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榮華): 늙음에 관하여

by 김머핀



30대를 넘고 보니 슬슬 몸이 20대의 그것과 달라지고 모험보다는 안정을 추구하게 된다(물론 나도 비교적 젊은 사람이라 정말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 보면 어이가 없다고 혀를 차시겠지만) 그러나 마음만은 늘 20대 초반에 그것이기에, 아직도 내 머리에는 어리고 푸른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문득 ‘내가 그것을 하기에 적절한 나이인가’라는 생각이 든다거나, 진짜 어리고 푸른 사람들의 나와 결이 다른 생각을 보고 들을 때마다 격세지감을 느끼며 아, 내 마음도 좀 나이를 먹었구나 체감하곤 한다. 그러면서 나이는 만 나이로 세야지 하며 은근슬쩍 한 두 살씩 깎으면서 음, 아니야 아직 괜찮아하면서 조삼모사의 원숭이들 같은 나를 발견하곤 한다.


중3 때 같은 학년에 한 살 더 많은 복학생 언니가 있었다. 그 언니는 꿈이 뭐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저요? 멋진 할머니가 되는 거요. 가죽재킷 입어도 이상하지 않은 할머니가 되는 거요”라고 대답했을 때, 나는 그 생경한 대답이 기이하고 매력적이어서 며칠 동안 그 대답을 곱씹었다. 처음 현미밥을 먹었던 그때처럼 천천히도 씹어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아, 멋진 꿈이야.”라고 생각했다.


나이 먹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어제보다 더 좋은 점을 찾고, 나보다 더 젊은 이들의 푸름을 풋내 나는 것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 불의에 품위 있게 맞설 수 있는 힘을 쌓아 가는 것. 따뜻한 사람이 되는 것. 누군가의 기쁨을 달려 나가 같이 기뻐해 주고, 누군가의 슬픔을 등 뒤에서 아파해주는 것. 말할 때와 그러지 않아야 할 때를 구분할 줄 아는 것.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할 줄 아는 것. 상처에 꼭 알맞은 약을 찾아 얼른 바를 수 있을 만큼 마음이 숙련되는 것. 몸이 여유로운 시간에 마음도 같이 여유로울 수 있도록 연습하는 것.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고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은 삶을 사는 것. 요새 인기 있는 책의 제목처럼, 평범하지 않아도 멋진 그런 할머니가 되는 것.


아직 이루어야 할 꿈이 이렇게나 많아서 내 인생의 꽃은 아마도 평생 지지 않을 것 같다. 꿈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꽃을 피울 수 있으며, 꿈이 없는 사람도 언제나 인생이라는 잎사귀의 색을 바꿀 수 있다. 사람을 꽃에 비유하며 꺾이네 마네 하는 사람들의 말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 우리 삶은 움트고 꽃 피우고 열매 맺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늙는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누구나 늙지만, 아무나 늙음을 받아들이고 제 것으로 만들지는 못한다. 요새 “밀라논나”라는 유튜버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늙는다는 것은 그것을 제대로 받아들인 자에게만 제 영화로움을 보여준다고.

청춘은 찬란하나, 노년은 영화롭다. 노인의 아픈 몸은 닳아 가는 것이 아니라 귀해지는 것이며, 대단한 업적이 없더라도 이미 누군가에게 그 이름이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榮華): 몸이 귀하게 되어 이름이 세상에 빛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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