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밥이 큰일을 저질렀다!

화목한 가족이라는 환상이 깨진 날

by 야생

뚝딱! 나물 반찬을 식탁에 올린다. 뚝딱! 팥을 삶고 밀가루 반죽을 하여 단팥빵을 만든다. 부엌에서 그의 열정은 대단하다. 성실함 또한 못지않다. 3,4시간 운전해서 농장에 갔다 온 날도, 끼니때가 되면 잠시 앉아있을 틈도 없이, 팔뚝을 척척 걷어부친다. 한 번도 사 먹자느니 간단하게 때우자느니, 꾀를 부리지도 않는 것이 감탄스러울 지경었는데.


그의 밥 짓기에 사달이 났다.



에피소드 1


토요일 오전 동네 산에 갔다 와서, 그는 여느 때와 같이 밥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씻기 시작했다. 2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뭐해?"라는 그의 목소리가 물소리에 섞인다.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릴 때는 큰 딸이 "엄마!"라고 부르며 밥 먹으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그런데 잠시 후, 딸아이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는 왜 그렇게 짜증을 부리고 그래?"

이어서 들려오는 그의 소리,

"먹지 마!"

조금 있다 막내가,

"이것 무슨 국이야?"

"몰라!"

뭔가 불길한 조짐이다.


아니다 다를까. 나와보니 막내는 설거지를 하고, 큰딸은 눈이 벌건채로 자기 방에 들어가 있다. 식탁에는 딸애와 나의 밥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딸애를 불러 같이 밥을 먹는데, 냉이나물과 쑥국이 어찌나 맛있던지! 그가 왜, 이렇게 맛있는 밥상을 차리고 나서 화를 내며 아이들 방에 칩거했는지 나는 잘 모른다. 다만 딸아이의 말에 미루어 짐작하면 이렇다.


밥이 다 되었는데, 막내는 게임이 안 끝났다고, 나는 씻는다고 밥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화가 났다. 그래서 국그릇을 거칠게 다루다가 국이 쏟아졌다. 큰 딸은 그것에 마음이 상해 밥도 먹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 사건에 대한 딸애의 해석,

"우리 보고 눈치 보라는 얘기지."

하루아침에 그의 밥이 눈칫밥이 되었더라는.



에피소드 2


일요일 저녁이었다. 메뉴는 라면 사리를 넣은 떡볶이! 물론 그의 요리다. 옆집에 놀러 간 막내는, 집에 빨리 오라는 전갈을 무시한 채, 아직 오지 않는다. 우리는 먼저 먹기 시작했다. 15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 막내가 괘씸해지기 시작했다.


거기다 떡볶이가 너무 맛있는 게 아닌가. 평소 같았으면 막내의 것을 따로 덜어놓고 먹었을 텐데. 우리는 늦게 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따끔한 맛을 보여주자는데 무언의 합의를 한 듯했다. 마지막 남은 것은 막내에게 간에 기별도 안 갈 만큼.


그 벌어진 상황에 막내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별로 배고프지 않다는 식으로 오히려 우리를 무안하게 만들었다. 그런 막내가 짠했는지, 딸아이는 라면을 끓여주겠다며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남편과 나도 어느새 엉덩이를 떼고 라면을 막내 앞에 대령했더라는.



가족이란 무엇일까?


사실 나도 밥이 다 되었는데 식구들이 미적미적 나타나지 않을 때, 심기가 불편해진다. 아이들과 가족을 이루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제시간에 함께 밥 먹는 일이었다. 그래서 정해진 시간을 넘기지 않고 밥상을 차렸다.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들어가 야간 자습을 하고, 남편의 직장이 멀어지면서 그렇게 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나는 그 예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밥상에서 단란하게 밥을 먹는 것이 화목한 가족의 상징인 것처럼 말이다. 이젠 그 예식을 버려야겠다. 화목한 가족을 연기할 때, 개인의 자유를 구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모주 아키코는 <가족이라는 병>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가족을 선택하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으앙, 으앙 첫울음을 울었을 때 이미 틀은 정해져 있다. 그 틀 안에서 가족을 연기하는 것이다.아버지, 어머니, 자식이라는 역할을.무엇이든 용서되는 아름다운 공간에서.

그러나 그 안에서 개인은 매몰되고, 가족이라는 거대한 생물이 숨을 얻는다. 그러나 단란하고 화목한 가족이라는 환상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인의 인격을 되찾는 것, 그것이 진정 가족이 무엇인지를 아는 지름길이 아닐까 한다.



화목한 가족의 환상 앞에 개인의 인격이 사라질지도


우리 집 아이들이 으앙! 으앙! 태어나보니, 엄마는 가족이 한 자리에서 밥 먹는 것을 의식처럼 행하는 별난 사람이다. 식사 시간에 조금이라도 늦게 나타나면 엄마의 심기가 불편해진다. 아빠도. 아직 배고프지 않아도, 하던 일이 채 끝나지 않아도, '밥 먹어!'라는 소리가 들리면 재깍 밥상머리에 앉아야 한다.


배고플 때 먹을 자유도, 하던 일을 끝마치고 먹을 자유도 없다. 일사불란하게 가족이라는 생물체 안에 자신을 끼워 맞춰야 한다. 어느새 화목한 가족이라는 엄마의 환상 앞에 나의 인격이 사라진다.


이게 우리 집 애들의 현주소라니! 20 몇 년간 밥상을 차리면서도 깨닫지 못했는데. 남편의 눈칫밥이 큰 일을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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