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뉴질랜드에 산다.
겨울은 아쉬움과 새로움의 계절이라는 것이 내가 30년이 넘게 체득한 사실이었는데, 지구 반대편으로 오니(정확히는 아래로) 여름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연말이 여름인 건 생전 처음 있는 일이라, 별 느낌 없이 어영부영 지나갔는데. 남들이 만물의 소생을 느끼는(독일, 북유럽 제외) 봄을 맞이하는 이때 문득 내가 저버리는 계절(fall)에 성큼 다가서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사무치게 다가온다.
인간의 경험이란 이렇듯 한없이 상대적이고 환경에 사로잡힌 것들이 대부분이라, 오늘도 내가 우물 안에 개구리구나를 느끼는 하루였지만. 연말과 연초를 새파란 하늘과 청량한 여름과 지내는 것도, 벚꽃이 필 때 낙엽을 보는 것도 생각보다 기분이 좋은 일이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서로
“오늘 너무 덥다.”
“추운데 뭔 소리?”
“아니다 덥다.”
이렇게 설왕설래하며 장난을 치지만, 무조건 내가 기준이다, 내가 맞다는 자세를 버리면 겨울과 여름, 가을과 봄을 모두 동시에 가질 수 있음이 세상 이치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