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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나 May 14. 2018

한낮에 뜬 비행기

현재를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인천에 살면 비행기를 많이 본다. 이건 사실이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렇다. 영종도에서 고등학교를 보냈던 3년동안 수업 시간을 가장 효과적으로 무료하게 보내는 방법은 거의 3-4분마다 날아오르고 착륙하는 비행기를 보는 일이었다. 하염없이 비행기를 바라보며 궤적을 눈으로 쫓았다. 그 비행기 안에 타고 싶다는 생각, 혹은 어디로 갈지에 대한 궁금증 따위도 없이 그냥 눈으로 비행기를 따라갔다.


영종도가 아닌 때에는 밤에 종종 보곤 했다. 미세먼지 혹은 구름에 가려 희미한 별빛과 달리 맹렬한 존재감을 내뿜으며 움직이는 빛은 주의를 집중시키기 충분했다. 내륙으로 날아가는 비행기도 있고 바다 쪽으로 날아가는 비행기도 있었다. 바다쪽으로 오는 비행기에 대고는 "헬조선에 돌아온 걸 환영한다"든지 "조선에 당도한 것을 환영한다, 낯선 이여"처럼 어렴풋이 어디서 본 게임 대사도 말해봤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한낮에 비행기를 봤다. 영종도처럼 공항 근처에서 본 것이 아니라 인천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날씨가 무척 좋은 날이어다. 하늘을 찾아 높이 높이 시선을 올리니 비행기 한 대가 지나갔다. 낮에 본 비행기는 오랜만이다. 까만 밤에는 반짝이는 비행기가 눈에 띄기 마련이지만 하늘을 쳐다볼 일이 잘 없는 낮에는, 이미 밝은 오후에는 비행기 불빛 따위가 보이지 않으니까.


암스테르담에서의 4개월은 조금의 과장도 보태지 않고 트램보다 비행기를 많이 타던 시절이었다. 대중교통이 열악해서 주로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다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열심히 여행을 다녔다. 학기 중에는 스위스, 프랑스, 아일랜드, 독일에 다녀왔다.


비행기는 새삼 참 빨랐다. 버스 안에 앉아 있는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빠르게 지나갔다. 그래, 저정도는 되어야 11시간 안에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겠지. 나는 저렇게나 빠른 비행기를 타고 유럽을 누볐다. 참 많이 웃고 울기도 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했지만 사실 별 생각을 하지 않는 시간들이었고, 새벽 늦게까지 깨어 있었지만 충분히 잤다. 그러니까, 행복한 시간이었다.


뭘 해도 암스테르담으로 생각이 귀결된다. 앞으로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고 '지금'을 살았던 시간들이기 때문이겠지. 현재를 산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현재에 집중하다가도 내 발만 보며 걷는 사람은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애먼 방향으로 걸어갈 수도 있는 일이니까. 그리고 걷는다는 것은 결국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일이니까. 


행복했던 그 시간을 추억으로만 남기지는 않을 것이다. 언젠가 다시 암스테르담에서 살 것이고 그 곳에 관한 애정 넘치는 글을 쓸 테다. 그때까지 너무 많이 변해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다시 Van Stapele에서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몸 안쪽 깊숙한 곳까지 파고드는 듯한 초콜릿 향을 맡고 한 개를 사서, 차마 참지 못하고 서점 앞에 앉아 따끈하게 구워진 초코쿠키를 먹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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