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야_머물고 싶은 곳
추석 오전, 경복궁 나들이다. 한적한 서울 지하를 달리는 기분, 괜찮다. 여유로워 좋다. 경복궁 역에서 내리는 순간, 앗, 사람들 바글바글하다. 명절 당일에 이렇게 돌아다닌 건 참 오랜만. 파란 하늘에 기와가 걸려 있다. 음, 궁을 보러 간 건지, 사람을 보러 간 건지. 배고파하는 둘째 허기를 달래느라 서촌 초입 아무 식당 들어갔더니 너무 너무 맛 없다. 세상에, 이렇게 맛없는 피자와 파스타라니. 그래도 괜찮다. 오늘은 풍요의 아이콘, 추석날이잖아. 마음껏 관대하기로! 한복 입은 사람들 무리를 헤치고 버스를 타고 돌아온다. 광화문도,시청도, 서울역도, 참 오랜만. 서울 북쪽을 가면 이십대 추억이 몽글몽글 피어난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중얼중얼, 영락없는 옛날 사람이다. 집 앞에서 내렸다. 아, 한적함이 좋다. 골목에 사람이 없다. 추석이다.
한 숨 돌리고 숲엘 간다. 어제보다 사람들이 많다. 삼삼오오 가족이 많이 보이는 날. 숲 공기를 마음껏 마신다. 한 걸음, 한 걸음에 호흡을 싣는다. 이원규 시인은 소원을 빈다. '영원히 이대로 나는 나이기를!' 별똥별에 빌지 않아도 숲에서 나는, 이대로 내가 될 수 있다. 숲에서는 무거운 갑옷도, 거추장스러운 가면도 필요 없다. 숲에서는 흙이 된다. 숲에서는 나무가 된다. 숲에서는 하늘이 된다. 숲에서는 돌멩이가 된다. 숲에서는 내가 된다. 머물고 싶은 곳, 사랑하는 곳, 나에겐 숲이다.
별똥별과 소원
이원규
지리산에는 첫눈이 오시느라 보이지 않지만
저 눈발 속으로 별똥별이 함께 내릴 것이다
그 중에 하나쯤은
칠선계곡에 깃든 산토끼의 머리맡에도 떨어질 것이다
저를 향해 달려오는 별똥별을 보녀
산토끼 저도 한 가지 소원을 빌 것이다.
"이대로 영원히 산토끼일 수 있기를!"
이보다 더한 별똥별의 축복이 어디 있으랴.
주문처럼 일평생 외워야 할 유일한 소원.
무련, 그대도 나도 밤하늘을 보며 빌어보는가.
"영원히 이대로 나는 나이기를!"
91쪽, 김선경 엮음 <누구나 시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