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 AI, 아이, 사랑

소설 『페인트』를 읽고...

by 만랩타임

내 아이는 감기처럼 아팠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정확히 말하면 관계가 아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요즘 애들은 원래 그래”라는 말로 넘기기엔 마음 한구석이 계속 쓰렸다.

크게 다투지도 않았고,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대화는 짧아졌고, 시선은 자주 엇갈렸다.

나는 괜찮은 척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이대로 괜찮은 걸까’라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관계를 잘해 보고 싶다는 마음만 남아 있던 그 시절,

우연히 한 권의 책을 읽게 됐다.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페인트』**였다. (이희영 / 창비 /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처음엔 조금 머뭇거렸다.

50대 어른이 청소년 소설을 읽는다는 게

괜히 어색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장을 넘기자 그런 생각은 의미가 없어졌다.

이 소설은 아이들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부모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내가 외면해 왔던 질문들을

조용히, 그러나 정확하게 건네고 있었다.


『페인트』 속 아이들은 부모를 선택한다.

부모가 아이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부모를 면접한다.

양육 계획, 감정 조절, 가치관까지 평가받는다.

비현실적인 설정 같지만,

읽을수록 마음이 불편해졌다.

나는 과연,

아이 앞에 서도 괜찮은 어른이었을까.


책을 읽다 한 장면에서 오래 멈춰 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아이가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하루 종일 말수가 적었고,

내가 건네는 질문에는 짧은 대답만 돌아왔다.

나는 점점 조급해졌고,

결국 이렇게 말해 버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좀 말해 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문 너머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는 항상 내가 왜 그런지만 알고 싶어 해.”


그 말 앞에서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날 밤, 아이는 끝내 문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거실에 혼자 앉아

내가 던진 말들을 하나씩 되짚어 보았다.


나는 이해하려고 질문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자신을 고쳐야 할 대상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때 처음 알았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설명이 아니라,

이유를 묻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일 수 있다는 것을.


『페인트』를 읽으며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아이보다 나 자신을 더 많이 보게 됐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아이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아이의 마음보다

아이의 상태를 더 살피고 있었던 건 아닐까.

잘 지내고 있는지보다,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겼던 건 아닐까.


요즘 우리는 AX 시대,

나아가 피지컬 AI 시대를 말한다.

AI는 생각을 대신하고, 몸을 대신 움직인다.

정확하고, 빠르고, 흔들리지 않는다.

어쩌면 아이를 돌보는 데 있어서도

인간보다 더 안정적인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시대에 인간 부모의 자리는 어디일까.


『페인트』를 덮으며

나는 그 답을 아주 개인적인 경험에서 찾게 됐다.

부모의 역할은 완벽함이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돌아보는 데 있다는 것.

잘못 말한 날을 기억하고,

미안함을 삼키지 않고 건네는 것.

아이의 속도를 재촉하지 못한 자신을

조용히 인정하는 용기.

그건 계산으로는 배울 수 없는 감정이다.


아이와의 관계가 힘들던 시절,

나는 늘 방법을 찾으려 했다.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더 좋은 부모가 되는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관계는 고치는 문제가 아니라

함께 지나야 할 시간에 가까웠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서툰 부모다.

가끔은 말이 앞서고,

가끔은 침묵이 늦다.

그럼에도 분명해진 것이 하나 있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아이는 완벽한 보호자가 아니라

자신을 끝까지 바라봐 주는 어른을 원한다는 것.

판단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곁에 남아 있는 존재 말이다.


피지컬 AI가 인간의 손과 발이 되는 시대,

우리는 아이에게 무엇을 건네줄 수 있을까.

정답을 알려주는 부모가 아니라,

답이 없어도 함께 머물러 줄 수 있는 부모라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오늘,

내 아이는 어떤 시선 속에서 자라고 있을까.

그리고 나는,

아이의 인생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켜 주는 사람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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