 인물은 아니었지만, 미술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거장임은 부인할 수 없다.
성 요한 대성당을 나서며 문득 피렌체 성당들을 돌아보며 알게 되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이토록 찬란한 공간에, 인간의 신앙과 욕망, 예술과 권력이 얼마나 깊게 얽혀 있었는지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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