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는 새가 정말 많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조류 공포증 있는 사람들은 뉴질랜드에 못 온다고 이야기할 정도이다. 참새같이 작고 귀여운 새들도 물론 있지만, 보자마자 위압감이 들 정도로 크고 단단한 인상의 새들도 많다. 한국에서는 새를 생각하면 “지저귄다” 정도의 서술어가 떠올랐다면, 뉴질랜드에서는 “우짖다”는 서술어가 떠오를 정도로 이곳의 새들은 특히 새벽에 힘차게 운다. 자다가 잠에서 깰 정도로 우렁차게 그렇게 운다.
사람 마음만큼이나 변덕스러운 날씨를 가진 이곳은 바람도 비도 무척이나 세다. 폭풍을 연상케하는 날씨가 찾아올 때면, 사방이 온통 비와 바람 소리로 가득 차서 이대로 집이 뽑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하곤 한다. 어제도 바로 그런 날이어서 요란한 비바람 소리에 새벽녘 잠이 깼다. 조갈이 나서 일어난 김에 일찍 하루를 시작해볼까 하고 세수를 했다. 조금 열려있던 화장실 창문 틈으로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세찬 빗소리를 뚫고, 오늘도 여전히 새가 울었다. 아니 새가 우짖고 있었다. 비가와도 새는 울었다. 거센 비바람도 그저 삶의 한 부분이라는 듯,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세차게 울었다.
매일 새벽 하도 시끄럽게 우는 통에 잠을 깨우는 불청객 정도로 여겼던 그 소리가 그날은 나를 위로했다. 험한 비바람 속에서도 목소리를 내는 한 존재가 나를 깊이도 위로했다. 외국어로 살아나가는 일상 속에서 무시에는 기를 쓰고 맞받아치곤 하는데, 도리어 투명 인간이 된 것 같은 무관심에는 어딘지 모르게 위축되고, ‘어차피 말해도 안 들을 테니까’ 하며 지나치던 침묵의 순간들이 앙금으로 남아 있던 나. 나보다 여리게 느껴졌던 그 존재가 세찬 풍파 속에서도 여전히 우렁차게 목소리를 냈을 때, 그때 나는 세상은 이렇게 사는 거라고, 삶의 조류가 나를 덮칠 때도 목소리를 내는 거라고, 그렇게 위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