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여행
"세론님. 세론님은 나중에 이 일이 끝나면 무엇을 할 예정이십니까?"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세븐이 세론에게 질문을 던졌다. 뭘 하고 싶냐니?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마지막 여생밖에 있지 않던가. 각자 주어진 행성에 가서 마지막을 보내는 일. 그것 말고 다른 할 일이 있던가. 세론은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모르겠는데. 그냥 마지막 여생을 보내는 거 말고 달리 방법이 없지 않나?"
"세론님도 그렇게 생각하셨죠? 근데 사실은요. 마지막 여생 보내는 것 말고도 다른 방법이 있대요."
세븐은 둘밖에 없는 수송 장치임에도 나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목소리를 죽였다. 참, 누가 듣는다고 저렇게 조심할까라고 생각하며 헛웃음 짓던 세론은 순간 다른 생각이 들어 흠칫 놀랐다. 이 녀석, 설마 암거래하면서 지내는 건 아니겠지?
"너, 설마... 어디서 암거래 유도하는 동료 만난 건 아니지...?"
세론의 진심 어린 걱정에 세븐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 진짜 제가 그런 걸 하는 동료로 보입니까? 그리고 그쪽 길로 빠졌으면 저는 이미 여기에 없었죠."
"그렇긴 한데, 진짜 만에 하나 그런 일 있으면 바로 보고해. 그런 암거래는 여기 우주 질서를 망가트리는 위험한 일 인거 알지?"
"제가 그걸 모르겠습니까?"
세론은 실실 웃으며 대답했다. 이 선배도 참. 나를 그렇게 보고 그래요. 세븐이 함박웃음을 머금은 채 세론의 어깨를 툭 쳤다. 그러다 다시 목소리를 줄이더니 이야기를 마저 꺼내기 시작했다.
"암튼, 제가 이리저리 임무 하면서 주민들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예전에 저 외딴 행성에서 낯선 존재를 한 분 만났는데 말이죠. 그분이 정말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해주시는 겁니다.“
세븐은 조용한 말투로 과장된 얼굴과 큰 손짓과 함께 말을 이어갔다. 누가 세븐 마음에 바람이라도 불어놨나. 세론은 순진한 세븐이 혹여나 잘못된 걸 들었을까 봐 걱정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입에 잔잔한 미소를 붙이며 맞장구를 쳐줬다. 세론은 세븐이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기쁜 마음으로 표현하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좋아한다. 이 반복되는 일상과 임무 속에서 세븐은 항상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고 기뻐하며 아낌없이 반긴다. 그런 세븐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한껏 가라앉은 자신의 삶에도 무언가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다고 느꼈고, 조금 더 세븐을 따라 다른 눈으로,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 세븐의 태도를 세론은 참 많이 좋아한다.
“그래서, 그 존재가 뭐라고 이야기하던데?”
“그 존재가 말입니다. 사실은 임무 종료가 꽤 되었는데, 마지막 여생을 보내지 않고, 계속 수송 장치를 타며 여행한다고 얘기해줬습니다.”
“여행? 여행이 뭔데?”
“그게 저도 처음 듣는 단어라 그 분에게 물어봤더니, 발이 가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걸 여행이라고 했습니다.”
발이 가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세론은 그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수송 장치 임무를 맡게 되면 정말 여러 곳을 항해하게 되는데, 항상 세론에게는 정착지, 목적이 존재했었다. 그런데 목적, 임무 없이 그냥 어딘가를 간다니. 그게 말이 되는 건가. 세론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럼 그 행선지는 누가 보내주는 건데? 뭐 거기에 가져가야 하는 것들은 따로 있는건가?”
“아휴 정말. 세론님이 방금 물어보신건 임무예요. 여행이 아니라. 그냥 그런 거 하나도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거예요.”
세븐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답을 뱉었다. 그의 태도에 세론이 장난스럽게 따지듯 물어봤다.
“그럼, 세븐 너는 그 여행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고?”
