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떻게 죽고 싶지?

기품과 성숙함을 가진 죽음에 대하여

by 야생

낙엽만큼의 기품과 성숙함을 가지고 죽음에 임하고 싶다!


낙엽들은 자신의 무덤에 편히 쉬기 전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흩날렸던가!

그처럼 높이 치솟았던 그들이건만

얼마나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흙으로 돌아가는가!

나무 아래에 묻혀 썩어가며

새로운 세대의 동족을 위하여

얼마나 기꺼이 자양분을 제공하는가!


이 낙엽들은 우리 인간에게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인간은 자신의 불멸성을 자랑하지만

낙엽만큼의 기품과 성숙함을 가지고

죽음에 임할 날이 과연 언제쯤 올 것인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 <가을의 빛깔들> 중에서


지난 8월 여름, 남편의 회사에서 주는 혜택 아닌 혜택으로 건강검진을 받았다. 매년 이렇게 받을 필요가 있을까, 코로나 시국에 꼭 받아야 하는가, 마땅찮은 마음이었다. 그 결과도 마땅찮기는 마찬가지였다.


"복부 초음파 검사상 2.6cm 크기의 간결절이 새롭게 관찰됩니다. 정밀 진단 및 경과 관찰을 위해 소화기내과 진료를 받으십시오."


간 기능도 정상이고, 종양 표지자도 이상 무, 간결절의 모양도 악성인 것 같지 않다는 의사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정밀검사 예약을 종용하는 전화가 몇 번인가 걸려왔다. 뭐지? 이런 공세에 약간의 불안감은 있었지만, 정밀 검사를 거절했다. 이 일이 있은 후, 저절로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난 어떻게 죽기를 바라는가.



니어링 부부의 삶과 죽음


죽음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스콧 니어링(1883년~1983년)과 헬런 니어링(1904년~1995년)이다. 스콧 니어링은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반자본주의자요, 반전의 길을 걸은 사람이다. 헬런 니어링은 스콧 니어링과 함께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실천했다. 그들 부부는 중년의 나이에 화려한 문명의 중심지였던 뉴욕을 떠나 버몬트 숲으로 들어가 평생 농장을 일구며 살았다.


그들의 삶은 책으로 강연으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헬런 니어링은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헬런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으로, 헬런·스콧 니어링은 <조화로운 삶>으로 자서전적 에세이를 출간하였다.


그들의 자연주의 철학과 사상은 헨리 데이빗 소로우와 맥을 같이 한다. 스콧 니어링이야 말로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가을의 빛깔들>에서 노래한 것처럼 기품 있고 성숙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품위와 존엄이 있는 방식의 죽음을 맞았는데, 일체의 생명을 연장하려는 의학적 배려도 거부하고, 고통을 줄이려는 진통제·마취제의 도움도 물리치고, 물과 음식조차 끊고, 온전한 몸과 마음으로 100세에 죽음을 맞았다.

위키백과 출처


스콧 니어링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헬런 니어링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 잘 그려져 있다. 스콧 니어링은 자기에게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고, 천천히 곡기를 끊고, 물을 끊으며, 죽음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갔다. 그 모습은 숭고하기까지 했다. 헬런 니어링도 남편의 생명을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죽음을 자연으로 받아들였다. 그를 떠나보내는 것이 그녀의 책 제목처럼 아름다운 삶과 사랑의 결실이자 마무리였던 것이다. 나도 그들처럼 아름답게 죽을 수 있을까.



삶과 죽음을 소외시킨 문명


인간의 문명은 삶에서 죽음을 배제시킨다. 하루라도 빨리 병변을 발견하고 치료하여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을 큰 자랑거리로 삼는다. 죽음은 문명의 적이다. 그렇다면 과연 불멸성을 향해 치닫는 그 문명에 동승할 때, 인간인 우리는 행복할까.


Y라는 친구가 암 진단을 받은 지 3년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의사로부터 암이라는 검사 결과를 들었을 때, 충격이 어마어마했던 것을 기억한다. 병원의 스케줄에 따라 일련의 항암 치료, 수술, 방사선 치료, 이후 정기 검사 등등을 받는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과 불안과 두려움이 마를 날이 없었다.


부작용이라는 것이, 탈모에 손발톱 변색에 이르기까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지금도 호르몬 억제제 복용으로 억지로 갱년기 증상을 겪고 있다. 암 진단 이후 지금까지 그녀의 몸과 마음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다 헤아릴 수 없다.


암은 어디서 생겨나는 걸까. 암도 문명의 부산물이라고 하면, 너무 과한 이야기일까. 문명의 이기를 좇아 도시로 도시로 향한 결과, 사람들은 햇빛과 맑은 공기, 깨끗한 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갔다.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햇빛, 공기, 물, 이 세 가지가 아니었던가.


인간의 몸도 생물체인 것을 감안할 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도 자연이 제공하는 햇빛, 공기, 물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 자연의 혜택을 떠나 문명의 이기를 누리면 누릴수록, 우리 몸도 건강을 잃어버릴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것 아닐까.


자연과 대척점에 우뚝 서서, 불멸을 향해 달려가는 문명의 폭력성을 본다. 그것은 죽음을 적대시하고, 생물체인 우리의 삶을 파괴한다. 소로우도 니어링 부부도 진작에 문명이 주는 위험 신호를 감지했던 것일까. 그들은 자연에 귀의했다. 이것이 그들의 삶과 죽음을 기품 있고 성숙하게 이끌었던 원천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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