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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비 Oct 07. 2023

가을 숲을 걷는 사람

박발륜_걷는 사람

박발륜_걷는 사람_달성 대구현대미술제


그토록 덥더니 이리도 갑자기 찬 바람이 분다고? 계절의 변화가 너무 급작스러워 흠칫 놀란다. 숲에도 가을이 왔다. 서늘하게 느껴지는 선선한 바람이 분다. 숲 입구, 화려하게 지저귀는 새소리를 만난다. 새들이 떼창을 한다. 새소리에 내 마음이 간질간질 청량해진다. 가을하늘만 봐도 청량한데, 새소리까지 명랑하게 내 몸을 감싼다. 맨발을 내딛는 땅이 차갑다. 차가운 흙바닥에 햇살이 가득 걸려 있다. 햇살 위 발바닥, 땅과 연결되어 눈부시다. 선선한 바람과 눈부신 햇살, 숲은 가을의 모든 것을 품고 있다. 


울적한 양말과 기운없는 신발을 내려 본다. 젖은 솜마냥 땅으로 꺼질 것 같은 몸을 세워 양말과 신발을 벗는다. 눈부신 햇빛과 차가운 흙바닥이 나를 위로한다. 괜찮다. 괜찮고말고. 흙바닥과 대화하며 걷는다. 한 걸음, 한 걸음. 못 견디도록 지루한 대화 끝에, 이건 아니지, 멈춘다. 그냥 걷자. 복잡하게 걷자. 무겁게 걷자. 숲은 그런 나를 그대로 품는다. 무거운 것도, 복잡한 것도, 숲에 다 놓고 왔다. 걸음도 마음도 홀가분해져서 내려온다. 또 올께. 숲에게 인사한다.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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