세론의 질문을 들은 세븐은 고개를 돌려 스크린을 바라본 채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스크린에는 검은 바탕과 대조되는 조그마한 빛들이 수 놓인 우주가 보였다. 가끔 옆에 우주쓰레기나 암석이 지나가기도 했지만, 자세히 보면 그 빛이 다 다른 색을 띠는 걸 알 수 있다. 저 빛은 약간 푸른색을 안에 담고 있는 하얀빛. 저 빛은 주황색과 흰색이 섞어 빛나는 빛. 세븐은 그 별들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고 세론이 다시 조종기에 눈을 돌릴 때쯤, 입을 뗐다.
“저 떠다니는 빛들이랑 우주쓰레기, 암석 같은 존재들은요. 저 존재들이 왠지 여행하고 있는 것 같아요.”
세론은 세븐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세븐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세븐이 마치 여행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것 같아 차분히 기다렸다.
“그분이 그러셨거든요. 아무 예상된 것 없이 정처 없이 여러 행성을 가다 보면 온갖 별별 것을 다 만난대요. 어떤 행성에는 한 과일만 잔뜩 자라는 나무 행성이 있는가 하면, 어떤 행성에는 그저 찰랑거리는 액체만 가득하다고 했어요. 또 다른 행성은 항상 번개만 치는 무시무시한 행성도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분은 그 어떤 곳이든 머물렀다는 거예요. 과일이 잔뜩 열린 행성에서는 과일을 먹어보고, 액체가 가득한 곳에서는 그 액체 속으로 들어가 보거나 표면 위를 둥둥 떠다녀 보기도 했대요. 번개는... 좀 무섭긴 했는데 그 광경을 그저 멀리서 지켜봤대요. 이 경험을 다 들려준 그 분이 결국에는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세븐은 다시 세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살며시 웃음을 지었다.
“여행은 바람이 되어서 세상을 자유롭게 모든 걸 느껴보는 거래요. 저는요. 그렇게 살아보고 싶어요. 내가 어떤 존재인지, 정말 일만 하다가 사라질지 어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왕 이 우주 속에서 제가 태어났다면 바람이 되어서 이 우주가 어떤 우주인지 마음껏 느껴보고 싶어요.“
세븐은 차분히 말을 마쳤다. 세론은 그런 세븐의 말속에 담긴 느낌을 그대로 느껴보고자 한참 가만히 세븐만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이 되어 자유롭게 모든 걸 받아들여 보는 것. 정처 없이, 가는 대로 모든 걸 경험해 보고 느껴본다는 것 자체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내부에 고요함이 지속되자 세븐은 머쓱한지 말을 툭 뱉었다.
“하하, 물론 우주 속에 바람이라는 게 있을 리는 없잖아요? 공기라는 게 없는데.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예요.”
“세븐, 너는 할 수 있을 것 같아.“
”네?“
”우주 속 바람이 되어서 여행하는거. 할 수 있을 것 같아.“
세론은 세븐의 바람이 현실로 이루어지길 진지하게 소망했다. 다른 동료와 다르게 탐구심이 남다르고 무엇이든 쉽게 애정을 보이는 세븐이기에 가능하겠다 생각했고, 그런 세븐이기에 조용한 마지막 보다, 새로운 시작을 맞이했으면 했다. 세븐만큼은 그러길 바랐다.
세븐이 정말 바람이 되어 여행한다면 어떤 더 큰 우주를 맞이하게 될까. 세론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상상해 보았다.
세븐을 뒤쫓아갔다. 수많은 존재들 속, 수송 장치 사이사이를 비집고 피해서 세븐이 마치 환영처럼 보였다. 끝까지 눈을 떼지 않고 따라갔다. 이번에는 정말로 놓쳐서는 안 된다. 우주가 다시 재생되고 있는 지금, 세븐은 과연 어떤 심정인지 꼭 들어야만 한다.
세븐만 보고 따라가다 보니, 우거진 숲속으로 들어왔다. 사방으로 수많은 나무가 둘러싸여 있으며 사람이 다닌 흔적조차 없는 숲이었다. 세븐은 저 멀리 다닥다닥 붙은 나무들 사이로 숨어든 걸까.
“세븐! 어디 있어?”
