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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ug 30. 2021

읽다 보면 마음이 따땃해집니다

김 초엽-지구 끝의 온실

이 소설을 쓰며 우리가 이미 깊이 개입해버린, 되돌릴 수 없는,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곳 지구를 생각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그것을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아마도 나는, 그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 같다.
-김초엽 <지구 끝의 온실> '작가의 말'


김초엽 작가님의 소설은 저에게 일관된 감각을 줍니다. 온화하고 따뜻함.

작가님을 책으로 만나게 된 건 2년 전 <시티 픽션, 지금 어디에 사고 계십니까>에 수록된 <캐빈 방정식>이라는 단편소설에서였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과학적 소재에 이끌려 흥미를 가지고 소설을 읽게 되었어요. 그리고 저는 그 속에 들어있는 인물들 간의 관계성과 감정선들을 보게 되고, 그 지점에서 작가님 특유의 '인간의 따뜻한 마음들'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그 온기를 느끼면서 직감했어요.

내 생애 처음으로 정말 좋아하는 책의 장르와 작가가 생겼다는 점을 말입니다.


드디어 이번 김초엽 작가님의 첫 장편소설이 나왔습니다.

<지구 끝의 온실>은 식물을 소재로 한 SF 장편소설인데, 주된 내용은 이렇습니다.


모든 생물들을 죽음에 빠뜨리는 '더스트'라는 자가 증식 먼지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지구는 아비규환의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더스트를 피하기 위해 도시에 '돔'이라는 것을 만들어 씌운 '돔 시티'안으로 대피하게 되지요. 하지만 밖으로 추방된 사람들이 돔 시티에 들어가려고 할 때, 시티 안의 군인들이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하는가 하면, 시티 안에서 내란이 일어나기도 하면서, 그야말로 인류의 멸망이 도래해가는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순간에도 더스트에 대한 내성이 있는 사람들 또한 존재합니다. 그들을 '내성종'이라고 하는데, 돔 시티에 들어가지 못한 내성종인 '나오미'와 '아마라'. 두 자매는 돔 시티 밖, 폐허가 되어버린 세상 속에서 서로에게 의지한 채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갑니다. 거기다 아마라는 이전에 잡혀 들어갔다 구사일생으로 탈출했던 연구소에서 실험을 당하면서 더스트에 대한 내성이 약해 더욱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정말 희망 따윈 없는 것 같은 하루 속, 그들은 한때 잡혀있다 탈출했던 연구소에서 들었던 한 소문을 떠올립니다. 더스트 사태 이전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의 '도피처'가 있다는 것을 말이죠. 두 자매는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그 소문의 근원지를 찾아가게 됩니다. 자신들의 거의 모든 곳을 털어 거래하면서 얻은 정보를 따라 그 근처에 다다랐을 때쯤, 도피처 마을 사람들로부터 두 자매는 잡혀버리게 됩니다. 그래도 그 둘은 드디어 소문의 '도피처'라는 곳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신기하게도 식물을 포함한 생명체들이 더스트 이전의 모습들을 하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런 상상할 수 없는 도피처를 만들어 낸 사람은 두 명. 리더인 지수와, 온실에서 식물들을 연구하는 레이첼입니다. 그들은 과연 누구이고 어떻게 이 도피처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일까요?


이 소설은 더스트 시대를 거쳐 종식 후의 시대 생태학 연구자인 '아영'의 이야기와 더스트 시대를 살아온 두 자매 '나오미'와 '아마라', 도피처의 리더 '지수', 도피처 온실의 주인 '레이첼'에 대한 이야기가 교차를 이루며 진행됩니다. '아영'은 어는 날 '해월'이라는 도시에서 '모스바나'라는 식물이 출현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이 '모스바나'라는 식물은 더스트 시대 때 출현한 식물로 살에 조금만 닿아도 피부가 붉게 올라오며, 잡초만큼 엄청난 번식력을 가진 골칫덩어리 식물이라는 명성으로 자자합니다.

