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 서 평

지레짐작으로 불행하지 말 것

휴가 계획 없는 여름

by MJing

학교가 많은 베트남에서, 대부분의 친구들이 선생님이다 보면 6월 초 쯤 부터는 휴가계획을 지겹도록 듣게 된다. 단순히 외국인이서어라기 보단 여름은 으레 여행의 계절이니까. 교단에 있는 친구들이 아니어도 으레 잠깐이라도 여행을 가는 것이 대부분이리라. 그런데 난 휴가 계획이 없다. 6월은 신규 캠페인으로 출장에 미팅에 뭐가 많고, 그런 것들이 조금 끝나는 시점엔 떠나는 것 보다는 고요히 정리해야 하는 것이 잘 맞는 나를 알아서다. 이유있는 무계획이었건만, 몇주를 남의 휴가 계획 듣다보면 막연한 질투가 울컥 치솟는 것이다.

막연한 질투는 이유도 근거도 없이 하루를 망친다. 학교는 방학이 있다 해도 여긴 왜 공휴일도 이렇게 없어? 분명 똑같은 일주일인데 괜시리 월요일 발걸음은 더 무겁고 금요일 퇴근길은 휴가가야 하나 생각뿐이다. 쉼에 대한 근거 없는 욕망을 들먹이다 이런 마음을 안고 사는게 나한테 좋을게 뭐야, 하는 마음으로 책상에 앉아 나의 여름에 대해 끄적여보았다.


여름 한자락에 쉬어간다면 뭘 하고 싶을까? 여행을 급하게 가고 싶지는 않다. 신경쓸게 많이 남아있고 이런 상황에 혼자 여행을 가 이것 저것 더 신경쓰고 싶지 않다. 동남아사는 김에 여름 과일을 실컷 먹고, 풀장에 앉아 뜨끈한 해를 받는 하루는 즐거울 것이다. 후끈한 더위에서 더 더운 운동을 한바탕 하는 것도 꽤나 고통스러운 즐거움이다. 땀을 흠뻑내고 차가운 물에 샤워를 하고, 팩을 하고 에어컨을 쐬는 것, 여름의 사치지. 늘상 해보고 싶었던 원데이클래스나, 동물보호소 자원봉사도 좀 더 가보고 싶다. 한구석에 쳐박혀있는 피아노도 치며, 한 곡 정도는 외워보는 것 어떨까 하며 리스트를 적는데, 이건 휴가가 필요한 게 아니라 일상의 재정리가 필요한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5월, 6월 들어 약속이 과하게 많아지고, 일상의 루틴들이 뒤죽박죽이었다. 떠나는 친구와 밥한끼 할 수 없으니 하루, 친구들 몇주간 보지 못할테니 너 하루 쟤 하루 하다 몇일. 일상의 기둥들이 무너지면 작은 파도에도 마음은 요동치기 마련이라, 마고가 밥을 안먹는 것 같아 동물병원도 다녀오고 없는 시간을 쪼개 강의를 듣느라 잠드는 시간도 늦어졌다. 이렇게 자꾸만 나의 순간들이 없어지면, 내 인생인데 내가 주연이라는 사실을 자꾸 잊는다. 과일은 월요일에도 먹을 수 있고, 더위에 운동하는 것은 오늘도 했다. 원데이클래스를 2주 14일 내내 들응ㄹ 것도 아니고 자원 봉사도 한달 내내 할 것이 아니라면 주말이 짧을 이유가 뭐냐. 적어보면 별것도 아닌데 몇일이나 마음이 복잡했던 것을 보면, 지레짐작으로 불행하다 괜히 비행기표를 사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남의 여름휴가 계획을 들으며 질투를 할 때엔 내 마음이 간장종지만해서 그런가, 싶었지만, 지레짐작으로 마음에 파도를 칠 땐 작은 요동으로도 큰 파도가 일어난다. 특히 "나한테는 없다"라는 마음은 더 그렇다. 그 마음은 한없이 깊고 넓어서 빠져 허우적대기 제격이다. 그런데 그 파도 속에서 가짜선택을 하면 다시 나의 중심을 잃는 악순환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것이라도, 남의 하이라이트와 나의 초점 안맞는 카메라롤을 비교하지 않아야지.


그렇게 여름이 시작되고, 아주, 아주 즐거운 순간들을 보내고 있다. 오랜만에 사먹은 망고스틴은 아주 달았고, 땡볕 더위의 운동은 고되게 즐거웠다. 오랜기간 생각만 하던 동물보호소 봉사활동은 마음을 가득 채웠다. 나를 채워야지, 그 비교의 바다에 자꾸 공연한 합리화를 앵커링이랍시고 던지지 말아야지. 결국 나에게 필요했던 건, 나의 인생 속 나라는 주연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초점이 맞는 순간 많은 것들은 중심을 찾는다. 아, 좋은 여름이여!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완벽한 주말을 보내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