고요한 숲속에 내 목소리만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세븐의 응답 대신 내 소리에 깜짝 놀란 듯 푸드득 날아가는 새의 소리만 들린다. 온 감각에 집중하고 주위를 둘러본다. 세븐의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세븐의 옷자락이 보이지 않을까.
그때 내 뒤에서 들리는 발소리.
“선배.”
익숙한 목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고개를 돌렸다. 세븐이었다. 세븐은 저 멀리 목소리는 들리지만, 꽤나 먼 곳에 서 있었다. 나는 세븐이 있는 곳으로 발을 옮겼다. 그런데 내 발에 맞춰 세븐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세븐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가득 쌓여있었다.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기에 온몸이 멍 같은 얼룩투성이인지, 왜 그토록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지, 왜 사라지고 싶었는지. 세븐에게 물어볼 것이 마음속에서 한꺼번에 몰려와 오히려 입을 떼기 힘들었다. 뭐부터 물어봐야 할까. 그러다 세븐의 눈동자를 보았다. 그리고 물음 대신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
“세븐, 괜찮아?”
세븐의 눈동자가 동요하듯 흔들리는 듯했다. 멀리서도 보이는 일렁임. 그 일렁임이 세븐에게서 나에게로 타고 들어와 전해지는 듯했다. 이유도 모른 채 코끝이 찡해졌다. 너에 대한 나의 안타까움과 연민과 애정이 만들어 낸 반응인 걸까.
“선배. 저는 이제 어떡하죠...?”
세븐이 자조를 띄운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물어봤다. 세븐의 떨리는 목소리, 손이 보였다. 마지막 한 장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꽃이 있다면 저런 모습인 걸까. 나는 그에게 성큼 한 발짝 다가갔다. 그는 작게 물러섰다. 나는 또 한 발짝 크게 다가갔다. 조금씩 우리 둘 사이의 거리가 좁혀졌다.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세븐이 사시나무처럼 작게 떨고 있는걸 볼 수 있었다. 일그러진 얼굴에는 처연함과 슬픔, 절망이 담겨있었다.
“저는 이대로 모두가 사라질 줄 알았어요. 그냥 이대로 다 망해버릴 줄 알았다고요. 그런데 왜, 인제와서 다시 살아나는 거예요? 그리고 저는 왜 아직도 이 모습이고요? 저기 있는 동료들은 우리가 무슨 존재인지 아직 모르는 거죠? 모두가 모르고 있는 거죠?”
“아니, 아마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알게 된 존재들이 꽤 생길 거야. 다들 도서관에 가서 진실을 확인했으니까.”
세븐은 내 말을 듣고 ‘말도 안 돼’를 연발했다. 진실을 아는 존재들은 그러고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나는 이렇게 절망스럽고 불안한데. 그들은 도대체 어떻게 멀쩡하게 살아있냐고요. 세븐은 자기 머리를 감싸며 중얼거렸다. 나는 그대로 세븐의 손목을 낚아챘다. 이거 놔요! 세븐이 내 손을 거세게 뿌리쳤다. 나는 세븐의 슬픔 앞에 소리쳤다.
“왜 우리가 불안에 떨고 절망만 느껴야 하는데!”
세븐은 나의 거친 소리에 반항하듯 더 큰 소리로 되받아쳤다.
“선배! 이번 임무 하면서 못 느꼈어요? 이 우주, 그러니까 이 머리의 주인이 또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면 언젠간 또 그렇게 먼지처럼 사라진다고요! 그렇게 수많은 사례를 봤는데도 모르겠어요? 우리는 이렇게 아등바등 사는데 우리 목숨은 주인에 따라 한순간에 가루가 되어 사라질 수도 있다고요.”
세븐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바로 휙 돌아섰다. 나는 세븐을 잡았다. 세븐이 또 뿌리치면 다른 손을 잡았다. 이거 놔요! 세븐이 몇 번이나 거부했지만, 나는 세븐을 두 번, 세 번 계속 잡았다. 나는 세븐의 양팔을 잡고 그를 막아섰다. 지금 이야기한다고 달라지는 게 뭐가 있는데! 우주는 안정화되고 있어. 혼란스러워하지 마! 나와 세븐의 몸은 격렬히 맞붙었다.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는듯 하면서도 엉켰 버렸다. 세븐은 계속해서 '싫어'를 반복했다. 나는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말했다.