아영은 이 '모스바나'라는 식물을 조사하게 되면서 이 식물에서 발견된 특징들, 그리고 이 식물과 더스트 시대의 관련성에 대해 점점 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아영이 더스트 시대의 이야기와 점점 마주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 소설에서의 더스트 종식 이전의 세계와 이후의 세계의 이야기가 연결됩니다. '모스바나'라는 식물이 그 매개체 역할을 해주지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크게 두 가지를 느꼈습니다.

첫 번째는 정말 읽는 내내 한 편의 멋진 영화를 봤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인류가 멸망해가는 시대. 조금 더 사람에게 잔인해져야만, 더 이기적이어야만 살아남는 '디스토피아'세계관에서 인물들이 겪는 여러 사건의 전개가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박진감을 안겨줍니다. 거기다가 더스트 종식 이전 시대와 이후의 시대가 교차하면서 나열하는 사건의 전개가 그저 시대순으로 나열하는 방식보다 훨씬 극적으로 사건과 인물들의 감정선들이 다가오게끔 만듭니다. 한마디로 극적인 감동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주로 책을 띄엄띄엄 읽고 이 책, 저 책 돌려가며 산만하게 읽는 일명 '병렬 독서'(멋진 말로)를 하는 저는, 오늘 단 하루 만에 손에서 이 책을 놓지 않은 채 끝까지 읽는 기적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영화를 끊어서 '내일 봐야지.' 하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요? 저에게 이 책이 딱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정말 박진감 넘치면서도 절절하고 감동적인 한 편의 영화를 본 느낌. 이는 분명히 작가님의 필력과 사건 구성들이 한 몫 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다른 하나는 바로 '인물들 간의 관계성과 감정들'입니다. 저는 이 관계성과 감정들이 이 소설을 제일 멋지게 해주는 요소들이라 생각됩니다. 멸망해가는 세상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지내는 '나오미'와 '아마라'가 서로에게 단순 의지하는 것 뿐만 아니라 혹시나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로부터 오는 미운 감정 등 정말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도피처'를 만들어낸 지수와 레이첼. 이 둘의 관계성과 감정선은 정말 읽는 동안 여러 생각을 갖게 끔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는 마치 내가 레이첼과 지수가 된 것처럼 마음이 울렁이고 코끝이 찡해지는 감정을 느끼게 되지요. 제가 정확히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 그리고 그 인물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감정들과 관계성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스포가 될 테니까요. 저는 여러분들이 이 책을 직접 읽어보고 책 속에서 일렁이는 따뜻하고 슬프면서 아름다운 그 감정들을 느껴보셨으면 합니다. 저는 적어도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따뜻하면서도 아름다운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김초엽 작가님은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에피소드에서 가장 비슷하고 익숙한 인간의 단면들을 보여줍니다. 작가님의 세계가 담긴 소설들을 읽다 보면, 근미래부터 아득한 미래에서의 모습 속 숨겨진 인간이 가진 애정, 그리움, 슬픔, 다정함 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작가님의 특유의 결이 독자들에게 더욱 따뜻한 책으로 다가오게끔 만드는 지점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이 글을 쓰면서 '따뜻한'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게 되네요. 저는 실제로 작가님의 여러 글을 읽다 보면 여러 상황 속에서도 보이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나눠주는 온기', '마지막이라고 느껴질 때에도 포기하지 않고 가지는 희망'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마음들이 실체가 있고 진짜 그 온기가 있지 않더라도, 어느샌가 마음이 일렁이고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것은 아마도 작가님이 가지고 계시는 특유의 '인간에 대한 희망과 애정'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이 책에서 감명받았던 문장을 쓰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이 문장을 보면 약간 제가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보이리라 생각됩니다.

제가 이 문장을 보고 느꼈을 온기 있는 그 마음. 여러분들과 함께 느끼고 싶습니다.


어쨌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마음도 감정도 물질적인 것이고, 시간의 물줄기를 맞다 보면 그 표면이 점차 깎여나가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어떤 핵심이 남잖아요. 그렇게 남은 건 정말로 당신이 가졌던 마음이라고요. 시간조차 그 마음을 지우지 못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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