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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나 Apr 05. 2021

첫 스타트업 퇴사 후기

도비는 잠깐 자유가 되었어요!

퇴사 당일 아침.

갑자기 사람이 변하면 죽는 거랬다.


죽지 않기 위해 나는 마지막날까지 5분을 지각했다. 사무실까지 가면 10분 넘게 늦을 것 같아서 근처 카페에서 랩탑을 켰다. 다행히 첫 미팅은 미국에 있는 친한 개발자와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한 미팅이었다. 이전 미팅이 좀 늦어진다고 미리 연락을 해두었다. 물론 그건 30분에 탔어야했던 2호선 내선 순환 열차와의 약속이었다.


“너랑 새로운 환경에서 이야기하려고 카페로 왔어”라고 미팅을 시작했는데, 믿었는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근황 이야기를 하면서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교환했고, 곧이어 카카오톡 아이디를 교환함으로써 우리는 동료를 넘어 “친구”가 되었음을 공표했다.


“Now we’re KAKAO friends, so we’re officially friends!“

“우린 이제 카카오 친구니까, 진짜 친구인거야!”


나는 맞다고 이야기하며 웃었다. 그녀가 한국에 오고, 내가 LA에 가면 우린 다시 만나게 될 거다. 일단 한국에서 5월에 만나기로 했다.


마지막 출근길 안녕?

회사로 들어와 서랍을 비우고 파일들을 정리했다. 명함들은 리멤버에 저장해놓고 실물 명함은 잘 처리했다. 좋아하는 시 구절 중에 가방이 무거운 사람은 그만큼의 미련을 짊어지고 다니는 거란 구절이 있다. 그렇다면 내 서랍은 미련 덩어리였다. 2년 전에 진행한 프로젝트도 나오고 1년 전에 진행한 프로젝트도 나왔다. 와, 내가 이걸 다 버리지 않고 꼭 안고 있었구나.


그리고 내 명함이 세 통이나 남아있었다. 이걸 다 어쩐담. 일단 집으로 다 가져왔는데, 아마 이사할 때 버릴 것 같다. 예전 명함은 1장이면 충분하다.


샤라웃 투 갱냄스테이션(앤선릉 앤삼성- 이전 오피스들)


점심을 먹고 여유롭게 회사로 돌아왔다. 다시 커피를 마시러 나갔다가 돌아왔다. 날씨가 참 좋은 계절이었다. 딱 좋은 계절에 퇴사한다는 인삿말을 여러 번 들을 만했다.


전날 보냈던 굿바이 이메일에 회신을 다 했는지 확인했다. 개인 메일로 답장을 보내준 외국 동료들의 다정한 답장을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외국인들의 표현은 우리의 담백한 표현보다는 한 발 나아간 구석이 있어서 어떻게 해석해야하는지 곤란할 때가 있다.


It was great working with you라고 하면 정말 그레잇-했던 건지 그냥 굿바이 인사인지 잘 모르겠지만 굳-이 답장하지 않아도 되는 메일에 답장을 해주었다는 면에서 전자에 힘을 실어보았다. 나도 그들과 일하는 것이 좋았다.


LA에 조금만 더 있어봐, 내가 몇 년 후에 갈게. 그 땐 같은 오피스에서 일하자.



오후 다섯 시. 인수인계 문서에 빠진 것이 있는지 확인하며 슬랙에 회신을 하고 있었다.

파파팍-


시스템이 꺼졌다. 슬랙, 크롬 창, 기타 모든 로그인.


요즘 세상에서는 책상을 빼지 않고 계정을 정지시켜요


다시 로그인을 해보려고 하자 “Your account is suspended”라는 빨간 경고창이 떴다. 이렇게 나는 5시 5분에 공식적으로 계정이 정리되면서 퇴사 처리가 되었다. 갑작스러운 로그아웃에 당황했지만 이를 핑계 삼아 마지막으로 인사드릴 분들이 계신 사무실에 돌아다녔다.


“저 계정이 정지되어서 진짜 나가야할 것 같아요 하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직장에서 제일 친했던 동료가 꽃을 줬고, 팀장님과 함께 밖까지 바래다주었다. 가는 길에 사진도 찍어줬다. 그 동료 언니는 내가 이 회사에서 만난 제일 소중하고 믿음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유일하게 퇴사하면서 나를 울리는 데에 성공한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 언젠가 꼭 싱가폴에 같이 가서 같이 전자담배를 피워요.


퇴사일이 목요일이라서 굿바이 식사는 다음 날 하기로 했다. 식당은 번잡스러우니 회의실에서 간단히 피자를 시켜먹기로 해서 회사로 갔다. 어색하게 나갔던 동료는 꽃 한바구니를 들고 등장했다. 노랑색, 하늘색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이었다. 지금도 화병에 잘 꽂혀있다.


오른쪽 박스는 양말인데 유아동용을 받아버렸다(...)


“이것두 선물이에요”


담배갑 케이스처럼 보이는 상자를 받았다.


“뭔데요 이게?”

“대일밴드에요. 열어보세요.”


대일밴드? 무슨 의미지? 하고 열었는데, 사람들이 각자 작은 명함 사이즈 카드에 굿바이 멘트를 적어준 롤링페이퍼였다. 우리 팀부터 다른 팀까지 골고루. 게다가 카드는 주문제작이었다. “말없이 고이보내드린다”는 의미로 진달래꽃이 그려진. 뒷면에는 “ㅇㅇ님 꽃길만 걸으세요”라는 문구도 있다.


사실 전에 디자이너님께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저 퇴사할 때 다른 건 몰라도 롤링페이퍼는 꼭 해주세요”


뻔뻔하지만 그것도 3주도 넘게 지난 이야기고, 일이 워낙 많으니 잊어버리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자체 제작까지 해서 주실 줄이야. 제가 괜한 말을 해서, 일을 만들어드렸습니다... 하지만 평생 간직할게요 감사합니다.


첫 오피스는 위워크였고 첫 날 핸드북을 받았다


평균 근속 기간이 1년이 안되는 못되고 거친 회사에서 참 오래 잘 버텼다. 첫 회사여서 이렇게 잘 보냈던 것 같다. 매순간 1000미터 달리기 같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드라마 블랙독 대사처럼 인생이 놀이터인 사람은 없으니까.


그치만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일에서 좋은 점을 찾는 편이기는 하지만, 정말 의미있는 선택이었다. 회사가 30명일 때부터 150명이 넘어가는 시점까지 볼 수 있었고, 전혀 새로운 필드에 도전해볼 수 있게 되었다. 글로벌 비즈니스를 맛볼 수 있었고, 영어가 전보다 훨씬 늘었다.


아직까지 업무 문의 전화는 한 번도 오지 않았다. 몇 통 정도는 각오했다. 오지 않는다면 잘 마무리했다는 의미일테니 다행일 것이다.




이제 다음 챕터로 넘어갈 차례다.


한 달 정도 쉬면서 길게 여행도 다녀오고, 운전면허도 딸 것이다. 책도 몇 권 읽고 글도 쓰고. 하지만 누워있다가 한 달이 갈 것이란 건 대강은 알지만...


무척 신난 예습복습씨와 킴나

일단 내일 출근하지 않는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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