“괜찮아.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야. 이 우주를 구성하는 모두가 있는 이상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아.“
세븐은 경멸하는 눈빛을 띠며 대답했다.
“정말 그럴 수 있다고 확신해요? 이 머릿속의 주인이라는 놈이 나중에 또 망가지면, 그때는 세론님부터 사라질지도 몰라요. 저는 이런 불안 속에 갇혀 살고 싶지 않다고요.”
경멸하는 눈빛이 흔들린다. 그 눈을 본 내 마음이 쓰리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건 얼마나 쓰라린 낙인인가. 진실을 알고 있는 이상, 진실이란 무거운 역경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숙명이다. 세븐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유난히 모든 것에 기대를 품고 사는 세븐에게 이 진실은 얼만큼의 허망함을 안겨주었을까. 주르륵 눈물을 흘리는 세븐의 눈이 공허한 호수처럼 보였다. 그의 눈물을 닦아주고, 나는 눈물을 흘리며 세븐을 폭 감싸 안았다.
”우리는 절대로 한낱 가벼운 존재처럼 빛났다 사라지지 않을 거야. 이렇게 너와 내가 지금 서로 안아주고 있잖아. 이곳이 누군가에게는 작은 머릿속일지 몰라도, 적어도 나에게는 동료를 만들어 주고 너를 만나게 해준 우주야. 나는 그거면 됐어. 난 이 우주가 좋아.”
세븐은 그대로 내 어깨에 폭 기대어 큰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세븐의 귓가에 연신 ‘괜찮아’를 들려주었다.
세븐의 울음소리가 잦아들 때쯤, 예전에 노스가 말해주었던 것들이 떠올라 세븐에게 알려주었다.
“있지, 내 동료가 얘기해줬는데, 아무리 우리가 작은 존재라고 해도, 우리 없이는 이 우주가 돌아가지 않는대. 우리가 하나하나 해내는 임무와 우리의 존재 자체가 결국 이 우주를 숨 쉬게 만든다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우주에 부유하는 그저 작은 존재가 아니라 우주 하나를 구성하기 위한 소중한 존재가 되기도 해.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가 서로 만나고 애정을 나누는 것은 어느 누구도 초라하다고 평가할 수 없어. 그건 나만이 스스로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거니까 말이야. 적어도 나는 너와의 관계가 소중해, 세븐. 그러니까 우리가 서로 만나는 이 우주가 적어도 나쁘진 않은 구석이 있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
어느새 진정해진 세븐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날 봐 세븐. 나는 세븐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양손으로 잡고 나와 시선을 맞추도록 했다. 그의 얼굴에는 폭풍이 지나간 듯한 고요함이 묻어있었다.
“우리, 같이 여행하자. 같이 바람이 되어서 새롭게 우주를 느껴보자.”
세븐은 내 말을 듣더니 살며시 입가에 미소를 띠웠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러자.
“자, 여기 비상 수송 장치 키요. 그런데 진짜 이 정도 물량하고 에너지만 있으면 돼요? 뭐 애초에 비상 수송 장치라 많이 안 들어가긴 하는데. 이건 좀 초라한데.”
도플이 걱정하는 기색으로 나에게 키를 넘겼다. 나는 뭐 어떻게든 되겠지. 어디 아무 행성이나 가서 얻어먹고 살겠거니 라는 생각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참나, 예전에 작전 책임자 맡았던 대장은 다 어디로 가버렸데. 그렇게 진짜 무계획으로 가실 생각이세요?”
나는 도플의 지나친 걱정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도플이 그런 말도 다 해주고, 참 우리 둘 다 이상해졌군요. 그렇죠?”
“참나, 이런 걱정은 아무리 저라도 다 한다고요. 아니면 그냥 저거 중형 하나 그냥 가져가요. 뭐 그냥 임무 하다가 뺏겼다고 대충 털어놓으면 그만이지. 이래저래 잘 불면 알아서 그냥 넘기던데요?”
