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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글쟁 Oct 29. 2020

생일선물

어제는 내 생일이었다. 생일은 늘 생소하다. 지금을 살면서 음력 생일을 생일날로 알고 있다. 음력 생일은 매년 생일날이 바뀌는 데다 주민등록상의 생년월일은 또 11월 12일이다 보니, 내가 정말 그 해, 이 날 태어난 게 맞는지 궁금하다. 그러다가 정말 날 어디서 주워온 게 아닌가 싶어 곰곰이 따져보다가 엄마와 내가 너무나 닮았다는 사실에 떠올리며 따지기를 포기한다. 그렇게 알 수 없는 나의 생일이 어제였다.


365일 중 어느 한 날인 탓에 무덤덤히 어제를 맞이했지만 아이들은 그럴 수 없었다. 생일날은 케이크에다 무언가 맛있는 것들을 잔뜩 먹고 선물까지 받는 기쁜 날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엄마의 생일 며칠 전부터 이미 들떴다. 첫째는 달력의 장이 10월로 넘어가는 첫날부터 모든 달력에 엄마 생일을 써넣고 엄마의 생일을 기다렸다.


이틀 전부터 아이들은 엄마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기 바빴다. 첫째는 엄마에게 오만 원을 주겠노라며 호언장담했고, 꼼꼼한 둘째는 상자 속에 무언가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제, 부지런한 아이들은 늦잠꾸러기 엄마가 눈 뜨기를 옆에서 기다렸다. 겨우 눈을 뜬 엄마 앞에 편지와 상자를 내밀며 엄마가 기뻐하길 기다렸다.


눈을 떠도 깜깜한 정신을 차리느라 뒤척이던 나는 아이들의 선물을 하나씩 펼쳐보았다. '절 나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쓴 편지에 노오란 오만 원을 넣었다. 며칠 전부터 엄마는 단지 좀 길게 쓴 편지를 받고 싶다고 했었는데 쿨하게 한 줄을 썼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게 첫째의 스타일인 줄을 말이다.


둘째의 상자는 다채로웠다. 오빠의 장난감 상자를 탈취(?)해, 자기가 좀 아낀다 싶은 것들과 필요 없다 싶은 것들을 모두 넣어주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빈츠 과자 하나였다. 그 과자는 유치원에서 좋아하는 오빠가 자기에게 준 것을 먹지 않고 숨겨둔 것이었다. 받자마자 바로 입에 털어 넣어도 아무도 모를 터인데 둘째는 그것을 먹지 않고 엄마에게 주었다.

몇 주 전에 문경으로 나들이를 갔다 들른 식당에서 가져온 사탕 두 알, 늘 씹고 싶은 껌 하나, 연필, 비즈 장난감, 토끼 수건, 바닷가에서 주운 조개, 수도요금 용지에서 잘라낸 엄마까투리, 만 이천 원 돈은 오빠가 엄마에게 돈을 준다고 하니 자기도 넣었으리라. 다섯 살 둘째는 자기가 아끼는 것들을 엄마에게 모두 내어주고 엄마의 얼굴을 살폈다.


다 뜨지 못한 눈으로 나는 아이들을 꼭 안아주었다. 매일 잔소리만 하는 엄마일지라도 아이들에게는 전부인 나였다. 미안하고 부끄럽고 고맙고 사랑스러운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그 혼란스러운 틈이 아이들의 웃음으로 가득 채워졌다.


부모와 자식은 서로 돕는 사이다. 부모는 아이에게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알려주고 이끌어주고, 아이는 부모가 세월을 살면서 잊어버리는 것들을 깨우쳐주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다. 수 십 년 간의 생일 중에서 가장 큰 선물을 받은 어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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