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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니모 Oct 27. 2021

기억하는 일

하루하루


어제저녁

나 : 성묘 가려고 하는데요..

30대 여성이 좋아할 꽃으로 예쁘게 만들어주세요.


한참을 꽃 포장을 하시던 꽃집 사장님이 물으셨다.


꽃집 사장님 : 혹시 어떤 관계셨는지 여쭤봐도 돼요?

나 : 친구예요.

꽃집 사장님 : 근데 많이 슬퍼 보이지 않으시네요. 오래되셨나 봐요?

나 : 네 오래되었어요.


입 밖으로 안젤라의 죽음을 말하는 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답을 하면서도 슬픔을 삼키고 또 삼키며 말한다.

슬퍼 보이지 않는다니 … 오래 대화할 수 없는 주제라 눈을 피하고 답을 짧게 하고 있는 걸.

아직도 온전히 내 몸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안에서 꾹꾹 누르고 있다.

단지 여기까지 말하는데도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제저녁

엄마 : 안젤라에게 줄 꽃은 사 왔니?

나 : 응




오늘 아침

엄마 : 중학교 때였잖아 그렇지?

나 : 아니 고등학교 2학년 때야. 중학교 3학년 때 아팠고, 고 2 때 그랬어.

그래서 나 중3 때 담임선생님이 나랑 같은 학교 넣어줬어.

만약 안젤라가 나아서 돌아온다면 내가 있는 학교로 가는 게 적응에 좋지 않을까 싶으셨데.

나 고등학교 입학식 때 중3 때 담임이 고등학교 선생님 갖다 드리라고, 안젤라 잘 부탁한다고 카스텔라 빵 같은 거 들려 보내셨어.


아무렇지 않은 척 담담하게 말해본다.

아직도 입 밖으로 온전히 꺼낼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대화의 주제로 꺼내 놓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아직도 용기가 나지 않는 이야기이다.

글로 적어 꺼내는 지금도 마음이 불편하다. 곧 지워버릴 수도 있다.




오늘 오후

안젤라의 엄마 : 와줘서 고마워, 잊지 않고 찾아줘서 고마워 니모야.

안젤라가 좋아했을 거야. 착한 니모… 고마워.


나 : 아니에요..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안젤라 부모님 앞에만 서면 그때 그 열여덟 살, 수줍음 많던 소녀처럼 그저 웃을 뿐이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사실 안젤라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은데.

아직도 나는 아무 말도 꺼내올릴 수 없다. 안젤라 부모님도 안젤라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으실 텐데.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으실 텐데.

안젤라를 보러 간 자리 하나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그곳에서 어머니는 또 눈물을 흘리셨다.

손이라도 잡아드리고 싶었는데, 내 눈물 삼키기 힘들어 그저 어깨만 한번 쓸어드릴 뿐이었다.

내가 그랬다면 나는 내 친구가 나의 엄마의 손을 잡아주길 바랬을 텐데,

어머니의 눈물이 멈추고서야 그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가장 후회되는 일이며, 앞으로도 계속 후회할 일이다.

어머니의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하고 싶은 많은 말들을 목구멍으로 다시 삼킨다.

언제쯤 말로 할 수 있을까? 올 크리스마스에는 편지라도 써봐야지 싶다.

어머니, 언제나 밝았던 안젤라 덕에 저도 행복했어요.

수줍음 많고 재미없던 저는 안젤라 주변으로 모여드는 친구들 덕에 친구도 많이 사귀었고요.

표현할 줄도 모르던 저를 대신해 바른말도 많이 해주고, 웃음도 적던 저 대신 크게 옆에서 웃어주었어요.

제가 착해서 아직 안젤라를 잊지 못한 게 아니에요.

안젤라가 착해서, 다정하고 상냥했던 친구라서 제가 아직도 잊지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 저에게 고마워하지 않으셔도 돼요.




오늘 오후

엄마 :

엄마가 어제부터 생각해봤는데, 오늘 아침 네 말을 듣고 더 그런 생각이 들더라.

사춘기 때 엄마가 가게 한다고 너한테 너무 못해준 것 같아 미안해.

고등학교 올라가서도 안젤라가 오길 너는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어릴 때 친구 잃고 얼마나 충격이 컸을까.

엄마가 미안해.


나 :

그게 왜 엄마가 미안해. 나 잘 컸어.

엄마는 가족들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면서도 나 사랑해주느라 바빴잖아.

엄마는 최선을 다했잖아.

엄마에게 원망할 것이 없어 원망해보려는 생각조차 한 적 없어.

늘 고맙기만 해.

그리고 엄마한테 사랑을 많이 받아서 사랑받는 법을 알고 있었어.

그래서 학교 다니는 내내 예쁨 받으며 잘 지냈어. 그러니 미안해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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