“그게 더 위험하다는 생각은 안 드십니까?”
도플의 말에 실실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중형 수송 장치는 양심에 좀 찔리긴 하지.
“그러면 이거 타고 세븐님과 뭘 하실 예정입니까?”
“응? 아, 우리 여행할 거야.”
“네? 여행이요? 그게 뭔데요?”
“자유롭게 이곳저곳 떠도는 것.”
“그러면 아예 임무를 하지 않겠다는 소립니까? 그게 가능해요?”
“지금 한창 회복세에 접어들기 시작했으니까 이럴 때 뭐 한 명쯤은 빠져도 괜찮다고 봐요. 여차하면 그냥 세론님이 세븐님과 같이 비상 수송 장치 훔쳐서 달아나서 실종되었다고 보고할게요. 아니면 사망했다던가.”
노스가 너스레를 떨며 대답했다. 사망... 처리까지는 조금 께름직하긴 한데. 노스의 말을 들으며 좋은 수단이라 생각했지만, 한쪽에서는 소름이 돋았다.
노스는 나를 보고 싱긋 웃었다.
“저번에 말씀하시던 그 고민은 조금 풀리셨어요?”
“무슨 고민?”
“우리가 뭣도 안되는 존재라는 고민 말이에요.”
노스가 나에게 물어봤는데 오히려 옆에서 도플이 성을 내며 말했다.
“우리가 뭣도 안되는 존재라니! 뼈 빠지게 일해가지고 우주 균형 다 잡고 있는 존재들이 누군데. 이 우주가 뭐 어떤 사람의 머릿속이라고? 오히려 그 사람이 감사해야지.”
하하, 그러게 말이에요. 맞는 말이에요. 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세론. 지금 도서관 쪽 상황이 슬슬 정리되는 것 같은데,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얼른 탈출하시죠. 나머지 처리는 저희가 해놓고 있을게요.”
노스가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지금이 세론님 보는 마지막 순간일지도 모르겠네요. 노스는 작게 아쉬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는 그런 소리 말라며 노스의 손에 내 손을 겹쳤다.
“언젠가 이 넓은 우주에서 또 만날 수 있겠죠. 그럼 그때 같이 인사 주고받고 그래요.”
노스는 겹친 내 손을 보다가 내 얼굴을 물끄러미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웃음을 지어 보였다.
“네. 언젠가 다시 만나요.”
나와 세븐, 그리고 도플, 다래, 노스는 중형 수송 장치에 가 비상 수송 장치 입구를 열었다. 임무를 같이하고 정을 같이 나눴던 존재들이라 괜히 마음이 시큰해져 멍하니 서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도플이 나를 안아주면서 ‘그동안 즐거웠습니다.’라는 따뜻한 말을 전해 주었다. 나는 도플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포옹을 받아주었다. 그 뒤로 노스, 다래하고도 포옹으로 인사했다. 언젠가 또 만났으면 좋겠어요. 도플과 잘 지내길 바랄게요. 서로 그사이에 쌓인 정을 표현할 수 있었다.
나와 세븐은 그대로 비상 수송 장치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기계의 움직임이 우리의 긴장되고 설레는 마음을 더욱 돋궈주는 듯했다. 나는 세븐을 바라보았고, 세븐도 나를 바라보았다. 서로 미소를 지었다. 이제 같이 우주의 바람이 되어 이곳저곳 자유롭게 다녀보자. 비상 수송 장치는 그대로 천천히 이륙하기 시작했다.
도플은 수송 장치에 있는 마이크에 입을 대고 본부에 보고하기 시작했다.
“임무 성공하고 돌아오는 중 큰 바람이 불어 임무 책임자 S208이 실종되었습니다. 저 D238이 임무 책임을 위임받아 복귀하도록 하겠습니다.”
도플은 마이크를 내리고 저 멀리 사라져가는 비상 수송 장치를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비상 수송 장치가 저 멀리 앞으로, 점점 별의 모양처럼 사라져갔다. 비상 수송 장치가 지나간 자리에 왠지 모를 상쾌한 바람이 부는 듯 했다.