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진 Oct 25. 2021

멀리 떠나온 세계에서 마주하는  우리 세계의 모습

김초엽 <방금 떠나온 세계>

마리는 단지 어떤 흐름을 구체화해서 현실로 옮긴 것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은 그전부터 분명히 있었다. 사람들은 모그들을 특수 구역에 가두었지만, 그들은 격리에 순응했던 적이 없다. 모든 인간이 한때 그랬듯 모그들은 어린아이였다가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었다. 마리는 울타리를 무너뜨렸고, 그 사건의 결과는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었다. 그 이전으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

- 김 초엽 <방금 떠나온 세계>, 마리의 춤 中-


김초엽 작가님의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에 대한 리뷰를 쓴 지 얼마 되지 않아

작가님께서 두 번째 소설집을 내셨습니다.

(박수!!)

정말 김초엽 작가님의 팬으로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작가님의 열렬한 팬으로서 저는 양장에 사인이 붙어있는 초판을 예약하여

오자마자 바로 정독을 했지요.


이번 소설집도 역시 작가님만의 다채로운 SF 소재와 배경,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주제들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이번 <함께 즐기고 싶어서>에서 소개할 책은 바로

김초엽 작가님의 <방금 떠나온 세계>입니다.




김초엽 작가님의 두 번째 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 출처: 예스24


이번 두 번째로 나온 소설은 예전 워크룸프레스의 <광장>이라는 책에 실린 김초엽 작가님의 '마리의 춤', 제11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인 '인지 공간'을 비롯한 총 7편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번 소설집에서도 정말 생각할 수 없는 다양한 SF세계가 각 단편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후각이 매우 발달되어 공기 입자로 대화를 나누는 세계를 다룬 <숨그림자>, 멸망한 행성을 탐사하는 로몬의 세계를 그린 <최후의 라이오니> 등, 평소에는 상상해볼 수 없는 정말 기발하고 다채로운 세상이 이 소설집에 담겨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이 보여주는 머나먼 세계를 책 속 자간을 따라 여행하다 보면, 어딘가 우리 사회의 단면들을 포착할 수 있습니다.


마리는 팔을 뻗어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대답했다.
"중학생 때 합창단에 동원되었거든요. 모그 교육원을 홍보하는 자선 행사에서 우리에게 공연을 하라고 했죠. 기분이 나빴지만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어서, 우리는 연습을 대충 했어요. 보란 듯이 가사도 다 틀리고 엉망진창으로 무대를 마쳤어요. 그런데 막상 반응이 어땠는지 알아요?"
...
"자선 행사에 온 사람들이 울기 시작하는 거예요."
"관객들이 훌쩍이고, 달려 나와 우리를 껴안았어요. 강당의 공기가 습해지는 것에 우리는 어리둥절해졌고요. 그 사람들은 왜 그랬을까요? 정말 누가 들어도 엉망진창인 공연을 했는데. 우리는 열다섯 살이었고, 열다섯 살은 어린 나이지만 때에 따라 탁월함을 기대받기도 하는 나이잖아요. 그날 저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요."
-마리의 춤 中-


조안은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받아들여진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조안을 불쾌하지만 당장 치워버릴 수 없는, 거슬리는 소품처럼 대했다. 연구원들조차 겉으로는 친절하게 굴었지만, 의미에 민감한 단희는 여전히 실험체를 대하는 듯한, 그 아래 깔린 멸시와 거부를 읽을 수 있었다.
숨그림자 사람들은 조안을 결코 같은 사람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조안도 그것을 느낄까.
-숨그림자 中-


이 소설의 세계 속에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단면들이 보이는 듯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에게 건네는 시선들, 우리와 말이 통하지 않고, 겉모습도 다른 이주민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그리고 김초엽, 김원영의 <사이보그가 되다>에서 논의되었던 '트랜스 휴머니즘(과학과 기술을 통해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한계를 벗어나는 것을 긍정적으로 지지하는 운동으로,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인간의 신체를 변형한 신체를 '트랜스 휴먼'이라고 한다, 출처: 김초엽, 김원영 <사이보그가 되다>)'에 대한 이야기까지.

저는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장애, 이주 노동자, 다름에 대한 차별과 멸시를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 소설은 화려한 SF세계를 우리에게 선보여줌과 동시에, 우리의 사회 현실을 여과 없이 맞닥뜨리게 해 주고, 그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점검, 전환을 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것도 전혀 전형적이지 않고 우리의 편견을 깨부수는 멋진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서 말이지요.


작가님의 첫 번째 소설이었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도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등장했었습니다. 자신의 기원에 대한 해답을 직접 찾으러 나선 인물이 있는가 하면,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기 위한 모험을 떠나는 인물들 등, 때로는 애절하고, 때로는 멋진 각 개성이 넘치는 서사를 가진 인물들이었지요. 이런 개성 넘치고 편견을 깨뜨리기도 하는 인물들이 이 두 번째 소설에도 등장합니다. 자신의 장애를 알리고자 테러를 일으킨 인물, 불의의 사고 속에서도 끝내 연구를 진행한 인물들까지.


이런 멋진 인물들의 서사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의 장점이자, 작가님이 구축해내는 소설 속 세계의 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은 여러분들이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 소설에서 받은 느낌과 감상들이 더 진하게 다가올 테니까요.



소설은 우리가 경험하기 어려운 다양한 세계를 글을 통해 보여주고, 우리글을 통한 경험으로 인해 다시는 예전에 나로 되돌아갈  없는 '사유의 ' 널 수 있도록  줍니다. 소설  인물에 이입해서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간접적으로나마 여러 사건들을 경험해보고, 사건  인물들과 같은 결의 감정들을 느끼다 보면 우리는  이상 예전처럼  소설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쉽게, 가볍게 이야기할  없게 되지요. 저는 그게 소설의  매력이자 순기능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방금 떠나온 세계>는 우리에게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사유의 강'을 건널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책이고, 큰 가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들도 이 책을 읽으면서 화려한 세계를 경험하고, 우리 사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사유의 강'을 건너는 경험을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정말 마음 놓고 즐겁게 킬링타임을 보내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