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과연 몇명의 여성위인들을 알고있나요?

by 유진

어렸을 땐 그렇게 친구들 집에만 가면 친구의 방 책장에 위인전들이 꼭 꽂혀있었던 것 같다.


단 12척의 배로 우리나라를 훌륭하게 지켜내었던 이순신 장군, 도시락 폭탄으로 우리나라의 독립을 외쳤던 윤봉길 의사. 그리고 상대성이론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아인슈타인까지. 어느 친구의 책장이든지 여러 위인전은 가득했고, 그 위인들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책장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 집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위인전을 읽고 성장하길 바랐던 그 시대의 많은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부모님도 내가 위인전을 읽고 정말 크게 성장하길 바라셨나 보다. 정말 큰 책장의 한 줄이 온통 위인전으로 가득했으니 말이다. 국적도, 직업도 다채로웠다. 나는 그것들을 읽으며 자랐다.

내가 유난히 좋아했던 두 위인이 있다. 지금까지도 큰 영향력을 지닌 ‘몬테소리 교육’이라는 유아 교육사상을 창시한 마리아 몬테소리. 직접 노동자의 삶으로 들어가 그들을 위해 아낌없이 목소리를 내었던 프랑스의 사상가 시몬 베유. 이 두 인물이었다. 나는 그 두 위인전을 유난히 자주 찾았고, 정말 여러 번 읽었다. 아직도 그 위인전에 실린 그림들이 선명히 떠오른다. 여성이 의대에 진학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던 시절, 이탈리아 교황에게 직접 편지를 부쳐 자신의 포부와 꿈을 용감하게 드러내었던 마리아 몬테소리의 편지를 쓰는 장면. 노동자들의 고된 노동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그들을 대변해 직접 목소리를 내던 시몬 베유의 노동 장면들. 그들의 삶이 녹아 있는 글들과 삽화들은 어린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어려운 과정과 자신을 막아 세우던 차별들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당당히 세상과 맞서며 자신의 뜻한 바를 이루다니. 나도 꼭 자라서 저렇게 큰 꿈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해서 뜻한 바를 이루는 멋진 사람이 되리라. 아직 세상에 대해 티끌만치도 모르는 어린 나였지만, 내가 그 위인전을 읽고 다졌던 다짐은 꽤 견고했고 단단했다. 그렇게 나는 나와 같은 성별을 가진 위인들의 큰 꿈을 읽고 자랐다. 그 많고 많은 위인 중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단 두 명. 그 두 명의 위인만이 나에게 더욱 깊게 머릿속에 박혔다. 국적과 직업을 막론하고 내 책장에 꽂혀 나에게 큰 꿈을 주었던 몇십 명의 위인들이 중 여성 위인은 단 두 명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거쳐온 12년의 공교육 속 스쳐 간 수많은 위인과 선조들을 생각해보았을 때,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여성들은 정말 많지 않다. 그저 내가 교육 속 배워왔던 여성 위인이나 선조들이라고는 외국의 나이팅게일, 잔 다르크, 퀴리 부인, 클레오파트라뿐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유관순 열사와 신사임당. 단 둘뿐이다. 아마 전 세계를 통틀어 내가 공교육을 통해 배운 여성 위인들은 20명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거기다 퀴리 부인의 본명이 ‘마리 퀴리’이고,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의 아름다운 여왕일 뿐만 아니라 뛰어난 정치력을 가진 인물이며, 유관순을 부를 때에는 뒤에 ‘누나’가 아닌, ‘열사’를 붙여야 한다는 것을 나는 내가 이미 공교육을 떠나 어른이 되었을 때 알게 되었다.


물론 내가 지금까지 배웠던 공교육 속 역사를 다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고, 내가 그렇게 역사에 깊이 관심을 가지고 학교에서 역사를 열렬히 배운 학생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내가 지금 하는 이야기의 허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이 문단의 허점을 읽어낸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단 2분, 아니 5분의 시간이라도 주어졌을 때, 전 세계의 여성 위인의 이름 20명 이상 꺼내 볼 수 있는가. 그에 반에 전 세계의 남성 위인을 당신은 몇 명을 떠올릴 수 있는가. 당신이 바로 떠올릴 수 있는 우리나라의 남성 위인은 몇 명이고, 여성 위인은 과연 몇 명이 될 수 있는가.


