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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머핀 Apr 09. 2021

32살의 정의

정의란 무엇인가. 이와 같은 제목의 강연과 그 내용을 담은 책이 유행할 때, 나는 사람들이 그렇게 정의에 관심이 많은 줄 처음 알았다. 정의같은 것은 MBTI가 보증하는 가장 생각이 많은 유형인 나 같은 사람에게나 중요한 것이고, 남들에게 말하면 배부른 소리쯤으로 치부되곤 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사람들은 마음속에서 정의를 갈구하고 있었나 보다. 


 그렇다면 과연 삶에서 정의는 도대체 무엇일까? 거창한 도덕적, 법적 정의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삶에서 맞닥뜨리는 정의(justice, 正義)는 사실 사물의 의미들을 정하는 작은 정의(definition, 定義)들의 모임이 아닐까. 옳음을 정하는 것이 바른 의의를 찾는 길이니까. 물론 한 번 정한 정의를 바꾸지 않고 고수하는 것은 자칫 ‘꼰대’가 되기 쉽다. 삶을 살다 보면 하나의 개념을 완전히 거꾸로 정의해야 하는 순간도 반드시 온다. 그럼에도 우리는 작은 정의들을 꾸준히 정해 나가야 한다. 


 햇수로 32년째,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런 어중간한 길이의 삶 속에서 내가 본 정의라는 것은 삶의 모양 같은 것이었다. 정의가 없는 삶은 모양이 없었다. 살면서 맞이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 속에서 정의라는 것은 나를 잃어버리지 않게, 잊어버리지 않게 무게추처럼 삶을 지키고 선다. 그런 삶들은 작든, 크든, 화려하든, 단조롭든 모두 모양이 있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내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가느냐보다 어떻게 버티느냐가 더 당면한 과제인 보잘것없는 삶이지만, 작지만 빛나고, 오래도록 울림을 주는 삶을 꿈꾸며, 오늘도 나는 나의 노트의 사소하고 작은 정의들을 채워나간다. 삶의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이익에 취해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내가 서 있는 작은 대지를 잃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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