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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머핀 Jun 07. 2020

애지욕기생: 거리에 관하여

 아빠가 아프다. 가족이 아프다는 것은 삶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겪어도 겪어도 변함이 없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없어 더 마음을 졸였다.


 사람 사이에는 꼭 적당한 거리가 있는 거 같다고 쓴 적이 있다. 너와는 얼마큼, 너와는 이만큼. 하지만 내가 설정한 거리와 상대방이 설정한 거리가 다를 때 서운하거나 부담스러운 상황이 생겨난다. 이런 심리적인 거리는 물리적인 거리와는 상관이 없다. 멀리 있어도 늘 내 옆에 있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고, 늘 내 옆자리에 앉는 사람이지만 한 없이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심리적 거리에 의거하여 타인에게 관심과 수고, 노력을 분배한다. 김양과는 30cm, 이양과는 1m, 박 군과는 2m. 그리고 내가 설정한 이 심리적 거리와 내가 어려울 때 그들이 나에게 달려오는 속도가 비례할 것이라고 생각한 채 살아간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도 않더라. 시간이 지나고 어려움이 나를 덮쳐올 때, 내가 설정한 거리와 실제로 나에게 가장 먼저 도움을 줄 수 있는 거리에 차이가 있을 때가 있다. 내가 가깝다고 생각한 네가 형식적인 겉치레만 하고 곤란한듯 사라져 버려 아플 때도 있고, 내 마음속에서는 저 멀리 있던 너였는데, 너에게 나는 꽤나 가까웠던 존재였고, 그래서 그 누구보다 먼저 달려와줘서 예상치 못한 도움을 주고 진심어린 걱정을 해주어 사무치게 고마울 때가 있다.


 사람이 다 그런가 보다. 내가 설정한 거리와 상대방이 설정한 거리가 동일하면 상처 받을 일은 없겠지만, 동시에 쓰러질 것 같은 때, 무너질 것 같은 때, 세상 밖으로 튀어나가는 나를 낚아채 주는 뜻하지 않은 행운 같은 위로를 받을 기회도 없을 것이다. 그런 위로가, 애정이, 그 어떤 힘보다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을 나는 요즘 느낀다.

‘애지욕기생(愛之欲基生)’,
사랑은 그 사람을 살게끔 하는 것이다.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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