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 <방금 떠나온 세계>
마리는 단지 어떤 흐름을 구체화해서 현실로 옮긴 것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은 그전부터 분명히 있었다. 사람들은 모그들을 특수 구역에 가두었지만, 그들은 격리에 순응했던 적이 없다. 모든 인간이 한때 그랬듯 모그들은 어린아이였다가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었다. 마리는 울타리를 무너뜨렸고, 그 사건의 결과는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었다. 그 이전으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
- 김 초엽 <방금 떠나온 세계>, 마리의 춤 中-
김초엽 작가님의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에 대한 리뷰를 쓴 지 얼마 되지 않아
작가님께서 두 번째 소설집을 내셨습니다.
(박수!!)
정말 김초엽 작가님의 팬으로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작가님의 열렬한 팬으로서 저는 양장에 사인이 붙어있는 초판을 예약하여
오자마자 바로 정독을 했지요.
이번 소설집도 역시 작가님만의 다채로운 SF 소재와 배경,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주제들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이번 <함께 즐기고 싶어서>에서 소개할 책은 바로
김초엽 작가님의 <방금 떠나온 세계>입니다.
이번 두 번째로 나온 소설은 예전 워크룸프레스의 <광장>이라는 책에 실린 김초엽 작가님의 '마리의 춤', 제11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인 '인지 공간'을 비롯한 총 7편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번 소설집에서도 정말 생각할 수 없는 다양한 SF세계가 각 단편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후각이 매우 발달되어 공기 입자로 대화를 나누는 세계를 다룬 <숨그림자>, 멸망한 행성을 탐사하는 로몬의 세계를 그린 <최후의 라이오니> 등, 평소에는 상상해볼 수 없는 정말 기발하고 다채로운 세상이 이 소설집에 담겨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이 보여주는 머나먼 세계를 책 속 자간을 따라 여행하다 보면, 어딘가 우리 사회의 단면들을 포착할 수 있습니다.
마리는 팔을 뻗어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대답했다.
"중학생 때 합창단에 동원되었거든요. 모그 교육원을 홍보하는 자선 행사에서 우리에게 공연을 하라고 했죠. 기분이 나빴지만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어서, 우리는 연습을 대충 했어요. 보란 듯이 가사도 다 틀리고 엉망진창으로 무대를 마쳤어요. 그런데 막상 반응이 어땠는지 알아요?"
...
"자선 행사에 온 사람들이 울기 시작하는 거예요."
"관객들이 훌쩍이고, 달려 나와 우리를 껴안았어요. 강당의 공기가 습해지는 것에 우리는 어리둥절해졌고요. 그 사람들은 왜 그랬을까요? 정말 누가 들어도 엉망진창인 공연을 했는데. 우리는 열다섯 살이었고, 열다섯 살은 어린 나이지만 때에 따라 탁월함을 기대받기도 하는 나이잖아요. 그날 저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요."
-마리의 춤 中-
조안은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받아들여진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조안을 불쾌하지만 당장 치워버릴 수 없는, 거슬리는 소품처럼 대했다. 연구원들조차 겉으로는 친절하게 굴었지만, 의미에 민감한 단희는 여전히 실험체를 대하는 듯한, 그 아래 깔린 멸시와 거부를 읽을 수 있었다.
숨그림자 사람들은 조안을 결코 같은 사람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조안도 그것을 느낄까.
-숨그림자 中-
이 소설의 세계 속에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단면들이 보이는 듯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에게 건네는 시선들, 우리와 말이 통하지 않고, 겉모습도 다른 이주민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그리고 김초엽, 김원영의 <사이보그가 되다>에서 논의되었던 '트랜스 휴머니즘(과학과 기술을 통해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한계를 벗어나는 것을 긍정적으로 지지하는 운동으로,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인간의 신체를 변형한 신체를 '트랜스 휴먼'이라고 한다, 출처: 김초엽, 김원영 <사이보그가 되다>)'에 대한 이야기까지.
저는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장애, 이주 노동자, 다름에 대한 차별과 멸시를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 소설은 화려한 SF세계를 우리에게 선보여줌과 동시에, 우리의 사회 현실을 여과 없이 맞닥뜨리게 해 주고, 그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점검, 전환을 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것도 전혀 전형적이지 않고 우리의 편견을 깨부수는 멋진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서 말이지요.
작가님의 첫 번째 소설이었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도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등장했었습니다. 자신의 기원에 대한 해답을 직접 찾으러 나선 인물이 있는가 하면,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기 위한 모험을 떠나는 인물들 등, 때로는 애절하고, 때로는 멋진 각 개성이 넘치는 서사를 가진 인물들이었지요. 이런 개성 넘치고 편견을 깨뜨리기도 하는 인물들이 이 두 번째 소설에도 등장합니다. 자신의 장애를 알리고자 테러를 일으킨 인물, 불의의 사고 속에서도 끝내 연구를 진행한 인물들까지.
이런 멋진 인물들의 서사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의 장점이자, 작가님이 구축해내는 소설 속 세계의 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은 여러분들이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 소설에서 받은 느낌과 감상들이 더 진하게 다가올 테니까요.
소설은 우리가 경험하기 어려운 다양한 세계를 글을 통해 보여주고, 우리가 글을 통한 경험으로 인해 다시는 예전에 나로 되돌아갈 수 없는 '사유의 강'을 건널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소설 속 인물에 이입해서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간접적으로나마 여러 사건들을 경험해보고, 사건 속 인물들과 같은 결의 감정들을 느끼다 보면 우리는 더 이상 예전처럼 그 소설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쉽게, 가볍게 이야기할 수 없게 되지요. 저는 그게 소설의 참 매력이자 순기능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방금 떠나온 세계>는 우리에게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사유의 강'을 건널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책이고, 큰 가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들도 이 책을 읽으면서 화려한 세계를 경험하고, 우리 사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사유의 강'을 건너는 경험을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