기나긴 역사 속에서 정말 두각을 나타내었던 여성은 몇 명 존재하지 않았을까. 세상의 반은 여자고, 그 나머지 반은 남자라는 사실이 존재하지만, 어쩐지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여성과 남성의 비율은 심각히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역사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본다면 수많은 역사의 순간들 속에 빛을 발했던 여성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많이 존재한다. 아무리 고대 그리스 시대 이전부터 진한 여성차별의 역사가 이어져 왔지만, 그런데도 그 속에서도 종교, 역사, 문학, 예술 등, 도처에 다양한 여성 위인들이 지워지지 않은 채 살아있다. 나는 그 지워지지 않은 흔적을 케르스틴 뤼커, 우테 댄셸이 지은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라는 책을 읽으며 하나씩 찾을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여성들만의 역사만 비춰주지 않는다. 그저 수많은 인류 역사의 흐름 중간중간 비어 있고, 지워져 있는 여성의 자리를 채워가며 역사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들이 무려 400페이지가 넘는 종이에 빽빽한 글자로 새겨넣은 유구한 역사는 비어 있던 여성의 이야기들이 가득 메워져 있어 더욱더 사실적이고 풍성한 이야기로 나에게 다가온다. 빈 곳이 메워짐으로써 비로소 본 모습을 찾아 찬란해진 역사 안에는 중국 한나라 시대에는 최초의 여성 역사가인 ‘반소’가 여성의 배움을 독려했다는 이야기가 존재하고, 예수의 ‘평등’사상을 바탕으로 기독교를 널리 전파했던 예수의 여성 제자 ‘니노’라는 위인 또한 존재한다. 니노가 세상을 떠난 후 니노의 업적이 여성의 업적이라는 것에 반발을 가진 이베리아 사람들이 니노를 ‘남성’이라고 잘못된 역사를 지어내기도 했지만…… 고대뿐만 아니라 18세기 프랑스 혁명 시대, 여성들이 자체적으로 신문을 만들고 무기를 들어 혁명의 선봉대에 서기도 하며 프랑스 혁명을 주도했다는 사실도. 영국에서는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 셸리의 어머니 메리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의 권리 옹호’라는 책을 펴내며 여권신장을 호소했던 사실도 이 책 안에 존재한다. 여기, 지워지고 잊혀질 위기에 놓인 그들의 생이 모여있다.


우리나라에도 잊혀선 안 되는 여러 여성 위인들이 존재한다. 일제강점기 시대 때 우리나라에서는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조선 여성 최초로 나혜석이 세계 일주를 하였고, 권기옥이라는 비행사는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며 평양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독립운동가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작가 김명순은 한국 근대 『청춘』 지의 ‘현상문예’에 등단하기도 하며 소설, 시 등 여러 작품을 남기기도 하였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부족하다’라는 어처구니없는 진실 아닌 진실이 역사 속 수많은 여성을 억압하고 지우려 했지만, 이렇게 지워지지 않은 많은 여성의 이야기가 어디선가 살아있다. 현대의 사람들은 이제 한 인간의 능력을 성별이 좌지우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등에 업고 지금까지 많은 남성 위인들을 꾸준히 언급하고 기렸던 것처럼, 숨겨져 있는 여성 위인들을 찾아내고, 언급하고 그들의 업적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역사에게 응당 해야만 하는 예의임과 동시에 미래를 위해 해야만 하는 과제와도 같은 것이다.


지금도 많이 회자되고 있는 현상이 있다. 바로 ‘스컬리 효과’. 옛날에 나왔던 ‘X파일’이라는 해외 드라마에서 유래된 이 현상은, 그 당시 수많은 여성을 새로운 ‘이공계 세계’로 이끌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암묵적으로 여성 앞에 사회가 그어놨던 금지의 선. 그것을 해외 드라마에서 나온 ‘스컬리’라는 인물이 보기 좋게 깨뜨린 것이다. 그로 인해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여성 과학자’, ‘여성 의사’, ‘여성 우주인’ 등. 수많은 이공계 여성 위인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글을 쓰고 있는 현대에는 더는 ‘이공계에 종사하는 여성’이라는 이미지가 어색하지 않은 모습이 되었다. 비록 실존하지 않는 드라마 속 캐릭터일 뿐이지만, 그의 파급력은 가히 상상할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 나는 이렇게 우리에게 보이고, 선전되는 ‘여성 인물’의 힘을 믿는다. 그들이 용감하게 앞장서서 개척해놓은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 때, 우리는 그곳에서 ‘여성’이라는 이름 속에 가려진 ‘나’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포착할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여자(女子)’가 아닌 ‘여자(女自)’가 될 수 있다.

(덕성여자대학교 설립자이자 독립유공자이신 ‘차미리사(1879-1955)’라는 여성 위인이 남긴 명언)


조금 더 우리는 가능성을 보여줄 여성 위인들을 찾아내고, 그 속에서 우리의 자화상이 될 가능성의 조각들을 발견해나가야 한다. 더 많고, 다양한 분야의 위대한 여성들을 우리가 만나고자 노력할 때, 우리의 뒤편에서 기다리고 있을 어린아이들에게 옛날에도 위대한 여성 위인들이 역사의 한 기둥을 세웠다는 사실을 알려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들 앞에 다양한 길과 삶의 모습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알려줄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자신이 ‘여자(女自)로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마음속에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바로 우리가 미래를 위해 해내야만 하는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나는 이런 새로움과 빈 곳을 끊임없이 발굴해나가고 싶다. 조금이라도 내가 다음 세대의 아이들을 위한, 단 한자 길이의 길이라도 만들어보고 싶다. 이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여성 위인들을 기억해야만 하는 또 다른 이유이고 내가 숨어있는 여성 위인을 끊임없이 찾아내고 이들을 위해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조금 더 과거와 미래의 여성들이 각자의 세상에서 역사에 큰 흔적을 남길 수 있길 바라며, 어려움 속에서도 그들이 해낸 업적이 그들의 고유한 빛으로 무엇보다 눈에 띄게 반짝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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