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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머핀 Jul 28. 2020

영화(榮華): 늙음에 관하여



 30대를 넘고 보니 슬슬 몸이  20대의 그것과 달라지고 모험보다는 안정을 추구하게 된다(물론 나도 비교적 젊은 사람이라 정말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 보면 어이가 없다고 혀를 차시겠지만) 그러나 마음만은 늘 20대 초반에 그것이기에, 아직도 내 머리에는 어리고 푸른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문득 ‘내가 그것을 하기에 적절한 나이인가’라는 생각이 든다거나, 진짜 어리고 푸른 사람들의 나와 결이 다른 생각을 보고 들을 때마다 격세지감을 느끼며 아, 내 마음도 좀 나이를 먹었구나 체감하곤 한다. 그러면서 나이는 만 나이로 세야지 하며 은근슬쩍 한 두 살씩 깎으면서 음, 아니야 아직 괜찮아하면서 조삼모사의 원숭이들 같은 나를 발견하곤 한다.


 중3 때 같은 학년에 한 살 더 많은 복학생 언니가 있었다. 그 언니는 꿈이 뭐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저요? 멋진 할머니가 되는 거요. 가죽재킷 입어도 이상하지 않은 할머니가 되는 거요”라고 대답했을 때, 나는 그 생경한 대답이 기이하고 매력적이어서 며칠 동안 그 대답을 곱씹었다. 처음 현미밥을 먹었던 그때처럼 천천히도 씹어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아, 멋진 꿈이야.”라고 생각했다.


 나이 먹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어제보다 더 좋은 점을 찾고, 나보다 더 젊은 이들의 푸름을 풋내 나는 것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 불의에 품위 있게 맞설 수 있는 힘을 쌓아 가는 것. 따뜻한 사람이 되는 것. 누군가의 기쁨을 달려 나가 같이 기뻐해 주고, 누군가의 슬픔을 등 뒤에서 아파해주는 것. 말할 때와 그러지 않아야 할 때를 구분할 줄 아는 것.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할 줄 아는 것. 상처에 꼭 알맞은 약을 찾아 얼른 바를 수 있을 만큼 마음이 숙련되는 것. 몸이 여유로운 시간에 마음도 같이 여유로울 수 있도록 연습하는 것.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고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은 삶을 사는 것. 요새 인기 있는 책의 제목처럼, 평범하지 않아도 멋진 그런 할머니가 되는 것.


 아직 이루어야 할 꿈이 이렇게나 많아서 내 인생의 꽃은 아마도 평생 지지 않을 것 같다. 꿈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꽃을 피울 수 있으며, 꿈이 없는 사람도 언제나 인생이라는 잎사귀의 색을 바꿀 수 있다. 사람을 꽃에 비유하며 꺾이네 마네 하는 사람들의 말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 우리 삶은 움트고 꽃 피우고 열매 맺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늙는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누구나 늙지만, 아무나 늙음을 받아들이고 제 것으로 만들지는 못한다. 요새 “밀라논나”라는 유튜버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늙는다는 것은 그것을 제대로 받아들인 자에게만 제 영화로움을 보여준다고.

 청춘은 찬란하나, 노년은 영화롭다. 노인의 아픈 몸은 닳아 가는 것이 아니라 귀해지는 것이며, 대단한 업적이 없더라도 이미 누군가에게 그 이름이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榮華): 몸이 귀하게 되어 이름이 세상에 빛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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