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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글쟁 Oct 22. 2020

큰 상장을 받은 아이

그 아이는 처음으로 글쓰기로 전교생 앞에서 상장을 받았다. 가슴이 얼마나 쿵쾅거렸는지. 이 천 명이 넘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단상 위에 오를 때 그 떨림을 아직도 있지 못한다. 하얀 종이에 자기 이름이 쓰인 상장을 받아 들고 무척 설레었다나.


그럴만했다. 그 아이의 오빠는 학교에서 알아주는 '상 많이 받는 학생'으로 유명했다. 두 살 많은 오빠의 이름이 매주 조회시간에 울려 퍼질 때마다 아이는 늘 그런 소리를 들었다. 
 "야, 너네 오빠 또 상 받네."

분명 기뻐할 일이지만 어린아이의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같은 학교를 다녔던 아이는 오빠와 비교 아닌 비교를 당하는 기분이 들었을지도 몰랐다. 이야기하자면 길지만 아이의 마음은 그러고도 남았을 테다.


아무튼 아이는 처음으로 전교생 앞에서 받은 상장을 들고 집으로 갔다. 부모님께 상장을 보여드릴 생각에 얼마나 설레었을까. 집에 가는 동안 상장이 구겨지면 안 되니 두꺼운 교과서 사이에 꼭 끼워 가방에 넣고 실내화 주머니를 달랑거리며 집으로 갔다.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아이는 하얀 상장을 엄마에게 보여주며 재잘거렸다. 
"엄마! 나 상장받았어요. 조회시간에 앞에 나가서 받았어요."
"응? 그래 잘했다."


그런데  아이는 너무 기쁜 나머지 깜빡한 게 있었다. 아이의 부모님은 이미 오빠의 수많은 상장을 받아 보았을 것이다. 아이는 엄마에게 상장을 보여주고 나서야 이윽고 깨달았다. 
'아, 내 상장은 큰 게 아니구나. 오빠는 상장도 많이 받았으니까. 내가 받은 상장보다 더 큰 대회 상당도 많았고.'


아이의 부모님은 분명히 기뻤을 것이다. 평소 별 이슈 없는 무난한 이 아이가 하나라도 잘하는 게 있구나 하고 말이다. 그날 분명 아이가 상장받아온 기념으로 통닭도 시켰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 날, 그 상장을 받아온 날. 진정한 축하를 받아본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저 오빠가 상장을 받아왔을 때와 사뭇 다른 엄마, 아빠의 얼굴만 기억에 남았으니 말이다.


왜 아이의 부모님은 아이에게 좀 더 세심한 축하를 해주지 못했을까. 아이가 바라는 것은 거창하지 않았는데. 상장과 조우할 때만이라도 약간의 오버액션을 취해주었으면 좋으련만.
하기사, 나도 부모가 되어보니 자식에게 대하는 태도가 매번 교과서처럼, 모범 답안처럼 나오지는 않으니 할 말은 없다. 부모도 사람이니까. 하지만 좀 아쉽다. 매번 상장을 받아오던 아이도 아니었고, 처음으로 그 많은 아이들 앞에서 제일 큰 상을 받았었는데.


신기하다. 아이의 기억은 왜 그것뿐일까. 그날 분명 좋은 말과 좋은 일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 사람은 정말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존재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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