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인질이다?

살아남기 위해 한 남자에게 올인하는 여자들

by 야생

스톡홀름 증후군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는가.


이것은 1973년 스톡홀름의 은행 강도 사건에서 유래된 말이다. 강도들은 6일 동안 경찰들과 대치하며 여자 3명과 남자 1명을 인질로 삼는다. 그들은 인질들의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을 쥐고 경찰과 협상을 벌이면서, 인질들을 거칠게 다루기도 하지만 친절을 베풀기도 한다.


인질들은 인질범들의 작은 호의에 감동하고, 그들에게 유대감을 형성하기까지 하는데. 반면 자기들을 구출하려고 물심양면 노력하는 경찰들에게는 적대감을 나타낸다. 자신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라고 여기면서. 참 이해하기 어려운 당혹스러운 사건이다. 나중에 인질과 인질범 두 쌍이 결혼을 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런이 스톡홀름 강도 사건에서만 일어난 특이한 현상은 아니라고 한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종종 나타난다것이다. 이름하여 스톡홀름 증후군이다. 피해자가 살아남기 위해 생살여탈권을 가진 가해자에게 동조하는 현상.


스톡홀름 증후군은 여남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디 그레이엄 공저 <여자는 인질이다>에서 여자는 인질이고, 남자는 인질범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참 받아들이기 힘들다. 여남 관계를 로맨스로만 해석하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나도 처음엔 받아들이기가 무척 어려웠다. 여자인 내가 남자의 인질이라는 것은 실로 날벼락같은 선언이었다. 나의 삶과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인질이다>를 두 번이나 읽고 말았다. 그 두꺼운 책을 말이다. 말도 안 된다고 하면서도 무언가에 홀린 듯. 아, 끝내는 인정하게 되더라. 여자는 인질이다! 나도 인질이다! 그럴 때 탈출구가 보이더라. 여자로 살아온 나의 인생이 해석되더라.



아, 여자는 인질이구나!


요즘 브런치 작가의 글을 찾아 읽고 있다. 혼자 사는 여성 작가의 이야기였다. 1층에 살고 있는 집 싱크대 배수구가 역류하여 배관공들을 불렀단다. 생각했던 만큼 일의 진척 없이, 시간이 흘러갔다고 한다.

그때 한 배관공이 다짜고짜,

"사모님, 짜장면 먹고 싶지 않아요?"

묻더란다. 그녀는 사모님이라는 호칭부터 거슬렸지만. '사달라는 얘기야 뭐야' 속으로 중얼거리며

"아니요, 먹고 싶지 않은데요."라고 대답했단다.

그랬더니 돌연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

"X발, 오늘 하루 똥 밟았네!"

와, 소름 돋지 않는가. 덜컥 두려움이 생기더란다. 그래서 짜장면을 사 먹이고 일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엄마에게 했더니 그러더란다.

"네가 남편이 없어서 그래."


또 이런 일도 있었다. 나의 딸이 2월 말 독립을 했다. 3월 초에 인터넷 설치를 위해 기사가 방문한다는 말을 듣고, 덜컥 걱정이 앞섰다. 불안한 거다. 딸아이 혼자 있는 좁은 방에 남자 인터넷 기사가 방문한다는 것이. 영 찜찜하다. 성폭력 사건이 끊이지 않는 세상이기 때문에. 그 누군가에게 일어난 일이 나에게만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는 한, 두려움 없이 의심 없이 경계하지 않고 남자 기사를 맞이할 수 있는 여자가 과연 있을까.


혼자 있지 말고 여자 동기 누군가를 불러서 같이 있으라고 했다. 이런 말을 하면서도 참 씁쓸하더라. 딸아이가 지구의 절반인 남자를 이런 눈으로 바라보며, 위축된 삶을 살 것을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순진하게 무방비상태로 있으라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남자들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 세 남자도 억울해한다. 자기들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만든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게 현실이다. 성범죄가 근절되지 않는 한, 여자들은 남자들을 무서워하고, 남자들은 잠재적 성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으면, 여자들도 남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남자들도 억울할 일 없다. 나는 남편에게 더 실감 있게 얘기한다.


"어떤 여자가 어두운 골목길에서 당신과 마주친다면, 당신은 좋은 아저씨가 아니라 언제 강간할지 모르는 무서운 존재가 되는 거야.



살아남기 위해 한 남자에게 올인하는 여자들


여자들은 한 남자가 자기를 지켜줄 거라 믿는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결혼하면 덜 외롭고 더 안전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나의 꿈이 망상이라는 것을 일깨워준 사건이 있었다.


막내가 돌도 안 지난 무렵이었다. 명절이라 세 아이들을 데리고 시댁에 내려갔다. 저녁 즈음 툇마루에서 큰 형님이 남편에게 말했다.

"어머니랑 형님(남편 누나)이랑 찜질방에 가려고 하는데 운전해줄 수 있어요?"


부엌에서 잡채를 먹고 있는 내 귀에도 들렸다. 몸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손에는 먹다만 잡채 접시가 그대로 들린 채.


"형님이 운전해서 가시면 안 돼요? 애들 아빠는 세 애들 잠자리도 돌봐줘야 되고..."


가만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고 했는가. 그런데 그는 가만있지 않았다.


"형수님, 제가 운전해서 갈까요?"


지금 생각해도 분이 풀리지 않는 남편의 반응이다. 아내를 나쁜 년 만드는 데, 타고난 재능이라도 있는 듯. 그때 알았다. 남편이 절대 나의 방패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한 여자가 위험한 세상을 피해 한 남자의 둥지를 찾는다. 어느 순간 그도 여자의 방패가 되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환멸을 느끼고 떠나고 싶다. 그러나 생각에 머물 뿐이다. 이미 엉켜있는 실타래와 같은 삶을 청산하고 떠나는 것은 쉽지 않다. 밖의 세상도 녹록지 않고. 이렇게 여자들은 혹독한 현실 앞에서 남자들의 인질이 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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